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옛날 100인 위원회 사건과 관련 양신규 교수님이 의견을 표명한 글입니다. 100인 위원회 사건에 대해서는 아래 기사를 참고하세요.
* * *
100인 위원회의 사이버 테러
100 인 위원회의 행동은 사이버 공간의 테러 내지는 사설폭력(lyinch) 행위이다. 테러라는 말에 반감을 갖지 말기 바란다. 우리 민족의 영웅 안중근 의사는 테러범이었었고, 민족의 존경받는 지도자 김구 선생은 테러단 두목이었었다. 노동운동, 여성운동과 함께 지난 세기 진보운동의 3대 기둥에 해당하는 민족해방운동은 우리 나라에서만이 아니라 인도의 비폭력운동 등을 제외하고는 어느 나라나 주로 테러와 게릴라전에 의존했었다.
일단 100인 위원회의 무차별 폭로전술이 왜 유사테러행위에 해당하는 가를 살펴보자. 우선, 그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명백히 밝히지 않은 채로 여성억압의 대명사라고 본인들이 판단한 16 명의 남성들, 운동사회에서는 제법 무게가 나간다 할 수 있다고 본인들이 판단한 남성들의 정치 사회적 삶에 치명타를 가하려고 하는 중이다. 이런 행위는 단체의 존재와 그 목적은 밝히면서, 직접 테러를 가하는 테러리스트들은 철저히 비밀에 붙이는 테러리스트 조직과 아주 흡사하다.
100인위원회의 행동이 유사 테러인 또 다른 이유는 그 폭로가 구체적인 법률 절차를 따르거나, 새로운 법률을 만들자는 운동이 아니고,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뉴스거리를 만들어 주의를 환기시키려는 목적으로 주로 테러 대상의 사회 정치적 생명에 치명적 타격을 입히려는 의도로 행해졌기 때문이다. 100인 위원회의 행위가 유사 테러 행위라 여겨질 수 있는 마지막 이유는, 테러 대상의 기준을 설정할 때 스스로의 기준에 집착하고 있다는 점이다.
성폭력이냐 아니냐를 가릴 때 피해자의 진술 만을 기준으로 삼는다는 점이 특히 문제다. 이 기준은 두 가지 단서 1. 피해자의 진술은 진실이다 라는 사실에 관한 명제, 그리고 2. 피해자의 진술은 폭로되는 것이 좋다는 가치 판단이 있을 경우에 정당화 될 수 있다. 둘 중의 하나도 참이 아니다.
앞에도 말했듯이 테러 행위라 해서 모두 잘못된 것은 아니다. 안중근 의사와 김구선생의 테러행위는 조선의 민족해방운동의 존재를 알리는 중요한 긍정적 역할을 했고, 민족해방투쟁의 상징이 되어서 많은 독립운동가들과 그 지지자들에게 용기를 주었다. 결국 테러행위가 언제 테러행위가 정당화되느냐하는 문제는 상황과 그 행위의 효과를 감안한 전략적, 전술적 선택의 문제일 것이다.
나는 실제로 우리나라의 70-80년대에 민주화투쟁당시 군사독재의 우두머리들에 대한 테러 행위가 정당화된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또, 이유와 배경을 불문하고 김재규의 박정희 대통령 암살은 남한의 민주화에 공헌을 했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물론 그렇다고 당시에는 테러 행위만이 정당한 행위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고, 내가 테러범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용감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테러를 수단으로 삼는 민주화투쟁도 다른 여러 수단과 함께 정당한 운동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생각했었다.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는 상황이 전혀 변해서, 테러는 중대범죄로 처벌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1987년 이전과 그이후가 다른 이유는 직선제 개헌으로 정당한 절차에 의한 정권의 교체라는 형식적 절차적 민주주의가 달성되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고, 형식적 절차적 민주주의가 보장이 된 이후 민주주의를 위한 테러 행위는 범죄행위라고 생각한다.
여성 100인 위원회는 지금 모습으로는 유사 테러 조직이다. 이 조직은 테러 행위 자체로 아주 큰 효과를 거두었다. 운동사회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에서 성폭력에 대한 남성들의 주의는 크게 환기되었을 것이고, 이 심각하고 음습한 문제에 활발한 관심과 토론의 빛을 비추는 큰 역할을 했다. 또, 이들이 테러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절망감 역시 우리 사회의 절망적인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여성억압상황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는 일이다. 일단 100인 위원회는 성공적인 테러리스트 조직이다.
나는 남한의 여성운동에서 테러전술이 정당화 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판단하지는 못하겠다. 판단 유보이다. 다만 테러 전술을 선택하는 여성운동가들에게 다음과 같은 점들을 당부하고 싶을 따름이다.
첫째는 테러전술을 택하더라도, 테러 대상을 훨씬 더 엄정하게 물색해야할 것이라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테러 전술이 정당성을 부여받는 경우라 할지라도, 거부의사가 분명하지 않았을 때의 행위를 모조리 성추행으로 분류하고 사실 여부의 기준을 피해자의 진술에만 의존하여 성폭행범으로 분류하는 것은 테러 행위의 정당성을 현저히 감소시킨다. 안중근 의사가 이또오 히로부미 대신 철없이 대동아 공영권을 외치는 일본의 중학생들을 테러했다면 그의 행위를 우리가 지금처럼 칭송하진 않았을 것이다.
피해자 진술에만 의존하는 테러 대상 선정행위는 결국 여성운동의 공신력을 떨어뜨리는 방향으로 작용할 것이고, 나중에는 그 잘못된 논리의 귀결이 본인들에게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100 인 위원회의 활동에 앙심을 품은 어떤 남성이 백인 위원회 여성위원들을 상대로 성추행을 당했다는 폭로행위를 한다면, 피해자중심주의를 따른다면 어떤 반론의 명분이 있을 것인가? 물론 그런 보복이 무서워 익명으로 숨어있을 수 있겠지만, 그것도 언제까지나 안전한 것도 아니다.
둘째는 테러행위 자체가 현재 남한의 상황에서 정당화될 수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 훨씬 심각한 고민을 했으면 한다. 여성운동은 참정권운동부터 비폭력운동으로 성공을 거둔 역사를 가지고 있다. 20 세기의 노동운동, 흑인의 시민권리운동, 여성운동 역시 비폭력 운동으로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역사의 진보를 일구어 냈다. 이미 동등한 참정권이 있고, 표현자유가 철저하게 보장된 남한의 상황에서 테러행위나 유사 테러행위가 얼마만큼 정당화될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 할 것 이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점은 가해자라 칭해진 사람들에 대한 무죄추정의 원칙(not guilty until proven guilty)이다. 100인 위원회의 테러 사건의 정당성여부를 떠나서, 옆에서 이 사건을 관심 있게 지켜보는 사람들은 100인 위원회가 공개한 그 피해자들의 말을 믿지 않을 자유가 있고, 나아가서 일단 믿지 않는 것이 올바른 태도일 것이다. 사실 입증책임은 피해자들에게 있는 것이다. 관심 있게 지켜보는 사람들을 배심원이라 비유한다면, 배심원들은 성추행범이라 공개된 사람들을 그 행위가 명백하게 입증될 때까지 무죄라고 생각하고 모든 행동을 하면 될 것이다.
(2001년 0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