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이 뇌졸중 휴유증으로 죽었다는군요. 오늘 19일 12시 조선중앙방송의 보도입니다.
그런데 불과 며칠 전인 12월 16일에 제가 김정일의 죽음을 소재로 해서 그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 지에 대해서 글을 쓴적이 있습니다. 김정일의 사망 시각은 바로 그 다음 날인 17일 오전이고요.
계속 북한 얘기를 하다 보니까 '신기'가 생겼나 봅니다.
물론 우연히 맞아 떨어진건데, 아래 글의 취지는 김정일의 조기 사망(?)은 '우리에게 좋은 일이 아니다'란 겁니다.
남이 지원을 해주면 북이 붕괴를 안하고 안 해주면 붕괴한다는 일각의 주장은 매우 어리석은 것이고 돌이켜 보면 이는 역사적인 사실들과도 완전히 다르지요. 진실은 거의 그와 반대였습니다.
소련은 당시 북한을 포함해서 수백억 달러를 매년 동맹국들에게 원조를 주던 나라였으나 해체되었고, 동독은 서독으로 부터 매년 32억 달러(남은 북에 단 2.5억 달러 제공)를 받고 가장 잘 사는 사회주의 국가가 되자 체제가 강화되기는 커녕, 오히려 주민들이 서독을 동경해서 기회가 오자 죄 탈출하는 바람에 스스로가 해체되어 흡수통일 되어 버렸습니다.
소련과 동독을 무너뜨리고 요즘의 중국과 월남을 보다 ‘온건한 사회주의 국가들’로 변화시킨 것은 서방과의 접촉을 통한 외부의 정보유입이였지, 반대로 그들이 극단적인 고립과 굶주림에 빠졌기 때문이 아니였습니다. 우리 자신인 남한의 경우에도 고도 경제성장 중에 민주화를 다 이루었고요.
이런 일관된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서 오로지 북한만이 예외라는 생각은 아무런 과학적, 역사적인 근거가 없는 것이죠. 여기서 햇볕정책이 착안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반대로 ’90년대 대기아로 인해 북은 무너질 운명이었으나, 햇볕정책으로 퍼주는 바람에 주민들이 덜 굶주려 죽어서 여태 체제가 온존했다’고 엉뚱한 사람들 탓을 하면서 거기에 저주를 퍼줏고 봉쇄를 주장하는 바보들을 보면 어이가 없어 실소만 나옵니다.
북이 여태 붕괴되지 않는 진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주민들이 워낙에 강한 감시와 세뇌 그리고 통제 밑에 놓인데다가, 남 등의 외부와의 접촉이 너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외부, 특히 말이 통하는 남한과의 접촉이 늘면 북은 반드시 변화할 수 밖에 없죠. 표면적으로는 덜 변화해도 주민들의 의식 자체가 변화해 장래의 변화의 단초가 됩니다. 반대로 북을 지금처럼 봉쇄하고 굶주려 주민들이 오늘 내일 밥 먹을 걱정 외에는 다른 생각을 할 여유를 주지 않는 것이야 말로 주민들의 생각을 고착화 시켜 오히려 북 체제를 더 오래 온존시키는 방향인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북을 증오하고 봉쇄와 압박을 주장하는 자칭 보수인 극우들이 사실은 역설적으로 북의 현 체제온존의 가장 큰 외부 협조자인 셈입니다.
둘째, 북 주민들의 입장에서 설혹 체제를 절박하게 바꾸고 싶다 하더라도 할 수 있는 적절한 ‘대안’이 제시되어 있지 못하다는 겁니다.
소련은 시장경제로의 급격한 전환에 따른 미국 등 서방의 원조를 기대 했었고(이 기대가 나중에 좌절되어 서방에 대한 불만으로 최근 스킨헤드 등의 극우파들이 등장), 동독은 바로 옆의 같은 국가에서 출발한 서독으로 탈출하는 대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북 주민들 입장에서는 남으로의 탈북 밖에는 다른 대안이 없는 셈이며, 이 탈북의 길은 아직 너무나도 험하고 힘든 길이라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성공하는 좁은 길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앞으로 북 주민들에게 남이 대안이 되고자 한다면, 북을 안심을 시키고 적극적으로 퍼주고 투자하고 도와주면서 남에 대한 환상을 늘리고 그들이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남에 의존케 만들어야 합니다. 즉, 봉쇄하고 군사적으로 압박해 겁을 주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퍼주고 도와주는 햇볕정책이야 말로 북 주민들의 의식을 변화시키고 장차 그들의 체제를 변화시키는 최선의 길인 것이지요.
