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    PW       Auto        
[소개] 미디어에 관한 깊이 있는 정보를 구하고자 한다면... [2]
텍스트밖에 없다. [9]
[번역/moravia] 전두검사신화사(全頭検査神話史) 1/2
[번역] 과연 백신이 문제일까? 1/2 [18]
  [홍성욱] 양신규의 Microsoft: 비판에 대한 재 반박
-
+
  Writer : mahlerian     Date : 09-01-12 00:57     Hit : 1026    
  Trackback URL : http://www.skepticalleft.com/bbs/tb.php/commu_1/732
홍성욱 교수님의 재반론입니다.
 
 
* * *
 
 
양신규의 Microsoft: 비판에 대한 재 반박
 
 
양신규의 반론을 읽다보면 이 친구가 사람인지 사오정인지 잘 구별이 안 된다. 양신규가 달고 다니는 재미있는 수식어가 여럿 있는데 ("치졸천박 오독" "오만과 편견"...) 아마 소칼 방 사람들은 이제 왜 양신규가 이런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으리라. 간단 간단히 논점에 대해서만 반론을 하려한다.
홍성욱의 Microsoft Case 가 왜 잘못된 Contextualization 인가는 이미 본인도 인정한 셈이니까, 거기에 대해서는 오래 얘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자기 글의 약점이 있을 때 쉽게 인정하는 것은 소통을 위한 아주 훌륭한 덕목이다.
 
가볍게 정리하면 홍성욱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1) Microsoft Case 의 기술적-경제적-법률적 Contextualization 을 할 생각이 없었고
2) 조금 작은 문제 "기술에 대한 이해가 어떻게 경제학적 사고에 영향을 미치나, 그리고 그게 어떻게 법률적 사건과 관계가 되나"를 보고 싶었다는 것이다.
 
1) 에 대한 내 반론은 인문학 (이경우는 역사학이라 해두자) 이라는 것이 광대한 Text를 분석해서 제대로 Contextualization 하는 것이 그 엄밀성과 실용성의 출발이라면, 올바른 Contextualization 에서부터 문제를 시작해야 하는 것 아니냐? 하는 얘기다.
 
비유하면 무너질 것 같은 성수대교는 일단 안 무너지게 하고 봐야지, 예쁘게 색깔 칠한다고 될까? 이런 얘기였고, 홍성욱도 reluctantly 인정한 셈이니까, 그냥 넘어가자.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이제 내 원래 의도를 알았으면, 자신의 오독에 대한 사과라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기야 얼마 전에 한국의 경제학자 L의 글을 읽다보니, 그도 양신규와 똑같은 얘기를 하더라. 사회과학자들 무식한 것이야 진작에 알고 있었는데 (문법적으로 맞는 문장을 쓰는 경우가 흔치 않다), 이 정도일 줄은 정말 몰랐다. 아무튼 나는 중요한 것을 배웠다. 내 글의 독자들 중에 양신규같은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이들이 자신의 오독을 발판으로 금방 인문학이 비실용적이니 어쩌니 하는 식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자, 서론은 그만 두고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자. 양신규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홍성욱의 글의 목적이자 내 반론의 항목 2) "기술과 경제학의 연관" 에 대한 나의 반론의 핵심은 홍성욱의 주장인
"기술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새로운 경제학 이론의 형성에 어떻게 기여를 했고, 이런 경제학 이론이 MS와 같은 기업과 그들의 기술을 어떻게 새롭게(즉 독점으로) 보게 했는가"의 인과고리
가 지성사적으로나 실제상황에서 근거가 매우 박약하고 심지어는 ridiculous 하다는 얘기다. 글쎄 관계가 있다면 물론 그리스의 원자가설하고 근대 과학의 원자 가설하고 등의 "상상력 수준"의 관계가 있을 지는 모르겠다.
 
Brian Arthur 와 Paul David 는 물론 Respectale 한 학자다. 그러나 현대경제학의 Increasing Returns to Scale 로 인한 독점 경쟁의 문제나, Path Dependency 의 사고가 이 두 사람을 주축해서 만들어진 것도 사실이 아니고, 또 이 두 사람들을 중심으로하는 사람들의 생각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의 기술이 독점으로 보인 것이 아니다.
이 중 첫번째 문단은 내 반론을 읽어가다 보면, 터무니없는 얘기임이 금방 드러날 것이다.
 
