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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병천] ‘불꽃’처럼 살다 간 어느 정직한 리버럴리스트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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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riter : mahlerian     Date : 08-05-25 09:36     Hit : 3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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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천님이 <말>지에 기고한 양신규 교수님 추모글입니다. 양교수님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올립니다.
 
 
* * *
 
 
‘불꽃’처럼 살다 간 어느 정직한 리버럴리스트의 죽음 - 고(故) 양신규 교수를 추모하며
/ 최병천 민주노동당 의정지원단 부장(chuni1970@hanmail.net)

 
 
 
필명 skyang, 이름 양신규, 직업 미국 뉴욕대 교수. 2000년을 전후하여 나우누리 ‘21세기 프론티어’ 활동을 했거나, 2001년 이후부터 안티조선 ‘우리모두’ 쟁점토론 게시판, 그리고 여성문화동인 살류쥬 사이트를 들락날락 거려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그 이름을 들어봤을 것이다.
 
양신규님(인터넷 호칭을 그대로 살려 ‘님’이라고 표기하고자 한다)은 말 그대로 인터넷 공간에서 ‘명성’이 자자한, 또한 전투적 글쓰기를 했기 때문에 때로는 ‘악명’(?)이 높았던 논객이었다. 그는 ‘강력한’ 글쓰기 내공을 가지고 있었다. 적절한 비유, 명쾌한 문장, 논리적 예각이 분명했다. 그리고 언제나 쉽게 읽히는 글을 쓰는 탁월한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가 지난 2005년 7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우울증에 의한 자살이다. 이 글을 읽고 혹시라도 이상한 상상을 하는 분이 있을 듯해 밝히자면, 우울증은 그냥 지나가는 병도 아니고, (양신규님 표현에 따르면) “몸은 괜찮은데 마음만 아픈 병”이 아니라 몸에 이상이 생긴 병이다. 다만 그 몸의 이상이라는 것이 두뇌의 신경활동과 관계가 있는 ‘세로토닌’인 것만 다를 뿐 다리가 부러지거나 장티푸스에 걸리거나 위암이 생긴 것과 똑같은 병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글은 비록 정치적 견해는 약간 달랐지만 필자가 몹시 좋아했던, 그리고 필자를 몹시 아껴주었던 양신규님을 추모하기 위해 작성하는 글이다. 뒤늦은 추모이지만, 『말』측의 요청이 있었고 그의 ‘가치’에 비해 너무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청탁에 응하게 되었다. 본 글 내용은 ‘하종강과 노동의 꿈’(http://www.hadream.com/)에 있는 추모 게시판에서 많은 부분을 참고했음을 밝혀둔다.
 

20대 전체를 남한 민주주의에 바치다
 
양신규님의 아버지는 문익환 목사 계열의 기독교 장로회 소속이었고 반유신 인사였다. 그래서 신규님이 고3이던 79년 박정희가 죽자 집안에는 희망이 넘쳤다고 한다. 신규님이 대학에 들어간 이후 (박정희가 죽었으니) 데모를 안 해도 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전두환-노태우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가 등장하고 이른바 80년 봄이 시작된다. 당시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1학년이었던 신규님은 5월 14일 시위에 적극 가담하게 되고, 영웅적으로(?) 싸우다 머리에 최루탄을 맞아서 머리를 열두 바늘 꿰매는 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이후 신규님은 물리학과 학생회장을 맡는 등 학생운동에 적극 가담하게 된다. 그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1980년부터 1992년까지 20대를 홀라당 다 남한의 민주주의를 위해” 사는 삶을 선택한다.
 
