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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워치> 130호 (PDF 전문)
  장하준이 "진짜" 경제학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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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riter : mahlerian     Date : 10-11-19 21:04     Hit : 8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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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요즘 마음이 많이 약해져서 되도록이면 누구 깍아내리는 글은 안쓰려고 애를 많이 씁니다. 아휴, 근데도 이놈의 치기는 어쩔 수가 없군요. 하긴 정치비평하면서 누구 비판하지 않는 글을 쓰겠다는 것부터가 말이 되지 않기는 합니다만 . . .
 
문용식에 이어 오늘은 좌파 언론들이 '사대주의식 촌놈 기죽이기'로 장하준을 밀어주는 짓을 한번 비판해보겠습니다.
 
보면 <한겨레21>같은 촌놈 좌파 언론들이 저렇게 장하준을 뭐 대단한 학자라도 되는양 띄워주는 것은 장하준과 관련 크게 다음과 같은 세가지 팩트에 기인합니다.
 
첫째, 장하준이 매우 젊은 나이(스물일곱)에 캠브리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는 것.
 
둘째, 그가 현재 캠브리지 대학교 정치경제학과 부교수(Currently a Reader in the Political Economy of Development)라는 것.
 
셋째, 그가 뮈르달상(The Gunnar Myrdal Prize) 수상 등 여러 학문적 영예를 갖고 있다는 것.
 
하지만 이 세가지는 장하준이 위대한 경제학자라는 근거로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왜? 
 
그건 바로 장하준의 전공이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주류 경제학, 과학으로서의 정통 경제학을 하는 학자가 아닙니다. 따라서 그가 밟은 저 트랙 자체의 권위는 높지 못해요.
 
위 <한겨레21>은 교묘하게 장하준을 "해외와 대중은 주목하지만 국내 학계는 무시하는 경제학자"라며 무슨 탄압이라도 받는 위대한 학자인 양 말을 합니다. 그러나 이건 애초 전혀 다른 영역을 한 영역에 쓸어담는 오류입니다.
 
만약 장하준을 국제 학계는 주목하는데 국내 학계는 무시한다면 그건 수상하게 볼 여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장하준을 사실은 해외 "언론"과 대중이 주목할뿐 국내외 할 것없이 학계가 무시하고 있다면?
 
이건 장하준의 정치선동을 상아탑에서 경계한다는 의미로도 얼마든지 해석 가능한 것입니다. <한겨레21>은 이걸 모르거나 또는 알면서도 무시하고 있는거예요.
 
아래는 영문 위키피디어의 "장하준" 항목입니다.
 
 
위키피디어 설명대로 장하준은 일반적으로 heterodox economists 로 분류되는 경제학자입니다.
 
heterodox 가 한국어로 무슨 의미일까요? 이거 아주 좋게 표현하면, "비주류"이고, 좀 나쁘게 표현하면 이는 "이단", "사이비"를 뜻합니다.
 
자, 어떤 똘똘한 한국인이 근본주의 기독교계에서는 알아주는 미국의 어느 신학대 창조 생물학과에서 스무살에 박사학위까지 취득했습니다. 그는 그 대학교의 서른살 전에 그 학교에서 테뉴어까지 받습니다. 그는 창조론에 대한 공헌으로 템플턴상까지 받습니다.
 
여러분은 이 사람이 도대체 제대로된 학문을 추구하고 있는 생물학도라고 생각합니까? 그의 발언을 생물학에 대한 권위로서 활용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비주류 경제학자인 장하준을 창조 생물학자로까지 비유하는 것은 지나칠 수도 있지만, 이거 비유 패턴 자체는 전적으로 정당한 것입니다.
 
지층에 깔린 민초들과야 비교도 안되겠지만 저는 솔직히 나름 학자연하는 사람이라면 장하준의 빛나는 성취에 대해서 그리 감동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알고보면 장하준의 전공은 그 동네에서도 주류 경제학과 비교 혹시 1% 나 선택할까 궁금한 그런 전공입니다. 사실 캠브리지대학교만이 아니라 서울대학교에서도 장하준 교수류의 전공이 가지는 입지는 매우 좁아요. 서울대에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로 정년퇴임한 김수행의 케이스를 보시지요.
 
