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양신규 교수님의 글을 소개하네요. 아이러니에 대한 단상을 쓰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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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ony와 reflection
스탠리 큐브릭의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의 첫 장면은 우리 조상 유인원들이 떼거지로 모여 싸우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몽둥이를 손에 잡는 법을 발견한 첫 원숭이 종족이 아직 그걸 배우지 못한 다른 원숭이 종족을 살해하고 몰아내는 장면이다. 고막과 신경을 심하게 거스르는 원숭이들의 쌈소리, 그리고 그 못생긴 원숭이들이 조악한 몽둥이를 들고 설치는 모습에 조금 불편해진 관객들은 다음 장면에서 곧 위로를 받는다. 갑자기 수십만년이 흘러 다뉴브강의 잔물결 음악을 배경으로 정교하고 멋지게 생긴 물체가 우주공간을 떠다니는 것이다. 1960 년대로서는 매우 장엄하게 아름다운 화면이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이것이 아이러니다.
친하게 지내는 두 사람의 호주 출신 친구들이 있는데, 얘들이 조금 친해지니까 바로 자기 조상들 얘기를 한다. 한 백오십년전 경에 영국에서 법죄를 저지르고 강제이주된 조상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한 사람은 자기 5 대 할아버지가 영국에서 도둑질을 하다가 잡혀왔다는 것이고, 다른 한 사람은 관리였는데 부패해서 잡혀왔다는 것이다. 자기 가족들에게는 이 조상들과 관련된 조크가 상당히 많단다.
영국이나 미국사람들이 쓰는 자기 조상들 얘기 자기 역사 얘기를 보면 상당히 재미있다. 조지 워싱턴은 돈많은 과부와 결혼해서 출세의 기회를 잡은, 열등감에 사로잡힌 우울증 환자였는데, 바로 그 사실 때문에 나폴레옹처럼 독재자가 되지 않고 의회에 권력을 다 주고 자신은 일찍 은퇴했다고 한다.
벤 프랭클린은 미국독립전쟁에 프랑스의 도움을 얻으려고 파리로 파견되는데 파리에 가서 한 일은 여자들, 주로 유부녀들과 놀아난 일이다. 결국 프랑스는 미국의 승리가 거의 분명해질 무렵에야 군대를 보낸다. 토마스 제퍼슨은 "모든 인간에게는 절대로 빼앗을 수 없는 권리가 생명, 자유, 행복추구권이라고 말한 사람인데, 죽는 날까지 노예를 소유하고 여자 노예와의 사이에서 난 자기 아들마저 노예로 부려먹고 팔아먹는 비인간적인 놈이다.
알렉산더 해밀턴은 야심만만하고 교활하고 몹시 거만한 자로 나중에는 여자 문제로 토마스 제퍼슨 대통령 당시 부통령인 버어와 결투하다가 총맞아 죽는다. 유서에 "나는 버어를 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버어보다 고귀하기 때문이다."라고 써 놓았는데, 사람들은 그 유서를 보고 동정하는게 아니고, 해밀턴이 자기가 총에 맞을 경우에 버어에게 죽어서라도 복수하기 위한 간교한 술수라고 여긴다. 토마스 제퍼슨과는 철천지 원수같은 정적이었다.
그런데 이런 교활한 출세주의자에 열등감에 빠진 우울증환자 였던 조지 워싱턴, 바람둥이 벤자민 프랭클린, 공과 사에 원칙이 철저하게 달랐던 위선자 토마스 제퍼슨, 거만해 빠진 해밀턴 이런 사람들을, 건국의 아버지 건국의 형제들이라면서 존경한다. 어떤 이들은 바로 이들이 가진 그런 인간적인 혹은 역사적인 약점들 때문에 그들의 장점이 살아날 수 있었다고 보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더 나아가 이들의 이런 약점들, 그리고 서로 미워하고 헐뜯는 감정들의 발산 덕분에 4 대 근대화 혁명중에 미국 혁명의 초기 역사가 영국혁명, 프랑스혁명, 러시아 혁명과 달리 크롬웰, 나폴레옹, 스탈린 같은 인물들을 배출하지 않고 민주주의로 나아갈 수 있었다고 본다.
사실 생각해 보면 모든 근대화의 역사 중에 미국과 같이 처음부터 현대까지 민주주의가 유지된 경우는 매우 드물다.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만이 아니라 독일과 일본의 근대화과정도 비스마르크나 히틀러,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이 기승을 부렸고, 심지어는 남한, 대만, 싱가포르같은 후발 근대화의 모범국가들마저도 박정희, 장개석, 이광요 등의 독재자들에게 시달려야 했다.
왜 그랬을까? 미국인들의 답은 나폴레옹이나 비스마르크 등과는 달리 조지 워싱턴이 열등감에 빠진 우울증 환자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워싱턴은 우울증에 빠저 만사가 귀찮아져서 빨리 집에 가서 자고 싶었지, 권력을 휘두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최초의 근대국가, 근대국가의 성립과 세 차례에 걸친 산업혁명을 철저한 민주주의 체제내에서 수행하고, 세계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보루가 된 미국의 힘은 초대 대통령이 젊을 때는 교활한 출세주의자, 말년에는 정신병환자였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이것이 아이러니다. 이정도 되면 아름답고 장엄한 아이러니다.
친일 작가 김동인의 3 남이 자기 아버지의 친일행적에 대해 사죄했다고 한다. 매우 드문 일이란다. 자기 가족에 친일파 한두명 없는 사람이 없을까? 왜 우리는 그리 자기 조상에 대해 쉬쉬하는가? 심지어는 요즘은 자기 고향에 대해서도 쉬쉬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나도 고향이 어딘지를 말하기가 꺼려진다.
아이러니를 이해하는 사람들은 만나면 편하다. 아이러니를 조크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 재미까지 있다. 우리는 너무나 경직되어 있다. 우울증 환자와 위대한 정치가는 그리 멀리 떨어져있지 않다. 야심가와 위대한 정치철학자들도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깡패두목과 재벌회장과도 별로 떨어져 있지 않다. 자기 아버지가 조폭두목이었다해도, 자기는 철학자가 될 수도 있고, 훌륭한 연예인이 될 수도 있다. 자신의 조상과 자신과의 관계만이 그런 것이 아니다. 자기의 과거와 자신의 현재도 그렇다. 어제까지 교활한 바람둥이가 오늘부터는 충실한 애인이 될수도 있고, 바로 내일 다시 바람이 날 수도 있다. 왜냐? 인간은 딴 동물들과는 달리 플렉시블한 존재인 것이다. 인간은 던져진 존재가 아니다. 플렉시블한 존재다.
(2002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