“우리는 만 열여덟 살, 그 어린 나이로는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인생을 건 선택을 해야 했다. … 그녀의 조잡스런 문장력에도 불구하고 공지영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 하나, 내가 생각하지 못한 소중한 구절, 나를 몇 번이고 울린 그 구절을 그녀가 생각해냈기 때문이다. 당시에 우리 앞에 던져져 있는 물음은 하나밖에 없었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킬거냐 말거냐. … 80년대의 대학은 전쟁터였다. 전쟁의 명분은 인간에 대한 예의, 적은 인간성 말살 파시스트들, 그리고 우리들의 무기는 젊음과 동지들과의 우정밖에는 기댈 것 없는 몸뚱아리….” (97년 3월, 다시해보는 우리들의 대차대조표, 21세기 프론티어)
 
이후 그는 주변의 청년 과학도들과 함께 청년과학기술자협의회 창설을 주도하고 회장을 맡게 된다. 이에 대해 주변에서는 신중간층은 쁘띠 브루주아에 불과한 것 아니냐, 현장에 투신하지 못한 주제에 무슨 운동을 한다는 것이냐라는 비난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비판에 직면하면서 그는 과학기술자 운동에 맞는 이론적 무기를 찾아 나섰다고 한다. 바로 장명국씨의 사무기술직 노동운동론과 황태연씨의 지식 프롤레타리아론이었다. 특히 당시에 독일에서 공부하던 황태연씨에게 직접 연락을 하여 이후에도 지속적인 교류를 하게 되고 사상적으로도 많은 부분 같은 행보를 하게 된다. 지식노동자론, 지역-계급연합론, 더 나아가서 2002년 대선 시기 반한나라당 노선으로서 정몽준 후보에 대한 지지와 후보 단일화론, 민주당 분당 반대에 이르기까지.

“내가 지금 한가하게 논문 쓰고 있을 때냐?”
 
92년경 신규님은 회사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회사로부터 장학금을 받아 미국 MIT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기 위해 유학을 가게 되었다. 이런 신규님의 행보에 일부 주변 사람들은 자본주의를 가장 옹호하는 학문인 ‘경영학’을 한다며 심각한 배신감까지 느꼈다고 한다. 당시 그는 유학을 떠나면서 ‘인터넷의 중요성’을 역설했다고 한다. 미국 MIT에 입학한 이후 그는 지적 성실성과 유능함에 힘입어 박사과정까지를 끝마치고 뉴욕대 교수와 MIT 계약직 교수가 된다. 당시 월스트리트 저널, 뉴욕타임즈, 포춘, 비즈니스 워크, 이코노미스트지 등에도 실렸던 신규님의 박사 졸업논문은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한 연설에서 인용을 하며 칭찬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
 
신규님은 미국에서 공부를 하면서도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이 식을 줄을 몰랐다. 나우누리 21세기 프론티어, (필자와 함께 했던) 찬우물 경제소모임, 안티조선 우리모두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양신규님을 추모하며 어떤 분이 그의 글을 모았는데, ‘수집된 것만’ 10년 동안 1000개 정도 되었다고 한다. 미국에서 경영학 교수로 나름대로 인정받고 있던 신규님이 뭐가 아쉬워서 많을 때는 하루에 10여개에 가까운 글을 쓰며 네티즌과 논쟁을 벌였던 것일까? 신규님의 가장 절친한 벗이자,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신규님을 지켜보았던 ‘하킴’님 글의 일부를 인용해보자.
 
“신규는 아주 예전부터, 테뉴어(종신교수)를 받는 것 같은 본인의 성공에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일에 대해서 아주 무심했었다. 예를 들면, 대통령 선거 당시 후보 단일화가 되기 전에, 후보 단일화에 관한 글을 쓰는 일, 이라크 전쟁에 관한 그의 견해를 밝히는 일 등 한국 정치에 관련된 일에 글을 쓰는데 너무도 많은 시간을 써서, 내가 그거 그만 좀 하고 연구논문 쓰고 테뉴어를 받아야 하지 않냐고 했더니, ‘지금 한국에 전쟁이 날지도 모르는데, 내가 테뉴어 받자고 연구논문 쓰고 있을 때냐’고 대답했었다.” (2005. 07. 21, 신규의 최근 심경, 하킴)
 
30대가 넘으면 적당히 사회적 발언을 하고 적당히 자신의 직업적 전문성을 키워도 아무도 뭐라 할 사람이 없었을텐데, 더군다나 미국에 거주하고 있었으면서, 그는 그런 것을 할 줄 몰랐다. 그것은 실제로 그가 남한의 민주주의에 대한 강렬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적당히 타협할 줄을 몰랐기 때문이다.
 

