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대학제 문제와 관련해서는 제 얘기보다는 역시 권위가 있는 전문가의 말을 빌리는게 좋겠군요. 아래는 저는 그다지 좋아하지않는 사람이긴 합니다만, 암튼 미국의 1군 로스쿨 중 하나인 콜럼비아대학(Columbia University School of Law)에서 JD, LLM, SJD 를 다 해본, 현 서강대 로스쿨 교수이자 KBS 심야토론 진행자인 왕상한이 쓴 글입니다. 왕상한은 아마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국내에서는 가장 발언 자격이 있는 몇사람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 * *
(...)
II. 미국 법과대학 학제에 대하여
오늘날 학부에 법학 전공을 두고 있는 미국의 4년제 대학은 없다. 따라서 미국에서 법학을 전공하려면 4년제 대학을 마친 뒤 로스쿨로 불리는 법과대학에 진학해야 한다. 미국의 법과대학은 대개 J.D.(Juris Doctor) 과정과 J.D.학위 취득자를 대상으로 한 Graduate School, 즉 LL.M.(Master of Laws), J.S.D.(Doctor of Science of Jurisprudence) 등 3개의 학위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미국에서 법률전문가가 되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J.D. 과정을 마친 뒤 유명 법률회사(Law Firm)에서 실무 경력을 쌓음으로써 자신의 전문 분야를 특화시키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역시 J.D.를 마친 뒤 그 상위의 학위과정인 대학원(Graduate School)으로 진학하여 학업을 계속하는 길이 그것이다.
J.D.과정은 법률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기본 지식과 법적 사고방식(legal mind)을 연마하는 과정이다. 즉, 동 과정은 법학을 전혀 공부한 바가 없는 학생들을 위해 개설된, 법학 분야의 첫 번째 학위과정으로 그 전공분야도 학위논문도 없다(전공은 LL.M.과정부터 생긴다). 기간은 3년이고 학교마다 다소 차이가 있으나 보통 20여 과목, 85학점 내외를 이수하면 학위를 취득할 수 있다. 뉴욕이나 보스톤, 워싱톤 D.C. 등 대도시에 위치한 법과대학들은 대개 매년 300명 안팎의 학생을 뽑는데 그 선발인원이 무려 600명을 넘는 학교도 있다. 3년의 J.D. 과정은 다시 1학년(first year), 2학년(second year), 3학년(third year)으로 나누어 부른다. J.D.가 각 학년별로 이수하도록 하고 있는 그 교과과정을 살펴보면, 전공필수, 전공선택 과목 등으로 구성된 우리나라 학부의 법학전공 2학년, 3학년, 4학년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J.D.를 글자 그대로 ‘법학박사’라 번역하는 것은 그 실질을 반영하지 못한 오역이다. 법학에 대해 전혀 무지한 사람이 J.D.를 글자 그대로 번역하여 ‘법학박사’라 표현할 수는 있다. 그러나 법을 전공하는 사람이, 그것도 미국 법과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한 사람이 J.D.를 ‘법학박사’라 부를 수는 없다.
법과대학에서의 수업을 이론교육과 실무교육으로 나누어 J.D.과정은 실무교육을, Graduate School은 이론교육을 실시하는 것으로 양자를 구별하여 설명하는 사람들이 일부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설명은 실무를 떠나서는 도대체 성립할 수 없는 법학의 실용학문적 기본특성을 외면한 것일 뿐만 아니라 J.D., LL.M., J.S.D. 등 어떤 학위과정도 그 수업을 소위 이론교육, 실무교육이라 해서 내용을 양분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왜곡한 것이다.
J.D. 과정이 4년제 대학졸업자에게 입학자격을 부여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J.D. 과정을 우리나라 특수대학원의 석사과정쯤으로 그 무게를 어느 정도 인정할 수 있다는 일부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예컨대 경제학을 전공한 뒤 법학과에 학사 편입한 학생의 경우와 비교해 볼 때 형평을 잃은 평가라는 지적도 충분히 가능하다.
J.D.의 무게를 어떻게 가늠하든 그것을 법학이라는 학문적인 관점에서 평가하면 J.D. 학위의 실질은 어디까지나 법학사일 뿐이다. 미국의 법과대학들도 그들의 학교소개 및 입학관련 책자에서 미국의 J.D.는 외국의 법학사(Bachelor of Law)와 동등한 학위(equivalent degree)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