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버스는 현실과 진실 앞에 겸허한가?
-다시 희망버스를 생각한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평균의 착각
3조 원대 재산가인 정몽준 의원을 포함시켜 국회의원의 재산 평균을 내면 국회의원들은 몽땅 100억 대 부자가 된다. 누가 이런 평균을 근거로 재산이 마이너스인 의원들에게 왜 100억대 부자인 의원님이 자선행사에 수 천 만원을 쾌척하지 않느냐고 따지면 어떻게 될까? 청년 고용 사정도 열악한데, 받아도 그만 안받아도 그만인 세비로 보좌관과 인턴 몇 명 더 채용하는 모범을 보이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 참으로 황당무계한 논리지만, 한진중공업 문제를 논하는 자칭 진보 논객의 논리가 이런 식이 많다. 나는 이런 궤변을 끝없이 늘어놓는 논객에게 지면을 아낌없이 제공하는 자칭 진보 매체의 편집자의 지적 능력과 사고방식이 여간 궁금하지 않다.
9월 20일 전후하여 레디앙은 박노자의 글을 실었다. 제목은 <'희망버스' 87년 투쟁만큼 중요하다>이다. 자신은 “5차 희망버스가 출발하는 10월 8일(토) 노르웨이에서 육아노동을 하느라고 국내에 가서 같이 참가할 수 없어서 너무나 미안하고 아쉬울 뿐”이라면서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이 글을 썼다. 요지는 “'희망버스' 운동은 어쩌면 군사독재보다 더 위험한 재벌독재를 상대로 싸우는” 운동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통계를 늘어놓는다. 몇 년 전까지는 개념이나 주장만 제시하던 사람들이 요즈음은 통계를 제법 들이 민다. 진일보 한 것이다. 하지만 통계의 의미를 너무 모른다. 어쨌든 박노자는 한국 10대 재벌의 자산의 총합이 국민총생산의 75%에 이른다는 것, 대기업 전체로 봐서는 지난 6년 동안 평균 영업이익률이 6.7%에서 7.6%로 늘어났고, 10대 재벌 계열사들은 지난 3년 동안 영업이익은 70%나 급증했다고 한다. 그리고 “재벌 이익이 계속 늘어나는 것은, 국내 전체 노동자의 거의 60%에 가까운 비정규직과 25%나 되는 저임금 근로자층, 국내보다 임금 수준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중국, 베트남, 필리핀 등지에서의 한국 재벌과 그 하청기업들의 수백만 명의 피고용자들에 대한 착취가 그만큼 강화될 수 있었기 때문”이란다. 한마디로 “극소수의 지속적 번영은, 다수에 대한 약탈로 뒷받침된다”는 150년 된 마르크스 패러다임을 휘둘러 댄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한 둘이 아니다. 10대 재벌이 이익을 많이 낸 것과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의 구조조정이 무슨 상관일까? 3조 원대 주식부자 정몽준의원이 장학재단을 설립하고, 현대중공업의 고용을 늘린다고 해도, 잘 안되는 사업체를 가진 빈털터리 의원은 인원감축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물론 의원 신분이라면 대주주라 할지라도 경영에 직접 개입해서는 안되겠지만......)
박노자는 진보 논객 중에서 좀 편향이 심하긴 하지만, 현실을 대충 뭉뚱그려서(자신의 프레임에 맞는 것만 취사선택하여) 자신의 오래된 지론을 고장난 레코드판처럼 돌리는 사람도 한 둘이 아니다.
9월26일자 한겨레 신문에는 <이강국 교수의 경제산책> 코너에서 희망버스 문제를 다뤘다. 요지는 한진의 정리해고는 ‘부당해고’라는 것이다. 김진숙의 싸움에 눈 흘기는 김대호, 김기원식 논리들을 좀 검토했는지 연구성과 등을 인용하면서 길게 반박한다.