진보적 자유주의자로서 양신규 교수
 
미리 밝히지만 필자는 좋아하는 학자의 논문을 찾아서 읽는 것처럼, 그의 글을 찾아서 읽었던 ‘팬’ 중에 한 명이었다. 그래서 때로는 그의 글에 매료되었고, 때로는 (정치적 견해가 달랐던 나로서는) 그의 논리를 넘어서기 위한 이론적 씨름을 해야 했다. 그는 상당한 견해차가 있는 상대도 한 걸음 더 전진하게 만드는 그만의 독특한 ‘힘’이 있었다.
 
인터넷 공간에서 논쟁적인 글쓰기를 활발하게 했던 양신규님의 이론적 축을 크게 정리해본다면, △정치철학적으로는 진보적 자유주의 △정치노선으로서 지역-계급 연합론(정몽준 지지, 후보단일화, 민주당 분당 반대) △지식정보혁명에 입각한 현대 자본주의 분석과 그에 입각한 제3의 길 노선의 옹호 △외교노선으로서 한-미 동맹의 중요성(이라크 전쟁 옹호와 반미주의 비판) 등이 아닐까 한다. 하나같이 너무도 굵직한 주제들이다. 최대한 압축적으로 전달하고, 논쟁적인 주제들인 만큼 이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약간 곁들일까 한다.
 
신규님과 필자는 진보적 자유주의자로서의 성향을 공유하고 있었다.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그리고 집단주의적 횡포에 대한 개인의 기본권 보장 등이 그런 것들이다. 더 나아가 평등론에서 본다면 자유주의적 평등론에 입각해 있었다. 과거 몰락한 중앙집중식 국가사회주의(정통좌파적 흐름)에서는 ‘결과의 평등’을 중시 여긴다. 그러나 결과의 평등 이론이 과연 ‘정의로운’ 것인가 볼 때 그렇지 않다. 예컨대 동일한 능력을 가진 A씨가 60만큼 일하고, B씨가 100만큼 일했을 때 A씨도 80을 분배받고, B씨도 80을 분배받을 때 이를 평등(공평)하다고 할 순 없다.(이러한 도덕적 해이 현상으로 국가사회주의가 붕괴했던 것이다.)
 
물론 ‘기회의 평등’으로 요약되는 자유주의적 평등론은 ‘최초의’ 불평등에 대해 침묵한다는 점에서 결정적인 약점이 있다. 그래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조건의 평등’이라고 할 수 있다. 기본은 기회의 평등으로 접근하되, 개인과 집단들에게 다시 기회를 줄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를 국가-시민사회가 공동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공정경쟁’의 개념으로 접근하고 있는 셈인데, 이는 정책적으로 교육기회의 충분한 사회적 제공, (의료, 주거, 최저생계 등의) 필수재화에 대한 사회적 제공, 사회적 안전망 등의 형태로 구체화된다. 이러한 시각에 입각하면 여성, 장애인, 동성애자, 이주노동자, 성매매 여성들은 온정주의적 대상이 아니라 독립된 주체로 설정되며 그들의 실질적 자립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정책적 방향이 설정될 것이다. 실제로 구 사민주의가 국가 비대화로 인해 위기를 겪게 되는 요인에는 온정주의적 복지정책 등이 한몫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work-fare(일하는 복지)를 무조건 나쁜 것으로만 보는 것은 편협한 오류일 수 있으며, 제3의 길 노선의 고민은 진지하게 성찰될 필요가 있다.
 

