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신규 교수님의 예전 민주화투쟁 시절의 이야기 중 하나. 나중에 요런 종류의 이야기만 따로 한번 모아서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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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의 기억... 그리고...
80-83년까지 내가 대학 1-4 학년 때가 아마 긴급조치 시절 유신때와 비슷하거나 대학상황이 더 억압적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81년에는 김태훈열사가 옥상위에서 괴성을 지르고 떨어져내리는 것을 내 눈으로 보았다. 그리고 김태훈 열사가 떨어지자마자 학생들이 아니라 짭새들이 우르르 몰려가고 학생들은 도망가야 되었었다.
그런데 83 년이 되자 조금씩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일단 82년도에 79학번 학도호국단 간부들중에 민주간부가 생기기 시작했고, 83년 즉 80학번 때에는 음미대를 제외한 거의 전대학에서 민주간부가 선출되었다. 나도 이 때 물리과학회장 자연대체육부장으로 하킴이 여성부장으로 있었던 "민주"총학도호국단을 몸으로 모셨다. ^^
김근태의원 등이 목숨을 걸고 건설한 민청련이 뜨고 김영삼씨가 단식농성을 나서고 슬슬 상황이 변하고 드디어 83-84 년에 걸쳐서는 대규모 학내투쟁 - 짭새군과 학생군과의 조직적 전투 - 가 벌어지고 드디어 짭새들을 학내에서 몰아내고 해방구를 건설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해방구 건설을 문자 그대로 머리박 깨지면서 해 놓고, 당시 촌스런 운동권들은 노동현장으로 들어간다고 설칠 때 우리는 지식노동자운동의 선두에 서겠다며 취직의 길로 들어섰다. 조금 있다가 보니까 유시민이 우리가 건설해 놓은 해방구에서 프락치를 잡겠다고 어믄 사람을 두들겨 패고 그 때문에 유명해졌다.
조금 지나니까 강철이라는 이름의 싸가지 없는 자식이 나와서 되지도 않는 품성 운운하며 선배들을 조롱하더니, 별 시덥지도 않은 얘기들을 가지고 애들을 꼬드기는데 나중에 보니까 개똥철학 주사를, 동그라미 그리는 것 밖에는 모르는 머리 안돌아가는 학력고사 세대 애들에게 팔아먹고 있는 것이었다. 지식노동자조직을 하던 우리 청년과학기술자협의회에도 82학번부터 84학번 정도에서 이런 넘들이 들어오더니 시덥잖은 소리를 하면서 지랄을 떨기에 전부 제명시켜 버리기도 했다.
과학기술자 노동운동을 하자고 모인데에 와서 반과학 반핵운동을 하자고 설치길래, 야 이넘들아 니덜은 노동운동하는데 가서 반노동운동하자고 할 넘들이라고 했다. 어느순간 반핵얘기가 쏙 들어가고 이번에는 뭔 반공해 반과학운동만 하자구 해서 봤더니 방송에서 북도 핵개발을 해야겠다고 설쳤대나 뭐래나? 아무튼 이넘들 제명하느라고 조직의 힘이 엄청 빠지고, 지식노동자론 개발해야할 동지들이 주사반대한다고 이번에는 피디로 빠지고... 아무튼 골이 빠개졌다.
요 새끼들이 자꾸 주사파짓을 하고 다니니까 삼성에서 과기협이 이적단체라고 찔렀고, 어믄 내가 보안사 사찰명단에 오르고, 어믄 내 친구도 삼성에서 쫓겨나고 도망간 신도리코에도 삼성넘들이 찔러서 거기도 쫓겨나고... 암튼 지랄 갔았던 기억이 난다.
내 생각으로 82 학번 이후의 사람들 중에 절망 끝에 목숨을 걸고 뭘 해보겠다는 각오를 한 사람들은 재밌게도 아예 북하고 손을 잡고 해보겠다고 생각한 chinchin 같은 중부지역당 사람들 정도가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아무튼... 언젠가 누가 이 역사를 정리해야 한다. 잊어먹기 전에. ...
(2003년 05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