두번째 문단에서 양신규는 몇가지 경제학적 개념의 원천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생각의 근원을 따지는 일은 나같은 과학사학자에게는 일상적인 일이다. 한가지 주목할 사실은, 일단 어떤 idea가 유명해 지고 나면 그 idea를 낸 사람은 자신의 독창성을 강조하고, 그와 경쟁관계에 있는 사람들은 그 idea가 이미 오래 전부터 있었다는 식으로 그 독창성을 깍아 내린다는 사실이다. 학자들이란 사람이 기본적으로 credit of discovery를 먹고사는 사람이어서 그렇다.
 
Brian Arthur의 얘기는 조금 뒤에 하고, 일단 Paul David 얘기부터 하자. 분명한 역사적 사실(fact)은 "path-dependency라는 경제학 개념"이 Paul David가 1983년에 회람시키고, 1985년에 American Economic Review에 출판한 "Clio and the Economics of QWERTY"에서 유래한다는 것이다. (이점에 대해 반론이 있으면 환영한다. 뭐 path-dependency라는 단어가 오래 전부터 있었다는 식의 한심한 반론은 생각도 하지 말기 바란다.) 일단 양신규는, 경제학의 인접분야인 경영학을 전공함에도 불구하고 (또 자신이 경제학에서도 약간은 전문가라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사실"에서의 한심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역사적 사실은, 과학적 사실과 마찬가지로, 눈 가리고 까꿍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계속 나가보자.
스탠다드 오일이나 J. P. Morgan 의 은행처럼 "특정마켓"에서 지배적 지위를 장악하고 그 지배적 지위를 이용해서 경쟁을 억압하거나 소비자를 해쳤는가만 보면 되는 일이다. 자연독점이 형성되는 첫 번째 원인이 increasing return to scale 혹은 economy of scale 인 것은 미시경제101 한 다섯 번째 시간쯤이면 나오는 얘기고, 아마 기원을 거슬러 올라간다면 아담스미스나 그 이전까지도 거슬러 올라갈 수 있었을 것이다.
 
여기에 홍성욱의 스타일과 데리다의 스타일 등 엄밀하지 못한 인문학적 글쓰기 습성의 평행을 본다. 논의전개와 아무 관계없는 Brian Arthur 경제 모델과 Paul David 의 경제사 연구를 아는체 늘어놓고, 오래된 얘기를 새 얘기인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것이다. 더 웃기는 것은 그렇게 아는 체 늘어놓은 경제학지식도 잘못된 것,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정도 되면 양신규의 전공 지식의 수준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Brian Arthur자신이 increasing return이 오래된 개념임을 강조하고 있지 않은가. Brian Arthur에게 새로운 것은 increasing return to scale과 positive feedback로 인한 inferior technology의 lock-in이 knowledge economy의 일반적인 현상이 되고 있다는 얘기 아닌가? 예전 사람들은 increasing-return to scale이 있지만, 그것은 temporal한 것이고, 이것이 주가 된 경제이론은 "wreckage of the greater part of economic theory"(Hicks, 1939)를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점이 차이 아닌가.
 
양신규가 떠 받드는 폴 크루그만의 얘기를 직접 들어보자. "나는 QWERTY식을 새로운 경제학의 조류라고 설명하였거니와, 실제로 이는 1980년대에 들어와서야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뻔한 사실을 알게 되는데 왜 그리 오래 걸렸는가? 답하자면, 기본적으로는 20세기의 경제학자들이 세계의 QWERTY성을 무시하는 것이 편하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경제 이론이란 본질적으로 모형, 즉 현실의 단순화 된 표상의 집합이다. 한 측면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다른 측면을 배제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세계를 모형화하는 데는 체증적 보수가 중요하지 않고, 외부 경제가 존재하지 않으며, 시장 경제의 형태가 역사의 변덕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원에 의해 결정되는 그런 세계가 더 수월한 것이다." (Paul Krugman, Peddling Prosperity, p. 273)"
 
