외환위기 당시 skyang님이 쓰신 글입니다.
'IMF 구제금융, 제2의 한일합방인가?'라는 글과 같이 읽으시면 되겠네요. 국내와 국외의 문제가 아니라, 내집단, 외집단, 좌파와 우파의 문제로도 확장해서 생각해볼 가치가 있는 글이라고 봅니다.
"진보는 누구의 손으로 해도 진보인 것이다."
* * *
외환위기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나?
영화배급문제는 전혀 모르지만, 일반적으로 국내 기업과 외국 기업이 있을 때 누구를 응원해야 하냐면 당연히 국내 기업이다. 국내자본과 해외자본은? 당연히 국내 자본이다. 옆집사람이 잘살면 배가 아플수도 있지만, 잔칫날 떡 한사발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으니깐.
노동자의 관점에서 봐도 그렇다. 우리 살아 생전에는 한국인이 마이크로소프트나 제너럴 일렉트릭의 사장이 되기는 불가능하지는 않아도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삼성전자를 세계 최고 기업으로 키운다면 그 사장을 한국인이 할 가능성은 높다. 사장자리가 아니라도 우리 기업이 잘되면 고급스런 일들을 한국사람이 할 가능성이 많아진다.
또 해외자본이 국내에서 활동하면 국내의 돈을 해외로 가져가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부가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은 맞는 이야기다.
그럼 어떻게 응원하는 일이 잘하는 짓인가? 자, 동네 조기 축구 팀 하나를 뽑아서 좀 훈련시킨다음, 전 국민의 세금을 걷어서 팡파레를 울리고 거대 축구장을 짓고, 호화스런 축구선수들 놀이터를 만들어 주고 그런다. 정부와 축구협회가 짜고, 요팀만을 위해서 온갖 특혜를 준다. 그리고 명분은 축구를 잘하려면 몰아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관리와 축구협회 임원은 국민들 세금에서 축구팀으로 가는 돈을 좀 살살 챙겨서 지 뱃속도 채우고 그런다. 아무도 저항하지 않으므로 뭐 별일 없고, 축구를 잘하는 줄 안다.
국내에서 다른 팀이 좀 도전해 보고 싶어도, 모든구장, 심지어는 축구화마저 고 팀을 위한 것만 있으니깐 아예 싹이 자랄 수가 없다. 혹시 온갖 악조건에서도 살아남아 도전을 해 볼라치면, 이젠 심판이 너무나 편파적이라 해볼수가 없다. 가끔 해외 팀을 불러서 시합을 하는데, 국내에 도착하자마자 다리 하나씩을 부러 뜨린다음 시합을 시킨다. 우리팀 연전연승이다. 가끔 해외에도 나가는데, 거기서도 일등은 못해도 곧 잘한다. 왜냐하면 또 국민세금 걷어다가, 거기 심판들 매수하고, 선수들 매수하고 온통 그런 식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런 축구팀을 두는게 우리나라에게 좋은가? 아예 없애고 외국 축구나 보며 사는게 나은가? 당연히 외국축구팀이나 보며 사는게 낫다.
누군가가 얘기했듯이 만약에 한국 영화배급회사들이 이런 축구팀 같았으면, 망해없어지고 우리는 남미 축구팀 구경하듯 외국 직배영화보면 된다.
난 영화배급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우리나라 재벌은 앞에서 그린 타락한 축구팀과 비슷하다고 본다. 나는 재벌이 반쯤 없어지고, 고 경영권을 일본과 미국인들이 다 차지한다고 해도 눈하나 깜짝 안할 것 같다. 또 해외기업이 우리 나라에 들와서 돈 벌어가는 문제도 그렇다. 교환은 서로 이익이 될 때 하는 것이다. 해외기업이 우리 나라에서 돈 벌어 간다는 얘기는 그 과정에서 우리 소비자도 이익본다는 얘기다. 국가의 정치 권력이 엄존하고 민주주의가 완성된 다음에는 교환을 할 수록 좋은 것이다.
그래도 문제가 남는다.
그래도 우리나라 기업이 잘되면 좋지 않은가? 우리나라 축구팀이 정정당당하게 이기면 좋지 않은가? 우리가 외국서 버는 돈이 외국인이 우리나라에서 벌어가는 돈보다 더 많으면 더 좋지 않은가?
그 방법이 없을까? 그런 것을 할때, 무엇을 해야할까?
내 주장은 일관되게 재벌을 해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걸 IMF 나 미국이 한다면 대환영이다.
일본의 재벌, 독일의 재벌들을 해체한 미군정 덕에 일본과 독일의 산업이 얼마나 좋아지고, 민주주의가 발달했는가? 진보는 누구의 손으로 해도 진보인 것이다. 지금 한국의 상황을 보고 신나하는 사람도 많다. 사실 신나해야 한다. 이 나라의 숨통을 죄고 있던 재벌-부패 관료 체계가 엄청난 균열로 헐떡이고 있다.
차분히 정치를 준비했더라면 정권교체의 호기인 것이다. 단순한 교체문제가 아니고, 근본적 사회개혁을 위한 호기인 것이다.
민노총의 선명한 재벌해체론은 힘을 받아야 한다. 역시 지식노동자가 참여한 노동조직은 다르다. 이때, 재벌-관료 들의 입장에 (가짜 민족주의에 호소하는) 서지 않고, 세계자본과 정면대결을 피하고 재벌-관료 부패 체제 청소를 주장하고 나섰다. 이 땅에 지식인만 제대로 되어 있었다면. . .
다시 구한말의 동학 농민 전쟁이 생각난다. 그 때 민중들은 반봉건-반외세의 핵심 방향을 틀어 쥐었다. 국제 정세에 어둡고, 나라를 만들만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그럼 우리는 무얼 해야 하나.
그런데 IMF 나 미국이 다해주나? 아니 차라리 정치권력까지 포기하고 미국의 식민지가 된다 하자. 그럼 다 되는 일인가? 그렇지 않다. 그렇다 해도, 잘사는 주, 못사는 주가 있으니깐, 캘리포니아나 매사추세츠 처럼 되려면 뭔가 잘 해야 한다. 그게 무엇일까?
그걸 생각하자고 우리가 모여있는게 아닌가 한다. 세계화된 정치경제 체제 내에서, 우리 나라가 우리 노동자가 우리 기업이 모두의 희망대로 남들보다 잘하려면 뭘 해야 하나?
(1997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