‘반(反)한나라당’ 정몽준 지지의 이유
 
신규님이 지난 2002년 대선 시기 ‘반한나라당’ 노선에 입각해 정몽준과 후보단일화에 지지를 보내고, 이후 민주당 분당 반대를 주장했던 이유를 이해하려면 저항적 지역주의론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황태연 동국대 교수의 책 『지역패권의 나라』에 나와 있다. 핵심을 요약하면, 한국자본주의는 ‘경상도+재벌+자본주의’라는 것이다. 이는 장·차관(행정)·판검사(사법)·재벌(자본가)·고위급 언론인의 출신지 비율 분석을 통해서도 입증되는 것이다. 즉, 단순한 지역 ‘감정’이 아니라 물적 토대에 입각한 지배-피지배 구조로 보는 것이다. 이에 호남, 충청, 경기, 강원, 제주를 5대 소외지역으로 규정한다.
 
이러한 분석에 입각해 변혁의 주체는 ‘소외지역+중소자본+노동’의 연합세력으로 도출된다. 황태연 교수는 97년 당시 이를 진보진영에도 설득하기 위해 이탈리아 공산당의 이론가 그람시의 남부문제 테제까지도 거론한다. 실제로 저항적 지역주의론은 호남-충청 연합이었던 DJP 연합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며 김대중의 당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대목에서 꼭 짚어봐야 할 것은 이러한 접근이 2002년 대선에서도 과연 유효했던 것인가이다.
 
필자는 지역감정을 ‘유물론적’으로 분석한 업적은 인정되지만 영남-호남의 경제적 격차는 한국자본주의의 압축공업화 과정에서 공업(영남)-농업(호남)의 지역적 분업과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남은 수출 중심 중화학공업에 적합한 입지를 갖고 있었으며, 호남은 남한 최대의 곡창지대로 값싼 농산물 공급의 역할을 맡았다는 것이다. 거기에 김대중이라는 탁월한 정치지도자, 광주항쟁이라는 비극적 사건이 맞물렸던 것이 호남 소외론의 ‘역사적·물질적’ 근거이다.
 
이러한 분석에 입각하면 대안도 달라진다. 특히 현재 시점에서 볼 때 산업화의 완성과 산업구조의 다양화로 인해 공업-농업의 지역적 분업도 타당성을 상실하게 된다. 이는 지역감정에 대한 규정력이 젊은층으로 갈수록 약화되는 것으로 입증된다. 더군다나 광주항쟁의 민주화운동 규정, 김대중의 집권, 그리고 부족하나마 노동세력을 대표하는 민주노동당의 독자적 성장으로 지역연합론은 2002년 상황에서 민주당이라는 개혁적 보수정당 내에서조차 논란을 피할 수 없었다.
 

좌파 경제학자와 치열한 논쟁을 벌이다
 
신규님의 지식정보혁명에 입각한 현대자본주의론에 대한 내용은 황태연 교수의 『과학기술혁명시대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지배와 이성』 등과 ‘하종강과 노동의 꿈’ 사이트 추모 게시판에 있는 김석진님의 논문「지식노동자에 대한 소고」가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지식정보혁명에 입각한 신규님의 현대자본주의론을 거칠게 요약하자면 이렇다. 자본주의적 산업화·기계화 과정에서는 노동과정을 둘러싸고 노동과 자본의 힘겨루기가 존재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ME(극소전자)혁명, 1980년대 컴퓨터와 인터넷의 도입 등으로 인해 지식정보혁명이 진전되면서, 과거 테일러-포디즘 체제하에서 기계(자본)가 중심적 역할을 하고 노동(손노동자)이 부차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것에서 점점 기술·지식(인적자본)의 중요성이 대두하게 된다. 지식노동자의 양적 확대는 물론이고 노동과정에서 지위도 그만큼 상승하게 된다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 지식정보산업이 전통적 산업의 재벌체제보다 ‘진보성’을 가지게 되는 논거가 된다. 또한 노동운동은 사회·정책적 전략으로 평생고용과 임금인상 중심이 아니라 교육투자의 중요성, 재교육 기회의 보장, 사회적 안전망 확보 등으로 확대·재편될 필요가 있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위와 같은 견해에 입각해 신규님은 미국을 비롯한 나라들의 빈부격차를 주로 정보격차와 급격한 산업재편에 따른 구조조정 하에서의 사회적 인프라 부족으로 설명한다. 또한 토니 블레어의 ‘제3의길 노선’ 등도 이러한 지식정보혁명에 조응하는 세계사적 신진보 노선으로 평가했다.
 
