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제가 입수한 책 서문.
12월 28일 출간에 출간되고 1월 10일에 출판기념회도 한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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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부끄럽고 미안하다. 사람은 대개 자식의 성장을 보면서 세월을 느낀다. 지나온 세월만큼 수십 년을 껑충껑충 건너뛰면서 세월의 두께를 실감한다. 1982년에 나는 대학에 입학했고, 학생운동을 시작했고,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2012년과 1982년에는 30년의 간극이 있다. 30년을 한번 뛰면 1952년으로, 한 번 더 뛰면 1922년으로 간다. 반대쪽으로 뛰면 2042년으로 간다. 그 땐 내 나이 만 79세가 된다. 완전한 황혼이다. 1922년은 1차 대전과 러시아혁명의 여진이 유럽과 시베리아를 진동시키던 시기였다. 1952년은 한국전쟁 중이었다. 그때 나는 태어나지도 않았지만, 총성, 포성,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학살, 추위, 굶주림의 공포가 몸을 오싹하게 한다. 아득해 보이지만 야만의 시대가 1982년에서 불과 30년 건너편에 있다. 그만큼 그 30년은 엄청난 역사적 성취를 이루었다고 볼 수도 있다.
세월을 껑충껑충 건너뛰면서 30년간의 정치․경제․사회발전을 천칭 저울에 달아보게 된다. 그런데 아무래도 1952~1982년의 역사적 성취에 비해, 1982년 이후 30년의 성취가 작아 보인다. 극미한 역할을 했지만 나 역시 주체적 행위자로 참여한 30년이기에, 이전 30년을 책임진 부모세대와 이후 30년을 책임질 자식세대에 대해 여간 부끄럽고 미안하지 않다. 물론 지난 30년은 1987년 6월 항쟁과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연달아 출범시키며 민주화의 신화를 창조한 시기이자, 5천 년 역사에서 드물게도 물질적․문화적 생산력이 중국을 능가하는 시기이다. 그래서 자랑스러워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무어라고 해도 이 시기는 세계 최악의 출산율과 자살률과 교육 스트레스로 상징되는 민생문제가 악화일로를 걸었다. “영혼을 팔아서라도 취직하고 싶다”는 청년의 절규가 터져 나오고, 진보와 보수 기득권의 담합에 의해 양반·귀족과 상놈으로 갈리는 신계급사회의 징후가 완연해졌다. 독재와 배고픔(hungry)은 사라졌지만, 배 아픔(억울함, 박탈감), 가슴앓이(절망, 고독)와 불안, 불신, 분노(angry)가 홍수처럼 흐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주류 정치권과 지식사회는 이렇다 할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미FTA를 폐기하고 복지예산을 지금의 2배로 증액한다고 해도, 무역 1조 달러를 2조 달러로 늘린다고 해도, 남북관계가 획기적으로 개선된다고 해도, 이 심각한 민생문제가 OECD 평균수준으로나마 완화될 것 같지가 않다. 이는 수출과 성장과 재정(복지)의 ‘모자람’에서 생긴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대한민국이 겪는 갈등과 고통은 보수나 진보가 정권을 오래 못 잡아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좌클릭이나 우클릭 혹은 친자본(시장)이나 친노동을 확실히 못해서도, 대통령 한 명을 잘못 뽑아서도 아니다. 소통, 참여, 신뢰부족도 심각하지만, 그 조차도 후순위다. 문제의 핵심은 양극화, 민생불안, 절망과 불신 등은 엄청나게 강력한 확대재생산 구조를 가지고 있으나, 진보와 보수를 초월하여 국가를 경영하겠다는 집단의 지적 수준과 마음가짐(영적 수준)과 국가경영 실력은 형편없다는 데 있다. 그러므로 현재의 국가 시스템과 정치 리더십과 이념으로는 중국과 북한(급변사태)과 자연환경의 도전을 이겨내고, 지속가능한 성장과 평화와 복지를 이룰 것 같지가 않다.
한국전쟁과 60년 가까운 휴전 상태, 처참한 실패 국가로 전락한 북한의 오늘을 보면, 1920~40년대 중국대륙과 한반도에서 좌파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의 실패는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들이 목숨 바쳐 만들려고 하던 나라는 이런 나라가 전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한미FTA와 관련된 저열한 대립과 졸속적 처리 과정을 볼 때, 양극화와 청년세대의 한숨과 눈물에 대해 사실상 무대책인 한국정치를 볼 때, 1970~80년대 대학에서, 거리에서, 공장에서, 교단 등에서 민주, 민중운동을 했던 나 같은 부류의 사람들 역시 절반은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 역사로부터 지난 30~40년의 성과에 대해 성적표를 받는다면 낙제를 면할 수 없을 것 같다. 한민족이, 대한민국이, 우리 세대가 이것밖에 안되나 하는 부끄러움과 미안함이 엄습한다.