새로운 이론 가운데 어떤 것이 "진정으로" 새로운 것인가를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태도는 물론 바람직하다. 그렇지만, 양신규 식으로, 그것도 정말 쥐꼬리 만한 지식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의 연구나 업적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것은 "오만과 편견"이외에는 다름이 아니다. Krugman을 떠든다고 본인이 무식한 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데리다에 대한 코멘트는 칭찬으로 접수하겠다. 갑자기 양신규가 데리다의 뭘 읽었는지 궁금하다. 내기하건데, 아마 단 한편의 글도 읽지 않았을 것이다. 대중을 위해 쓴 내 글도 이렇게 오독을 하는데, 데리다를 읽었다해도 뭘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내 연구에도 관련이 있지만, (기업의 무형자산에 이 독점적 지위가 들어가니까) 학생들에게 수업시간에 가르치려고 (기술-경제-법률의 종합적 사례로 아주 유용한 teaching material 이다), 좀 자료를 수집한 나도 전혀 기억도 못하는 그 누군지 변호사가 무슨 동기로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가는 전혀 Relevant 한 얘기가 아니다. 그 변호사가 밀린다와 데이트하다가 빌게이츠에게 뺏겨서 성질나서 반독점 고소를 결심했다는 정도의 Relevance 는 있을지 모른다.
대체 이 얘기를 왜 하는 지 모르겠다. Gary Reback이 직접 작성한 "백서"에서 Brian Arthur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고 밝히고 있고, 그 백서가 법정에 제출되어 Microsoft가 Intuit를 합병하는 것이 독점이고 따라서 허가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리는 데 결정적인 증거가 되었고, 이 일 이후에 Reback은 Wired지에 의해 "빌 게이츠가 두려워 할 유일한 사람"으로 묘사되었다는 얘기를 했다. 이 중 어느 부분을 비판하는 것인지 분명히하고, 비판할 것이 없으면 입을 다물기 바란다. (여자 꼬시는 얘기는 왜 나오나? 뉴욕에 살면서 미인을 많이 보더니, 요즘 양신규 관심이 그쪽으로 가 있나보다. 하하...)
 
그리고 Reback의 백서는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다 (한 5분이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백서의 첫 페이지에 "with assistance from Garth Saloner and W. Brian Arthur"라고 명시된 것도 볼 수 있을 것이고... Reback에 대해서는 Business Week에서의 interview (1997. 8. 22), Wired에서의 조금 긴 interview ("The Robin Hood of the Rich" Aug. 1997)을 참조하기 바란다. 그리고 전문가의 권위에만 너무 의존하지 말고, 서치 엔진도 좀 잘 사용하기 바란다. 인터넷은 기본적으로 수 많은 사람들의 brain을 엮어 놓은 것이니까.
또 Brian Arthur 의 경제학에서의 공헌은 (물론 폴 크루그만에 의하면 아무런 공헌이 아니라고 하지만) Increasing Return to Scale 의 발생하는 "하나의" 수학적 조건에 대해 상당히 엄밀하게 (확률통계론을 하는 러시아 수학자와 공동으로) 증명해 낸 일이다. 나보고 Increasing Return to Scale 의 근원을 하루동안 찾아내라면 백 개, 일년 동안 찾아내라면 한 만 개는 주워 섬길 수 있을 것이다. Brian Arthur 는 이런 수학적 업적을 바탕으로 갑자기 Increasing Return to Scale 이 마치 자기의 발명인 것처럼 말하고 다니기 시작하고, 초기에 몇몇 풋내기 경제저널리스트들이 속았는데 (이 행위 때문에 브라이언 아더는 폴 크루그만한테 사기꾼이란 소릴 듣는다.) 홍성욱은 1998 년 에 쓴 글에서 아직도 그런 잘못된 저널리스틱한 View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 문단은 매우 중요한 문단이다. 양신규 생각의 source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크루그만은 1998년 1월 14일 Slate Magazine(Microsoft에서 나오는 잡지다)에 Brian Arthur를 강하게 비판하는 (특히 New Yorker magazine에 의해 소개된) 글을 썼다. 그의 비판의 요지는 Arthur가 increasing-return 개념의 창시자(1979년)라는 것("the story of how Stanford Professor Brian Arthur came up with the idea of increasing returns")이 "pure fiction" "great story"라는 것이다. 그가 내 놓은 한가지 증거는 국제 무역 이론에서 increasing return에 대한 오랜 전통이 존재하며, 특히 Victor Norman의 공저 Theory of International Trade (1980)의 한 챕터가 바로 이 increasing return에 할당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또 다른 증거는 Arthur의 수학 모델이 1970년대 게임 이론가인 Thomas Schelling의 모델과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노벨상 수상자인 Kenneth Arrow의 반론이 있었다. 간단히 Arrow의 반론을 소개해 본다.
 "Further, Arthur has never made any such preposterous claim ... On the contrary, his papers have fully cited the history of the field and made references to the previous papers, including those of Paul Krugman ...The point that Arthur has emphasized and which is influential in the current debates about antitrust policy is the dynamic implication of increasing returns. It is the concept of path-dependence... Techniques of production may be locked in at an early stage."
크루그만은 자신이 "pissed off"(엿먹은 기분이)돼서 이 글을 썼다고 한다. 왜 그럴까? 이 이유를 알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Krugman은 international trade에 대한 경제학적 이해로부터 increasing return개념이 출발했고, 이 international trade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1978년 경 "전세계에 흩어져 있던 경제학자들 몇몇이 '국제 무역이 왜 있지'라는 순진한 질문을 하기 시작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하고 있다. 자, 흥미있는 사실은, 크루그만 자신이 바로 이 질문을 던진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내가 위에서 얘기했지만, increasing return을 둘러싼 Arthur와 Krugman의 논쟁은 credit of discovery를 놓고 벌어진 전형적인 논쟁이다.
 
