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은 대법원 판결 하루 전날인 12월 21일 자신의 트위터에서 결백한 뉘앙스를 흘리며 “그 자도 알고 보면 불쌍한 인생”,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정권 바뀌면 손봐줄 사람 많을 것” 이라며 또 다시 명예훼손의 빌미를 남발하고 있다. 웃긴건, 트윗 상으로 강용석 의원을 칭하여 소디스트,소디즘 운운하며 고소집착남의 이미지를 만드는데 일조를 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소송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으니 진씨 본인도 타인을 매질하는 것 못지않게 스스로 매질 당하는 것을 즐기고 있는 모양새다. 그런 와중에 민사소송을 준비하는 변희재 대표의 외통수에까지 걸려버린 형국이니, 그간 정봉주 의원과의 불협화음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 한국예술종합학교의 35억원대 부실사업 취재 건 때문에 소송을 한 것을 단순 '듣보잡' 논쟁으로 이슈화하여 변희재에게 인격살인을 자행하던 진중권의 변태성은 대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여기서 잠시 재미난 인용구를 살펴보자.
"스스로 악을 행할 때의 쾌감과 그 악으로 인해 고통을 당할 때의 쾌감 사이의 이상한 관계는 인간의 내면세계를 세밀하게 기록해 놓은 의사와 작가들이 이미 오래 전부터 감지해 오고 있던 바이다. 새디즘과 매저키즘의 "만남", 양자 간의 유사성은 사드와 마조흐의 작품들에서도 명백히 드러나 있다. 사드의 주인공들 중에서 우리는 매저키즘을 발견할 수 있다. 『소돔 120일』에는 난봉꾼이 의도적으로 고통과 굴욕을 당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타인을 매질하는 것 못지않게 스스로 매질당하는 것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쥘리에트(Juliette)』에서 생 퐁은 자신을 채찍질해 줄 다수의 남자들을 미리 배치시켜 놓고 있다. 라 보르헤스는 다음과 같이 외친다: "나의 변태성으로 인해 더러운 짐승처럼 결국 그 방종에 알맞은 대가를 치르게 되었으면 좋겠어. 나에게는 교수대라는 섬세한 축복의 옥좌가 어울릴거야." - 출처: 질 들뢰즈,<매저키즘>에서 재인용
즉, 들뢰즈에 의하면 논리의 최배달로도 불리우는 진씨는 '아무리 냉철하고 논리적인 것처럼 보여도 결국 자신은 폭력의 편에 서 있을 뿐이라는 것을 증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는 누군가에게 어떤 것을 입증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작가의 고독과 전능함에 관련된 논증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며 이러한 행위의 요점은 바로 논증 자체가 폭력과 동일한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데 있다.' 바로 위에 인용했던 라 보르헤스가 외쳤던 대사 혹은 진씨 자신의 저서에 실린 피터르 브뤼헐의 그림 '교수대 위의 까치'에 대한 본인의 해석처럼 "브뤼헐이 글자 그대로 동료 시민들을 교수대로 보냈다는 뜻이 아니라, 그저 '가십을 퍼뜨리고 다니는 자는 결국 교수대에 달릴 것'이라고 경고했다는 뜻일 게다. 참고로, 네덜란드에서 '교수대 아래서 춤을 춘다.', '교수대에 똥을 눈다.', '즐겁게 교수대로 간다.'는 표현은 무서움을 모르고 경거망동하는 것을 의미한단다. 만데르의 도덕적 해석 속에서 교수대 위에 앉은 까치는 '함부로 남의 험담을 퍼뜨리고 다니지 말라.' 또는 '권력의 무서움을 모르고 경솔한 언행을 하지 말라.'는 도덕적 경구의 알레고리가 된다." 는 본인의 말을 스스로 어긴 셈이니, 이번 소송 건은 '자승자박'이자 '자업자득'인 셈이다.
<교수대 위의 까치> 피터르 브뤼헐, 156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