“많은 이들은 그녀의 싸움에 눈을 흘깁니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과도한 요구가 경제를 어렵게 만들고, 이들을 쉽게 해고할 수 있는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기업의 경쟁력에 필수적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경제위기에 책임이 있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고, 80년대 미국 기업의 구조조정 이후 발전된 연구들을 보면 대량해고나 노동시장 유연화가 장기적으로 기업의 성과에 도움이 된다는 실증적 증거도 미약합니다. 비정규직을 포함한 한국의 전체 노동시장은 세계적으로도 유연하며, 한국 기업에는 노동시장 유연화가 기업의 성과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연구조차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 여기서도 정몽준의 오류 내지 평균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한국은 공공부문(공무원, 공기업)과 노조가 건재한 대기업 생산현장은 OECD국가 중에서 가장 고용이 경직되어 있을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직접적인 통계는 없지만, 이들의 평균연령(퇴사자가 없다), 1인당 GDP 기준 국제적 처우수준(우리가 주요국의 2배 이상이다), 고용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민간 중소기업과 비교한 상대적 처우 수준, 노동운동의 사상--수익성과 교섭력이 허용하면 노동의 양, 질과 상관없이 신의 직장을 만드는 것을 정상으로 생각한다. 산업차원의 동일노동동일임금 개념은 기업 보다 오히려 노조가 더 강하게 부정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등을 보면 충분히 확신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가장 유연한 편에 속할 것이다. 이들의 고용이 지나치게 유연한 이유는 이들을 안고 있는 영세자본의 과도한 탐욕(초과이윤) 탓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변화부침이 극심한 시장 상황과 취약한 자본 능력 탓이라는 것이 상식이다. 물론 고용 관련 규제를 엄격하게 하여 아예 앞날이 불투명한 벤처 기업의 창업을 틀어막고, 한번 채용하면 예외없이 공무원처럼 정년을 보장해 줄 기업만 설립을 허가하면, 실업자와 비경활인구는 어찌될갑세 고용 유연성은 대폭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이건 나라 망하자는 얘기다.
정몽준과 재산이 마이너스인 민노당 의원은 거의 관계가 없지만, 한국의 힘있는 부문, 돈 잘 버는 부문의 지나친 고용 경직성 및 높은 근로조건과 나머지의 지나친 고용 유연성과 낮은 근로조건은 동전의 양면관계임이 분명하다. 이는 한진중공업과 그 1,2,3,4차 협력업체, 쌍용자동차와 그 협력업체, 토건산업 생태계(먹이사슬), 안철수가 지적한 삼성, LG와 그 동물원에 사는 협력업체의 상황 등을 살펴보면 명백하다.
노동-자본 프레임의 병
박노자의 병은 여간 중증이 아니다. 박노자는 150년 전 마르크스 패러다임에서 헤메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재벌이익은 비정규직과 해외 피고용자들에 대한 착취 때문이라고 한다.
자본의 착취 뿐만 아니라 세금까지도 완전히 없앤 사회가 바로 북녘에 있고, 해외자본에 의해 착취(?)를 당하기 위해, 즉 중국, 베트남, 북한(개성공단)은 물론이고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선진국조차 외자유치에 혈안이 되어 있는 현실을 보고도, 어떻게 저 오래된 레코드 판을 돌리는지 정녕 모르겠다. 어쨌든 이 낡은 레코드판은 각각의 이해관계가 천차만별인 노동과 자본을 한 덩어리로 묶고서는 계급투쟁을 선동한다.
“이번 '희망버스' 운동은 이 기업 독재의 횡포를 막아보려는 의거(義擧)이며, 과거 민주화 운동의 유기적 연장, 즉 기업 독재 타도 운동의 신호탄이다. 지금 이 운동이 통쾌한 승리를 거두어 불법 해고를 당한 노동자들이 복직돼야(중략) 기업 독재를 본격적으로 타도할 수 있는 전망이 열릴것이다”
박노자는 요즘 사람들이 잘 안보는 오래된 책만 즐겨보다 보니 현대 기업의 물질적 생산(분업, 협업)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가치생산생태계(사슬)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경쟁력과 이윤이 어디서 나오는지 도통 모르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 박노자의 뻘소리를 크게 실어주고, 페북에서 ‘좋아요’를 누르는 사람도 정말 궁금하다.
박노자가 좀 심한 편이긴 하지만, 그에 버금가는 어이없는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이강국 교수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가 부당해고라고 전제하고 이렇게 말한다.
“이번 사태는 주주의 이익과 이윤 추구를 위해 노동자를 팽개치고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는 한국 재벌의 행태를 잘 보여줍니다. 한진중공업의 구조조정이 그대로 인정된다면 더 많은 재벌들이 글로벌화와 함께 정리해고를 남발할지도 모릅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의 생존 전략과 기업 가치 및 주주이익 극대화 전략이 모호하다. 한진중공업의 경우 해운 산업 및 조선 산업의 패러다임으로 보나 영도조선소의 구조로 보나 일찍이 입지조건이 좋은 국내에 대규모 조선소를 건설하든지(이것이 바로 옥포 조선소다) 필리핀 수빅으로 진출하지 않으면 조선사업 자체를 포기 할 수 밖에 없기에 해외 진출은 비난할 일이 아니다. 최선은 아니라도 차선은 된다.