그런데 양신규는? 이런 것을 알고나 하는 얘기일까 (물론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크루그만 '선생님'이 얘기하면, 다 옳은 얘기로 받아들이는 '식민지적 근성'의 발호는 아닐까? 나의 기우이길 빈다.
폴 데이비드는 역사학자로 타자기에서 이런 현상을 재밌게 기술했다. 하지만 재밌는 것은 타자기가 브라이언 아더의 이론이 적용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혀 독점이 형성되지 못한 사례의 하나다.
이 부분에서는 "지식"이 아니라, "지능"이 의심스러워진다. "타자기" 독점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qwerty라는 "키보드 자판" 독점을 얘기하는게 아닌가? 그냥 양신규가 실수했다고 쳐 두자.
브라이언 아더나 폴 데이비스의 생각은 이 반독점케이스와 전혀 정말 터럭만큼도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다시 정리하면, 독점은 브라이언 아더의 모델과 관련없이도 얼마든지 생겨나는 일이며, 또 브라이언 아더의 모델대로라도 폴 데이비드의 타자기사례에서 보이듯이 전혀 독점으로 발전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다시말하면 브라이언 아더의 공헌과 독점문제는 이론적으로도 경험적으로도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다. 필자가 참여한 Microsfot 사례에 관련한 주요 Conference 를 포함 수많은 논문, 주장에서 필자는 Brian Arthur 나 Paul David 의 주장을 한 번도 본 적도 없다.
Appraising Microsoft and Its Global Strategy (Conference)
Washington, DC (November 13, 14, 1997)
Thursday, November 13, 1997
1) Introduction/Welcome (Ralph Nader)
2) "An Overview of the Microsoft Strategic Plan and How They Accomplish Their Goals" (Gary Reback)
3) "Microsoft and Increasing Returns" (Prof. W. Brian Arthur)...
......

(양신규가 컨퍼런스에 몇개나 참석했나... 사실 확인부터 좀 하고 얘기하면 고맙겠다)
폴 로머의 증언은 최근 마이크로소프트 케이스의 정부측 주장을 서포트하는 서류로 첨부된다. 더구나 브라이언 아더의 생각과 비슷한 주장인데 조금 다른 훨씬 간단한 모델로 광범하고 치밀한 연구를 벌써 20 여년째 해오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예를들어 버클리의 Carl Shapiro 와 NYU 의 Economides 같은 사람들이다. 역시 Carl Shapiro 의 증언은 연방정부 주장을 서포트하는 증언록에 포함 되어있다. 또 한사람의 이 문제에 대한 경제학자로 주목할 만한 사람으로는 MIT 의 Rebecca Henderson 이다. Romer, Hesderson, Shapiro 이 세 사람이 이번 연방정부의 마이크로소프트 분할 증언에 포함된 단 세사람의 경제학자이고, 누가 봐도 타당한 인선이었던 것이다. Economides 는 필자와 같은 학교 동료지만, 분할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필자는 물론 찬성하는 입장이다.
처음으로 재미있는 얘기가 나왔는데, 반독점국이 Arthur-David의 이론적 배경에서 Romer-Henderson-Shapiro로 넘어간데는 이유가 있다. 물론 이 얘기는 내가 글을 쓴 98년 초엽에 있었던 얘기가 아니라, 한참 뒤에 생긴 얘기이다. 내 기억에 의하면, 나는 98년 초엽 양신규에게 이런 shift가 생길 것이라고 예측까지 하고 그 얘기를 했던 것 같은데... 아무튼 이 얘기는 나중에라도 좀 더 해볼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내 글에 대한 양신규의 반론과는 별 관계가 없다. 나는 점장이가 아니니까.
홍성욱의 최근의 사건을 Contextualization 해보고 현재적 문제를 연구하고 그것을 교육하고 하고, 또 그것을 엄밀한 연구에 바탕을 해서 하자는 주장과 스스로 경주하는 노력에 존경과 격려를 보낸다.
 