1982년 이후 30년을 돌아보니, 내 비록 한 번도 공직선거에 출마해 보지 않았고, 정당에도 가입해 보지 않았으나, 내 인생은 결국 정치를 바로잡으려고 몸부림친 인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30년 전에는 상상조차 해 보지 않은 인생이다. 오히려 소련과 동구의 몰락을 보고, 중국과 북한의 속살을 보고, 노동운동 판에서 내가 할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달은 1992년 즈음에는 ‘운동가’, ‘혁명가’의 인생에서 벗어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당하기 짝이 없는 한국정치와 과거에 화려했던 기억만 되새기는 386세대의 노인증후군이 내 발길을 돌려세웠다.
국내외 환경 및 국민의 요구와 낡은 이념, 제도, 리더십이 격렬하게 충돌하는 상황을 지켜보면, 2012~13년은 1945~53년처럼, 1987~88년처럼, 1997~2000년처럼 커다란 역사의 변곡점이 되리라 생각한다. 아니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시기에 시대가 요구하는 정치혁명이 일어나지 않으면, 사랑하는 자식세대와 청년세대와 북한 동포에게 더 각박하고 팍팍한 미래가 펼쳐질 것 같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2012~13년은 지난 30~40년 동안, (비록 허술하고 편향되었을지라도) 나름대로 공적 가치를 위해서 청춘을 불사른 사람들이 역사의 제단에 자신의 농익은 경험, 지혜, 열정을 온전히 바칠 수 있는 ‘적절한 때’이기도 하다. 육체적 능력, 지적 능력, 관계망으로 볼 때 2012년의 앞뒤 10여년, 합쳐서 20여년이 나와 우리 세대의 역사적 사명을 이행하는 최고의 시기가 아닐까 한다. 당연히 향후 10여년 우리 세대가 역사적 소임을 다하지 못한다면 절반의 성공조차 실패로 되어 완전한 실패 세대로 기록되지 않을까 한다.
뒤틀린 역사와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고 청춘을 불살랐고, 지금은 ‘시대의 혼미’를 깨치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중차대한 시기에 시대의 무지와 착각을 깨치는 책 한권쯤은 제단에 바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작했다.
지난 10여 년 동안 ‘나라의 길’을 주제로 쓴 책이 6권이지만, 뼈를 깎고 피를 말리는 고통을 겪지 않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물론 단 한 번의 예외 없이 ‘2~3개월쯤이면’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해서 호되게 당했다. 이 책은 더 그랬다. 이 책은 짧게는 10여년, 길게는 30여년의 내 지적 활동의 총화이다. ‘현대 사회의 왕’으로 불리는 주류 정당과 그 열성 지지자들, 특히 민주, 개혁, 진보, 평화, 복지로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을 표현하는 사람들의 오래된 사고방식에 의문을 제기하고자 썼다. 유효기간이 다한 진보의 철학, 가치, 비전을 해체, 재구성하여 국민들로부터 두터운 지지와 신뢰를 받는 정치사회세력으로 거듭나게 하고자 썼다. 나이 들면 좀체 안 바뀐다고 하는, 그것도 분단건국, 산업화, 민주화 신화를 창조한 경험에 뿌리박은 사고방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려다 보니 한 줄 한 줄이 시를 쓰는 것만큼이나 많은 고민을 요구하였다.
2011년 5월경, (기존에 써놓은 글이 엄청 많으니) 길어도 2개월만 집중하면 원고를 완성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뜨거운 여름을 온전히 쓸어 넣어 8월31일에 1차 탈고를 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그런데, 그런데 그때가 시작이었다. 결국 이 놈의 원고는 12월 초순까지 내 지적 에너지, 아니 생체에너지의 대부분을 빨아먹었다. 게다가 사회디자인연구소 운영과 새로운 정치운동이라는 녹녹챦은 짐까지 지워져 있어서 더더욱 힘들었다. 지난 6개월간은 이 책 집필에 거의 바쳐졌다. 아마 앞으로는 이렇게 무리해서 책을 쓸 것 같지가 않다.
낮 시간에 다니는 시내버스나 지하철이야 놓치면 다음 차를 느긋하게 기다리면 된다. 하지만 막차나 예약된 비행기를 놓치면 엄청난 낭패를 겪게 된다. 그래서 때로는 체면 불구하고 지하철 역사나 공항 터미널을 뛰어야 한다. 나는 무거운 배낭을 지고 맨발로 혼신의 힘을 다해 뛰었다. 그 어떤 세대보다 많은 기회, 도전, 희망을 누렸던 40대 후반의 민주화운동 세대가, 우리 세대가 사실상 가불해 써버린 기회, 도전, 희망을 청년세대와 자식세대에게 조금이라도 돌려주고자!
2011년 12월 여의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