그리고 한국에서 외부노동시장 수준에 비해 월등히 높은 고용임금을 누리는 곳은 기업이 도산 위기에 처하지 않는 한 정리해고를 시도하지도 않고, 시도하는 것이 손해다. 한진중공업과 쌍용차 사례에서 보듯이 해고 비용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투쟁은 기득권 노동의 입장에서는 대단히 성공(?)한 투쟁이다. 기업들의 직영 확대 공포를 극도로 심화시켜 후세대와 청년세대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한국에서 대기업 정리해고가 있으면 노조나 상급단체는 어김없이, “이번 정리해고를 허용하면 무분별한 정리해고가 남발 될 것”이라며 옥쇄 투쟁을 선동하였다. 1998년 현대차, 2001년 대우차, 2009년 쌍용차 투쟁에서 그랬고, 2011년 한진중공업 투쟁에서도 어김없이 반복되고 있다. 그런데 산업의 성격상 노조가 엄청난 파괴력=투쟁력을 가진 현대차, 대우차, 쌍용차에서의 정리해고 이후 정리해고가 남발되었는가? 전혀 아니다. 그런데 조국 교수도 “재벌은 사상 최고의 이익을 올리고도 비용 절감을 이유로 노동자를 시도 때도 없이 ‘정리’한다”는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있다. 조교수도 노동과 자본의 대립이라는 허구적, 단순무식한 대립 구도로 세상을 재단하면서 노동 강화를 위해 안철수와 김진숙이 만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단언컨대 한국에서는 극도로 위험한 상황에 처하지 않으면 적어도 대기업에서 정리해고는 못한다. 한국 대기업 노조는 자기 방어력이 충분하다고 보아야 한다. 문제는 자기 방어력이 없는 곳이 대한민국에는 무수히 많다는 것이다. 하청 협력업체, 식당아줌마, 건설노가다, 퀵서비스, 영화판 등. 크게 보면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현장과 영화 ‘도가니’의 현장도 우리 민주주의의 사각지대의 하나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우리 진보와 시민사회가 너무나 부실한 근거를 가지고, 그것도 마르크스에 현혹되어 엉뚱한 곳에 엄청난 화력을 쏟고 있다고 생각한다.
조국 교수를 비롯하여 희망버스를 칭송하는 사람들이 희망버스에서 부각시키고 싶은 가치는 아마도 노동과 시민의 연대 일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희망버스가 악 소리도 못하고 잘려나간 수천명의 한진중공업 협력업체 노동자들과는 전혀 연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 연대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희망버스는 조선산업도, 해운산업도, 영도조선소도 모르고, 거칠게 봤을 때 “돈 잘 버는 재벌대기업 사업장의 부당한 정리해고” 쯤으로 보고 분개하는 시민들과만 연대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하지만 이는 근거가 취약하기에 결코 오래 갈 수 없는 연대이다.
1950년대의 화석과 1980년대의 화석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고, ‘한 번 적이면 영원한 적’이라는 신념 내지 정략이 위력를 발휘하면서 보수는 1950년대의 화석처럼, 진보는 1980년대의 화석처럼 되고 있다. 주적과 역학관계와 정서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수에게는 해방 공간에서 남과 북의 좌파(좌익)가 주적이었고, 아직도 휴전선 너머에서 2천 수백 만명을 통치하고 있다보니, 좌파의 사촌쯤 되어 보이는 진보는 여전히 주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아니 인식시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 좌파와 지금 진보는 달라도 너무 다르지만, 철학, 가치, 정서 등 몇몇 측면에서 약간의 유사성을 들어 대충 한통속으로 싸 잡아왔다. ‘애들 학교 급식 방식’ 가지고 살벌한 이념시비를 한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친북좌파와 친미우파의 대결로 우리 사회를 편가르기 하려는 시도가 어느 정도 먹히는 것은 진보 일각의 지독한 시대착오와 맹동주의, 대중의 피해의식, 보수 지식사회의 게으른 실사구시, 결정적으로 보수(정치)의 정략 때문일 것이다. 보수의 정략은 1971년 대선부터 지금까지 영남과 호남을 대립시키고, 친북좌파와 친미우파를 대립시키는 것이었다.