나도 인문학자들이 정말 이런 일을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 강의 시간에도 글 잘못쓰는 공학자나 경제학자들 논문만이 아니라, 글 잘 쓰는 인문학자들의 글도 많이 넣을 수 있었으면 나한테도 학생들한테도 도움이 많이 될 것이다.
어떻든 칭찬을 들으니 기분은 좋다. 하하...
그런데 문제는, 인문학의 저술들이 그런 실용성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용성이 없는 이유는 인문학이 무슨 고고한 문제를 연구해서가 아니라, Intellectually Sloppy 한 연구 결과를 내고, 그것을 어거지로 변호하고, 그 어거지 변호에 대해 주석이나 달고 그래왔기 때문이다.
 
내가 알고 있기로는 홍성욱이 한국인 인문학자로는 세계수준의 작업을 하고있는 몇 안되는 인문학자인데, Microsoft Case 같은 Sloppy 한 글들이나 남발해서야 그리 희망적이지 않을 것이니, 반성하고 좀 제대로 해보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또 삼천포로 빠졌다. 양신규. sloppiness는 어쩌면 자네한테 있을지도 모르니까, 이런 얘기 하고 싶으면 거울이나 한번 들여다보고 하게나...
 
 
 
 
(2000년 05월 11일)
skynag.com에 남겨주신 mahlerian 님의 최근 포스트 MORE▶
[skyang] 법률적 처분을 넘어서: 송두율의 문제
[skyang] 송두율 문제, 이 기회에에 반드시 해야할 일
[skyang] 홍세화의 송두율 옹호 비판
[skyang] 송두율은 법만이 아니라 인륜으로도 용서하지 못한다
[skyang] 외환위기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나?