이를 위해서 북과 대화를 하는 수 밖에 없는데, 김정일이 대화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도 맞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북의 신적인 실권자일 뿐 아니라, 대화의 상대자가 되려면 그가 악당이냐 선인이냐와는 관계가 없고, 자신의 생존을 위한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느냐만 조건을 갖추면 되는데, 김정일은 그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보면, 이런 김정일만 죽으면 모든게 해결된다는 가정은 아무런 근거가 없으며, 오히려 김정일 이후가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그 근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미국은 북을 봉쇄하고 북의 군사적인 위협을 구실 삼아서 남과 일본에서의 영향력을 강화하고 이로써 중국을 견제하는 신냉전구도를 구축하려 할 수 있습니다.
김정일이 죽는다고 이 신 냉전구도도 따라서 자연히 깨진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김정일이 근본문제의 전부가 아니라는 겁니다.
아니, 미국이 언제부터 김정일만 죽으면 북에 대한 군사적 압박이나 경제봉쇄를 푼다고 약속을 했을까요?
미국의 대북 적대와 봉쇄는 북이 사악하고 가장 국민들에게 억압적인 독제체제라는 것에만 기인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지금의 북 못지 않게 억압적이였던 문화대혁명이 한창이던 모택동 시절의 중국과도 미국은 수교를 했었습니다.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서였지요.
이는 근본적으로 앞서 지적한 미국의 세계전략, 동아시아 전략의 맥락에서 이해를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북에 미국의 입맛에 맞는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들어설 가능성은 향후 최소한 30년간은 없으므로, 보다 온건하더라도 서방의 기준에서 보자면 새로운 독재체제가 출현할 것은 거의 분명하고, 이를 구실로한 미국의 북 봉쇄는 김정일의 사후에도 얼마든지 지속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미국의 봉쇄 아래의 북의 민주화란 조선노동당 1당 독재 내의 당내 민주화 정도에 불과한 것이며, 그들의 개혁 개방이란 더 많은 광산과 토지와 항구를 유일한 생명선인 중국에게 헐값에 팔고 점유당해 중국의 속국화 되어 간다라는 말 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게 과연 우리 입장에서 바람직한 일일까요?
둘째, 그의 승계자인 김정은은 어리고 미숙해 뵙니다. 학교 성적도 나빴다니 아마 머리도 그닥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북 주민들도 단지 운이 좋아 타고난 혈통으로 승계자가 된 어린 김정은을 존경할리 만무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김정은은 이론적으로 봐서 서울을 향한 장사정포에 포격 명령을 내릴 실권이 있습니다.
어린 아이에게 핵 폭탄을 쥐어 주는 격인데 그게 과연 우리한테 유리할까요? 북에는 실제로 진짜 핵무기까지 있는데 말입니다.
인정해야 할 것은, 이명박 정부가 대북정책에 있어서 워낙에 상식적인 판단력이란게 없어서 똥 오줌을 못 가리고 강경으로만 치닫고 있으나, 그럼에도 위태롭게 나마 한반도의 안정이 아직 유지되는 이유는 김정일의 판단력과 인내심에 크게 의존한 것이기도 합니다. 김정일은 감정적으로 뭔가를 해서 큰 실수를 저지르지 않고 있죠. 나름 합리적이고 아주 계산적이라는 소리입니다.
악당도 때로 본의든 아니든 올바른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권력을 계승한 김정은이 판단력이 아주 없다면, 한반도는 앞으로 이성적인 경로를 벗어나서 주체하지 못할 극도의 혼란 내지는 불확실성으로 빠져들 위험이 극도로 커집니다.
그러니 아직 대화가 가능한 김정일이 살아 있는 앞으로의 수년 안에, 북핵 포기와 북미수교, 평화체제 마련과 연합제 통일 등의 보다 근본적인 한반도 안정의 틀을 최대한 마련해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북 정권의 수명을 늘리는 일이 아니며, 오히려 역사적 사실들에 비추어서 변화를 이끌어 내고 독재체제의 수명을 줄이는 길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