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교수의 현대사산책 '2000년대'편이 발간되었습니다.
다른 현대사산책과 달리, 80% 이상을 노무현의 정치에 할애하고 있습니다.
정상적인 역사책이 아니지요.
강준만 교수의 노무현에 대한 증오와 비판의식은 저보다 훨씬 더 해보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노무현 대통령이 정권의 운을 걸고 추진한 한미FTA에 대해,
추후 김현종 통상산업본부장의 책을 읽은 뒤,
'이런 건 노무현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라 다시 평가하게 되었으니까요.
열린우리당과 노무현 정권이 임기 말년에 지지율이 한자리수로 추락하게 된 이유는,
민주당 분당을 감행하면서, 호남 지지층이 이탈하고, 정책적 사안에서 민노당과 사사건건 충돌하며,
좌우 양쪽으로부터 포위 당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노대통령이 민주당 분당을 하지 않고, 한미FTA를 추진하지 않으면서,
민노당과 정책연대를 해왔다면, 2007년 대선에서 6:4 승부는 가능했을 것입니다.
노대통령은 이러한 안전한 국정운영을 포기한 채, 자신이 해야된다고 믿는 것을 ,
모두 실천하려 했습니다.
강교수는 민주당 분당은 물론 한미FTA 추진 등등까지 모두 비판하기 때문에
책 5권이 모두, 거의 노무현에 대한 증오와 저주로 점철되어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시점에서 다른 시각으로 평가해볼 만한 노무현의 장점과 업적은 없을까요?
그 점에서 아래 김병준 전 정책실장이 언급한 민주당의 활로가 보이지 않을까 합니다.
만약 노대통령이 민주당 분당을 하지 않았다면,
김대호 소장도 지적한 대로 '문화적 상징' 투쟁에 골몰하지 않았을 겁니다.
이른바 노대통령에 대해 좌측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한다는 비판은,
실질적인 민생 경제구조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과거사투쟁, 사학투쟁 등에만 매몰되었다는 거지요.
과거사투쟁 등을 통해 보수언론과 생사를 건 싸움을 걸면서도,
실제로 그의 경제정책 등은 관습적인 좌파정책 노선에서 벗어나 있었습니다.
무의미한 상징 투쟁만 하지 않았더라면, 임기말까지 중도보수층의 지지를 유지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실제로 한미FTA 추진하면서, 한자리 수 지지율이 30%대까지 치솟기도 합니다.
민주당 분당을 하지 않았더라면, 노대통령 당선의 공신들인 조순형, 김경재, 추미애, 김영환 등등이
일정한 지위를 유지한 채, 이를 충분히 견제할 수 있었을 겁니다.
현재의 민주당 사람들은 노무현 정권의 실패 이유를 두 가지로 꼽는 것 같습니다.
분당 등으로 야권이 분열되어, 한나라당 후보와 일대 일 구도를 만들지 못했다는 것과,
한미FTA 등 우경화된 정책입니다.
실제로 강준만 교수의 책의 일관된 논조도 바로 이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민주당은 한줌도 안 되는 민노당 등과 통합을 하기 위해,
현실에서 실천조차 불가능한 민노당식 정책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지요.
즉, 분당과 좌파진영과 척을 지며 당했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민주당과 좌파진영에서는 노대통령의 정신을 통합이라 규정하던데,
노대통령은 정치를 하면서 대개의 경우 정당끼리의 통합을 주장한 바가 없지요.
3당합당 때 따라가지 않고, 김대중의 국민회의 때 따라가지 않고, 열린우리당 창당을 하고,
나중에 대통합민주신당으로 통합되었을 때도 강력히 반대하는 등,
기존 정치구조의 틀을 깨고자 했던 정치인입니다.
만약 현재 노대통령이 살아있다면,
한미FTA 폐기, 서울대 법인화 폐지 등등의 합의문 서명을 강요하는
민주노동당과의 연대 혹은 통합에 어떤 입장을 밝혔을까요?
또한 유시민이 온갖 곳에 끌려다니며, 노무현 정권의 정책 노선에 대해 머리를 숙이며
사과하고 다니는 것은 어떻게 바라보았을까요?
민주당과 유시민의 참여당을 포함 야당이, 노대통령 자신이 추진한
제주해군기지 건설 보류에 합의한 것은 어떻게 볼까요?
과연 현재의 민주당에서 노대통령과 같은 파격적인 인물이 나올 수 있을까요?
노대통령의 파격은 그가 운동권 내에서 비주류였다는 데 기인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신의 측근 패거리에 대해서는 똘똘 뭉치는 보스기질을 발휘하지만,
운동사회 전체 논리에 대해서는 맞서 싸울 수도 있었겠지요.
김대중 정부 당시는 자민련과의 연대, 오랜 김대중의 호남 측근들 탓에,
이른바 운동권 시민사회가 크게 개입하지 못했습니다.
노무현 정권 시절 개입이 강화되다, 지금은 아예 제 1야당인 민주당이 완전히
극소수 좌파시민사회에 먹히고 있는 실정입니다.
지금의 민주당이 사는 길은 좌파시민사회의 벽을 뚫고 중원으로 진출하는 것 뿐입니다.
지금 민주당이 본받아야 할 노무현 정신도 바로 이런 성격의 것입니다.
현재의 좌파시민사회는 진짜 노무현이 추구했던 것을 박제화, 화석화시켜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점,
반면 강준만 교수는 아예 노무현의 거의 모든 것을 다 비판하고 있다는 점,
양자 모두 노무현의 본 모습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