No Subject writer Date Hit
고(故) 양신규 교수님 추모 및 skyang.com 준비 게시판입니다. ChiefEditor 10-11 1517
[최용식] 불화와 관용, 故 양신규 교수를 그리며 mahlerian 05-26 3060
[Erik Brynjolfsson] 양신규를 추도하며 (In Memoriam, Shinkyu Yang) mahlerian 05-25 3159
[최병천] ‘불꽃’처럼 살다 간 어느 정직한 리버럴리스트의 죽음 mahlerian 05-25 3289
양신규 교수님 묘소 찾아가는 법 mahlerian 10-22 4327
양신규 교수님의 프론티어 인사글 (자기소개글) mahlerian 09-20 6136
176 [skyang] 법률적 처분을 넘어서: 송두율의 문제 mahlerian 04-03 680
175 [skyang] 송두율 문제, 이 기회에에 반드시 해야할 일 mahlerian 04-03 634
174 [skyang] 홍세화의 송두율 옹호 비판 mahlerian 04-03 681
173 [skyang] 송두율은 법만이 아니라 인륜으로도 용서하지 못한다 mahlerian 04-03 684
172 [skyang] 외환위기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나? mahlerian 01-02 913
171 [skyang] 60세 정년? 미국에는 왜 정년이 없는가? mahlerian 01-01 727
170 [skyang] 개인과 공동체의 긴장? 어디표 현대철학? mahlerian 01-01 713
169 [skyang] 전교조의 문제: 학교는 없다 mahlerian 01-01 723
168 [skyang] 우리나라에는 리버럴 좌파, 우파 다 없는 것이 아닌가? mahlerian 01-01 692
167 [skyang] 좌파의 일반 상식 mahlerian 01-01 671
166 [skyang] 책임을 엄중하게 물어야 : <한겨레 21> mahlerian 01-01 546
165 [skyang] IMF 구제금융, 제2의 한일합방인가? mahlerian 01-01 554
164 [skyang] 야만과 문명 : 삼성생명사태 mahlerian 12-13 602
163 [skyang] Irony와 reflection mahlerian 10-11 719
162 고(故) 양신규 교수님 추모 및 skyang.com 준비 게시판입니다. ChiefEditor 10-11 1517
161 [skyang] 삼김의 역사는 청산이 아니라 계승하는 것 (2) mahlerian 07-24 894
160 [skyang] 호남지역주의는 민주주의 발전의 초석이자 동인 1 mahlerian 07-24 897
159 [skyang] 내가 웃은 이유와 내가 들쑤시는 이유 mahlerian 07-24 923
158 이성과 감성 (1) 미러님 06-14 789
157 === 요 아래는 "Sokal's Hoax, 과학 vs. 인문학" 토론입니다. === mahlerian 01-15 1147
156 [skyang] 아직 끝난 얘긴 아니지만. 일단. ---- (끝) mahlerian 01-12 1259
155 [홍성욱] 답변 mahlerian 01-12 1100
154 [skyang] 홍성욱교수 지적나태, 변명, 변명의 주석; 중상모략 mahlerian 01-12 1267
153 [홍성욱] 양신규의 Microsoft: 비판에 대한 재 반박 mahlerian 01-12 1027
152 [skyang] 홍성욱의 Mircorsoft: 컨텍스트오류와 지적나태 mahlerian 01-12 1192
151 [홍성욱] 양신규교수의 `인문학 위기론 문제점`에 대한 반론 mahlerian 01-12 949
150 [skyang] 홍성욱교수 인문학 위기론의 문제점 (1) mahlerian 01-12 1292
149 [홍성욱] 양신규교수의 "물리학 규범.."을 읽고 mahlerian 01-12 1180
148 [skyang] 물리학의 규범과 현대지식사회의 기반 mahlerian 01-12 849
147 [홍성욱] 양신규 교수의 반론에 대한 재반론 mahlerian 01-11 1075
146 [skyang] 홍성욱의 소칼서평과 상대주의변호 비판 mahlerian 01-11 1176
145 [홍성욱] <지적 사기>의 과학과 철학을 넘어 ---- (시작) mahlerian 01-11 1438
144 [skyang] 투쟁의 기억... 그리고... mahlerian 01-04 853
143 [skyang] Lunch with Natasha mahlerian 01-04 878
142 [skynag] touch, grooming, and community mahlerian 01-04 825
141 [skyang] promiscuity mahlerian 01-03 782
140 [skyang] 100인 위원회의 사이버 테러 mahlerian 01-03 964
139 [skyang] 매춘 합법화해야 mahlerian 01-03 1296
138 [skyang] 처첩갈등이 여성운동인가? (6) mahlerian 12-31 1075
137 [skyang] 시앗싸움에 민주주의마저? mahlerian 12-31 798
 1  2  3  4  5  
고시제도가 정말로..
mahlerian/2010-09-09
효도르 그리고 성..
종이컵/2010-09-09
Garry 님 천안함 침..
paracelsus/2010-09-09

중국이야 북의 사..
Garry/2010-09-10
만약 이 논리로 행..
알베르트/2010-09-10
equilibrium/ 대물림..
mahlerian/2010-09-10
자연인이 애를 갖..
무소의/2010-09-10
넵. 잘알겠습니다. ..
equilibrium/2010-09-10

의료일원화특별위원회 의료일원화국민연대 healthlog 미디어워치 柱, 나는 사실을 존중한다 TED the skeptic's dictionary 한글판 the TalkOrgins Archive 한글판 Quackwatch 한글판 COUNCIL for SECULAR HUMANISM the Brights CSI RICHARD DAWKINS.net (주)시대정신 조갑제닷컴 하종강의 노동과 꿈 사회디자인연구소 skyang.com

   About Us   |   FAQ   |   Terms Of Service   |   Private Policy   |   Site M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