일단 현대 자본주의에서 기술·지식·네트워크 등 인적자본이 중요해진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필자는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양극화와 빈곤화를 정보격차와 급격한 산업재편에 따른 구조조정의 문제만으로 설명하기에는 지극히 일면적이지 않나 생각한다. 세계적인 양극화와 빈곤의 심화는 미국 금융자본이 주도하는 세계적 금융화로 인해 금융(감시)-기업(투자) 연관의 약화, 세계화로 인한 ‘국제 분업’의 재편 그 자체, 국민국가적 사회조절 능력의 약화, 인구노령화에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복지)국가의 비효율성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신규님은 또 같은 맥락에서 지난 2000년 『말』 지면을 통해 중소벤처 자본의 육성, 재벌개혁의 획기적 진전, 빈부격차 축소 등을 언급하며 민주적 시장경제론(디제이노믹스)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기도 했다. 그는 좌파 경제학자인 김성구 한신대 교수와 벌인 격렬했던 지상논쟁 과정에서 “관치재벌경제 혁파라는 시급한 당면 과제를 위해 민주적 시장경제론을 중심으로 반재벌신자유주의와 좌파노선이 삼각동맹을 맺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민주적 시장경제론을 “나라를 팔아먹는 정책”이라고 적대시하면서 진보진영이 관치재벌경제의 복고를 기도하는 재벌세력과 실천적으로 연합하고 있는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신규님의 이러한 강렬한 문제제기는, 민주적 시장경제론이 현실에서 어떤 결과를 낳았는가의 문제를 떠나, 당시 계획과 사회화, 국민경제의 민중적 통제라는 추상적 구호만 있을 뿐 설득력있는 대안과 구체적인 실현 방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던 진보진영의 ‘약한 고리’를 인정사정 없이 건드림으로써 적지 않은 자극과 성찰의 기회를 주었다고 생각한다.
 

이라크 파병 옹호론이 진보진영에 던지는 화두
 
이라크 전쟁 파병을 옹호하고 한-미 동맹을 옹호한 신규님의 주장은 한편으로 그가 얼마나 일관된 ‘현실주의자’인지를 보여주지 않았나 생각된다. 사실 이런 주장을 공개적이고 떳떳하게 펼친다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신규님의 논거는 첫째, 이라크 민중에 대한 학살과 고문 그리고 쿠르드족에 대한 인종말살까지도 했었다는 점에서 후세인 정권은 타도되어야 한다는 것, 둘째, 국익에 입각해서 한-미 동맹은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개혁당 홈페이지와 안티조선 사이트에서 격론을 불러일으켰다.
 
신규님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할지언정 이는 진보진영에 쉽게 풀리지 않는 두 가지 화두를 던지고 있었다.
 