‘한 번 적이면 영원한 적’이라는 아집 내지 정략은 보수의 전유물이 아니다. 적지 않은 진보 성향 사람들에게 자본(주의), 자유시장, 자유주의, 공화당과 민정당의 후예, 친일파 등은 30~40년 전이나 지금이나 주적이다. 이들을 완전히 일소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아주 소수 일지라도, 한국 사회를 노동과 자본(신자유주의 주적론은 이런 사고틀에서 발원한다), 민족자주와 사대매국(친북, 종북주의는 이런 사고틀에서 발원한다), 독재와 민주의 대립구도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은 결코 적지 않다. 원래 자본, 자유시장, 자유주의—심지어 합법주의, 개량주의, 사민주의까지도—가 일소되어야 할 어떤 것으로 간주되던 시절에는 사회주의라는 대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대안은 어디론가 날아가버렸지만 자본, 시장, 개방, 자유주의에 대한 적개심과 공포는 그대로 남아 있다. 이것을 가장 세련되게 표현해 주는 것이 신자유주의가 만악의 근원이라는 선동이다.
쌍용차나 한진중공업의 연대 투쟁을 주도한 진보(좌파)는 개별 사업장의 처지와 조건을 거의 살피지 않는다. 처지, 조건, 이해관계가 천차만별인 노동을 전혀 모르고, 대기업 조직노동의 이해관계로 다양한 노동의 이해관계를 덮어 버린다. 그리고는 노동과 자본의 대립 구도를 대전제로 하고, 자본이 신자유주의를 앞세워 노동에 대한 착취를 강화하고 있고,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폭증은 그 일환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재벌대기업은 정리해고 등 인건비 절감을 통해서 이익을 엄청 많이 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출구 잃은 분노를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 쏟아 붓고 있는 것이다.
일감 없는 사업장의 구조조정 문제
이제 다시, 아마 마지막으로 희망버스에 대해 말해야겠다. 한진중공업 사태의 핵심은 무엇인가?
평범한 국민들의 시각=상식과 산업・노동 현실의 시각으로 “85호크레인”과 “희망버스”를 보자. 이런 시각에서 보면 한진중공업 사태는 기본적으로 일감이 없어서 많은 사람이 한참 놀았고, 앞으로도 놀게 되어 있는 영도조선소 구조조정 문제이다. 그래서 직영 직원을 보호하기 위해 먼저 외주하청 물량을 줄여서 지난 2년 동안 협력업체와 비정규직을 중심으로 3000~4000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일감이 확보되지 않아 마침내 직영 직원까지 구조조정의 파도가 밀어닥친 것이다. 그리고 일감 확보가 안 된 것은 한진중공업 오너・경영자들의 고의가 아니라, 상당부분 구조적 요인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무엇보다도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 조선산업의 신규 수주 상황이 너무나 나쁘다. 한국 조선산업의 전체적 수주 상황을 보면 2007년 32백만CGT(건조량 11백만)로 고점을 찍은 후, 세계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에는 14백만, 2009년에는 2백만CGT로 급감한 후, 2010년 8백만CGT(건조량은 13백만)로 약간 회복하였을 뿐이다. 게다가 최근 10여 년 동안 중국 조선산업의 공격적인 투자로 중국 1국의 선박건조 용량이 한국 총 건조량의 5배인 60백만CGT를 넘는다. 문제는 중국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 선종이 조선업계 빅3(현대, 대우, 삼성)와는 별로 겹치지 않아도 영도조선소와는 겹치는 면이 크다는 사실이다. 또한 영도조선소는 도크가 너무 협소하여 갈수록 대형화하는 컨테이너선과 유조선 수주는 아예 불가능하고, LNG선 역시 대형화 경향으로 인해 수주가 곤란하다. 최근 세계 조선 시장에서 발주되는 컨테이너선과 유조선은 배 길이가 300m, 400m(18000TEU급)을 넘어가는데 영도조선소는 도크의 한계로 인해 최장 280m(8000TEU급 컨테이너선)까지만 수주 가능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는 확장이 불가능한 위치의 불과 8만평 부지에, 도크도 작고 육상건조 공법을 쓸 수 있는 여유공간=블록적치장 (Yard)도 절대 부족하다. 