첫째는, 파병 논쟁이 있을 당시 국민들의 약 55%가 파병에 동의했다는 점이다. 일제에 의한 침략전쟁 경험을 간직하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이러한 침략전쟁에 대부분 동의하지 않을 듯 했다. 그러나 당시 여론조사를 보면 이라크 전쟁이 침략전쟁이라는 의견이 압도적이었고 부시가 나쁜 놈이라는 의견이 압도적이었음에도, 파병에 대해서는 55%의 국민들이 지지를 보냈다. 이는 국민들이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인식하며 ‘전략적’ 판단을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동시에 진보진영에 “한-미 동맹이 깨지면 당신들의 대안은 뭐냐?”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둘째는, 만일 학살을 자행하고 심지어 인종말살을 자행하는 독재정권이 있다면 국제사회는 ‘평화’(?)의 이름으로 이에 대해 침묵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인권의 보편성, 민중의 이익에 입각한 국제연대의 원칙과 국민국가적 주권(?)의 보장은 어떻게 관계 설정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는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과도하고 주관적인 추정일지 모르겠지만, ‘물리적 병’인 우울증에 시달리던 신규님을 버티게 했던 두 가지 힘은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강렬한 열정과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적 열정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2002년 대선 시기 반한나라당 후보단일화를 지지하고 2004년 총선 직전 민주당 분당에 반대했던 신규님은 탄핵사태 이후 열린우리당의 압도적인 총선 승리를 목격하게 된다. 이후 그는 모든 인터넷 글쓰기 활동을 중지한다. 그리고 우울증에 시달리던 2005년 7월, “경제학·경영학은 더 이상 희망이 없는 학문”이라는 말을 남기고, 학문적 열정마저 잃고 끝내 자살을 하게 된다. 그가 인터넷 공간에 쓴 ‘고향으로 돌아오다’라는 글은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많은 이들에게 약간의 해명(?)이 되지 않을까 한다.
 
“내가 눈물이 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스크럼 짜고 짭새들과 대항하는 그 몽둥이와 돌멩이의 시대를 상기할 때다. 우리 세대는 돌멩이와 몽둥이라는 야만의 시대로부터 담론투쟁이라는 인류 최고의 단계를 몸으로 넘나들며 살은 셈이다. … 그런데 내가 변해가고 있다. 이젠 칼의 세상이 지나가는 것이 느껴진다. 이제는 한반도의 전쟁도 남한의 민주주의도 걱정이 되지 않는다. … 이제 18살 때부터 틀어졌던 내 인생을 바로잡을 때가 된 것 같다. 그것은 어릴 때 소박한 꿈대로 쓸만한 학자가 되는 것이다. ”
 
80년 5월 서울의 봄 한가운데 있었던 사람, 군부독재정권과 싸우기 위해 20대를 ‘훌라당’ 바쳤던 사람, 90년대 초반에 이미 인터넷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사람, 지역연합론을 주장하며 김대중의 당선에 기여하고, 한반도 전쟁을 막고 수구보수세력의 재집권을 막기 위해서라면 종신교수직 따위는 안중에도 없던 사람, 내가 그를 그토록 좋아하는 이유는, 그리고 그의 죽음이 너무도 안타까운 이유는 나는 여지껏 그처럼 ‘논리적으로 정직한’ 사람을 보지 못했고, 그처럼 뜨거운 열정을 가진 사람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18살 때부터 틀어졌던 인생, 어릴 때의 소박한 꿈을 위하여. 신규님, 편히 잠드소서.
 
 
 
편집자주 : 아래는 최병천님이 하드림에 추가로 쓰신 글입니다. <말>지에도 나중에 정정보도 되었습니다.
 
 
 
[하킴] 님과 [오늘 여기] 님이 지적해주신 것처럼, 신규님이 정몽준 지지가 아니라 후보단일화론이었는데, 글 내용이 정몽준 지지로 읽히게끔 써버린 것 같습니다.
 
표현에 대해서 좀더 정확했어야 하는데, 당시 제 머리속에 남아있던 '후단=정몽준 지지'의 일반적 흐름을 곧바로 투영하여 이런 잘못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부족하지만, 그리고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말] 측에 요청을 하여 간략하게라도 '정정'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해보겠습니다.

지적해주신 하킴님과 오늘여기님께 감사드리고, 특히 반론권을 행사할 수 없는 신규님한테 많이 미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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