또한 인양 용량이 큰 골리앗 크레인은 없고 작은 Jip크레인만 몇 대 있다. 따라서 경쟁사들은 한 번에 끝내는 공정을 영도조선소에서는 두 번에 걸쳐서 조립하니 시간과 비용이 더 들게 되어있다. 결국 영도조선소 숙련 근로자들의 손재주는 더 좋을지 모르지만, 공간과 입지(수심)의 한계 등으로 인해 한국 및 중국 조선소와 경쟁을 이겨내고 신규로 발주되는 선박을 영도조선소가 수주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물론 그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 영도조선소의 살길은 있다. 그것은 크기는 작고 부가가치는 높은 군함, 차세대 WIG선 등 특수선을 많이 수주하는 것이다. 하지만 군함의 경우 정부가 특혜를 주지 않는 이상 현대, 대우, 삼성, STX 등과 치열한 수주 경쟁을 해야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영도조선소가 수주 물량을 골라서 받던 좋았던 시절에 채용했던 고용을 다 안고 갈 수는 없는 법이다. 조남호 회장의 경영 스타일은 다른 오너나 전문 경영자들도 지탄하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정리해고 행위 자체만 놓고 보면 그렇게 몰상식한 것도, 무원칙한 것도 아니다. 법원보다 훨씬 친노동 성향을 가진 지방노동위원회의 판단(해고구제 신청 기각)이 그것을 말해준다. 또한 경영 전략 측면에서 수빅만 조선소를 인수한 것도 지탄 받을 일은 아니다. 어쩌면 십 수 년 후에는 오늘날 정주영 회장의 현대조선소(현대중공업) 투자만큼이나, 잘한 투자로 인정될지도 모른다. 내가 볼때는 국내 투자 보다는 못한 차선 쯤 되는 투자지만.......
투쟁은 당연하다
물론 아무리 사유가 그럴듯해도 정리해고의 충격은 워낙 크기에 노조가 투쟁하는 것은 당연하다. 해고자 숫자 감축을 위해서도, 희망퇴직 조건 개선을 위해서도, 살아남은 1400명 고용을 엄호하기 위해서도, 고용보험, 재취업 등 국가・사회적 차원의 ‘사회안전망’ 정비를 위해서도 투쟁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투쟁은 어디까지나 더 많은 사람을 보호하고, 더 많은 고용을 창출하고, 더 많은 정의를 흐르게 하기 위한 투쟁이어야 한다. 그런데 정리해고 자체를 철회시키기 위한 비타협적인 결사투쟁은 잘해야, 일감도 없는 상태에서 희망퇴직 거부자 94명을 복귀시키고, 이 반대급부로 국내 조선소들간 공정 경쟁을 통해 배분해야 할 군납(군함 등) 물량을 영도조선소에 특혜적으로 몰아주는 것에 여・야당-정부-회사-노조-김진숙이 합의하는 것이다. 이것이 안 되면 영도조선소는 이미지 실추로 인해 신규 수주가 거의 불가능하게 되어 조선소 자체가 영구 폐쇄되는 사태가 초래 될 수도 있다. 이래저래 진짜 열악한 처지에 있는 수천 명의 협력업체와 비정규직에 대한 보호 대책은 없다. 뿐만 아니라 한진중공업 사태는 근로조건이 좋은 회사들 일수록, 유사시 구조조정에 대한 공포로 인해, 고용 수요가 있더라도 직영은 최대한 절제하고, 외주하청화에는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떠미는 효과가 강력하다. 이는 ‘괜찮은 일자리“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게 되어 있다. 영혼을 팔아서라도 취직하고 싶어 하는 청년들의 고통을 더욱 악화시키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김진숙식의 비타협적인 결사투쟁은 현실적이지도 않고, 정의롭지도 않으며, 다수 국민들의 공감과 신뢰를 얻기도 어렵다. 이런 투쟁이 ‘진보의 재앙’이 아니면 무엇이 ‘진보의 재앙’이겠는가?
정리해고를 인간의 수명을 제외한 모든 존재들의 수명이 짧아지고, 변화부침이 심해서 (절대 남발해서는 안 되지만) 필요하면 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투쟁하는 것과 이를 신자유주의 광풍이 몰고 온 구조악으로 여겨, 내가 못 막으면 도미노처럼 전 사회에 확산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투쟁하는 것은 확연히 다르다. 후자의 경우 내 한 몸(우리 노조가) 부서지더라도, 이를 반드시 저지하겠다는 옥쇄투쟁으로 나타난다. 전자의 경우는 정리해고자의 숫자를 줄이고, 배치전환, 재취업 대책 등으로 충격을 완화하고, 기업, 지자체, 노동자(노조), 정부 차원의 장단기 대책 수립을 요구하는 실리적 투쟁으로 나타난다. 당연히 전자의 경우는 노조도, 회사도 피해가 크다.
요컨대 내 주장은 노동계가 정리해고에 관한 한 옥쇄 투쟁도, 백기 투항도 아닌 조직적 후퇴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싸우되 적정 시점에서 타협하면서, 보호할 것들을 최대한 보호하고 쟁취할 것은 최대한 쟁취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 핵심은 구조조정의 충격을 기업, 국가, 노동이 적절히 분담하는 것이다. 특히 너무 부실한 보호 완충 장치로 인해 구조조정의 한파에 삼베 옷 하나 걸치고 떨고 있는 2000만 명이 넘는 취약 국민・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이다. 동시에 고용률과 임금근로자 비율을 급상승시키기 위해 기업들의 국내 고용과 국내 투자에 대한 과도한 공포를 적정수준으로 감소시켜주는 것이다.
‘정리해고•비정규직 없는 세상’ 이게 맞나?
“희망버스”는 처음에는 송경동 시인 등 시민 수백 명이 자발적으로 만든 작은 미담이었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진보(정신)의 상징처럼 되었다. 2012년에 집권을 하겠다는 정치사회 지도자들이 대거 가세하고, 규모도 커지고, 희망버스로 인한 갈등도 극심해지고, 국회 청문회가 개최될 정도로 큰 정치 현안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당연히 “희망버스”의 대표 구호인 “정리해고•비정규직 없는 세상”은 진보가 국민에게 내 놓는 비전이 되었다. 그런데 이것은 ‘낮은 고용률-낮은 임금근로자 비율-영세기업과 영세자영업자로 대표되는 방대한 취약근로자-그 궁극적 원인인 취약한 중소기업 현실’을 감안하면 여간 황당한 가치와 비전이 아니다.
한국 진보가 2천만 취약계층의 희망이 되어 집권을 넘보려면 그 고용노동비전은 “정리해고・비정규직 없는 세상”이 아니라 “정리해고 있어도, 비정규직이어도 그런대로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진짜로 보호할 사람을 보호할 수 있다. 물론 더 나가면 기업이 정리해고가 아니라 구인난을 걱정하고, 부당한 격차가 없어서 굳이 비정규직을 쓸 필요가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따뜻하고 소박한 마음으로 희망버스에 탑승하신 분들도, 거창한 정치적, 사회적 의미를 부여하는 분들도 혹시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지나 않는지 의심해 보아야 한다. “희망버스”를 탈 때 타더라도 따뜻한 마음 뿐 아니라 차가운 이성을 동반 승차시켜 분노의 대상과 사랑, 연대의 대상을 제대로 잡아야 한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85호크레인”과 “희망버스”에는 여러가지 마음이 흐르고 있다. “이웃의 아픔을 함께 하는 따뜻한 마음”이 분명히 있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희망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희망버스에는 청년실업, 고용불안, 비정규직, 자영업 과잉을 낳았다는 소위 신자유주의 경제 시스템에 대한 거부감도 타고 있고, 민주당 좌클릭을 통한 야권 연대의 고리로 활용하려는 정치공학도 타고 있다. 민주진보의 고용노동 비전을 과시하는 계기로 삼으려는 황당한 포부도 타고 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주요한 측면은 희망버스의 대표 구호인 “정리해고•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해 94명의 정리해고를 철회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가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을 몹쓸 짓으로 여겨, 정리해고 반대, 비정규직 철폐 투쟁에 이념적,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업도, 노동도 다 시장 원리 속에 몸을 깊숙이 담그고 있는 존재 인 이상, 역사에서 숱하게 봐 온 소박하고 좋은 의도에 대한 현실의 무참한 배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현실을 얼마나 알고 있나 의심해야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자칭 진보 논객의 상당수가 집권을 하겠다면서, 실사구시에는 한없이 게으르고, 자신이 뭘 모르고 뭘 아는지도 모른 채 마구 내지르고, 낡디 낡은 프레임으로 세상과 피아를 재단하면서 적을 양산하고, 우군을 쫓아낸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요즈음 진보 매체들은 그 중에서도 병이 깊은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지면을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아무래도 진보 매체 편집진들도 병이 깊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안철수 현상의 뿌리는 진보와 보수의 지독한 현실에 대한 둔감, 지적 나태, 시대착오, 총체적 무능과 소모적 대립 등이 아닐까 싶다. 자칭 논객들은 책에서 가져온 이론과 프레임을 무참히 배신하는 독특한 한국 산업, 고용 현실에 대해 좀 더 눈을 크게 뜨고, 세밀히 살폈으면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