 
장교수의 전공은 굳이 비교하자면 수능 제 2외국어 선택 아랍어란 말입니다. 정말 극소수의 선택과목, 아니아니 학과가 폐지될까 말까일 판인데 장하준이 학위 취득하기가 그리 어려웠을까요? 그리고 그에게 자리 좀 내어주기가 힘들었을까요?
 
장하준이야 설마 절대 아니라고 믿지만, 더구나 서구쪽에서 인문학계는 동양인이 공부하다가 수틀리면 '야, 이거 인종차별 아냐?!'식 배째라도 제법 통하는, 나름 공부하기 순탄한 곳이기도 합니다. 이승만이 프린스턴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데서도 얼마나 많은 뒷얘기가 나오고 있는지 알만한 사람은 알겁니다.
 
뮈르달상에 대해서도 모르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 한마디 하겠습니다. 뮈르달상의 기원인 칼 군나르 뮈르달(Karl Gunnar Myrdal)은 물론 과학으로서의 경제학에 공헌이 있는 학자이긴 합니다.
 
그러나 뮈르달은 정치적으로는 상당히 편향되어있었던 학자라는 것도 독자 여러분은 아실 필요가 있습니다.  설마 그가 우파였다고 생각할 분은 없겠지요? 그는 "사회주의는 저개발국가들이 성장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라는 주장까지 했던 좌파 학자입니다.
 
 
딱 봐도 뮈르달상은 과학으로서의 경제학에 대한 공헌을 심사하는 노벨경제학상과는 다른 의미의 경제학상임을 알 수 있지요? 이건 기독교가 신심이 높은 교도에게 템플턴상을 주는 것과 같은 의미에서 좌파가 당파성 충실한 당원에게 주는 상이라고 생각하는게 편합니다.  좌파 언론 <한겨레21>이 괜히 "노벨경제학상보다 더한 권위를 인정"한다는 둥의 말을 하는게 아니예요.
 
설마 진중권만큼이야 아니겠지만, 장하준이 전혀 정통 학자가 아니라는 것은  다음 두가지 추가지 증거로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첫째, 장하준은 논문이 아니라 주로 단행본으로 승부보고 있습니다.
 
이것부터 사실 말이 안되요. 제대로된 학자라면 주로 학술회의에 나가서 발표를 하거나, 또는 논문을 제출해야 합니다. 물론 그것은 독창적이면서도 사실과 부합하면서 경제학에 대한 큰 공헌이어야 합니다.
 
암만 비주류래도 캠브리지에서 리더를 하고 있다면, 장하준이 그래도 젊은 시절 좌파적 의미에서건 뭐건 참신한 시각의 논문을 내긴 했다고 봅니다. 하지만, 근자에 장하준의 저술 중 논문이 있습니까? 저는 별로 들어본 바가 없고, 소개되는 것은 하나같이 무슨 <사다리 걷어차기>니 뭐니 다 대중용 단행본입니다.
 
아니, 장하준 교수는 과학자가 아니라 인문학자인가요? 왜 맨날 장황한 말로 대충 승부봅니까? 자꾸 자신의 업적을 동료 학자가 아니라 그렇게 대중에게나 선보이고 있으면 그게 경제학의 제로존 이론이 아닌지 누가 보장해줍니까?
 
둘째, 장하준은 캠브리지 교수이면서도 서울대 교수를 지망해서 세번이나 떨어졌습니다.
 
이건 캠브리지에서 장하준의 전공이 가지는 지위가 얼마나 불안정한지, 또 그의 학술적 업적이 얼마나 보잘 것없는지 방증합니다.
 
상식적으로 한번 생각해보세요. 학자의 영예라는 점에서 일반적으로 캠브리지대학교가 서울대학교가 어디 비교가 됩니까? 이건 메이저리그와 한국야구의 차이예요. 박찬호가 아무리 힘이 달려도 한화에 입단 테스트를 받지 않아요. 쪽팔려서라도요. 그런데도 장교수는 박찬호가 안하는 그걸 세번이나 했습니다. 이거 상식에 부합합니까?
 
물론 장하준이 이휘소 신화처럼 무슨 뜨거운 애국심을 갖고서 고국에 뭔가 기여하고파 한국에 돌아오려고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여지야 남겨둘 필요는 있습니다. 하지만 석연찮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제가 이런 식으로 장하준 교수 깍아내리기를 하면 틀림없이 뭔 중상모략이다, 학술(?)로 대응하라 어쩌라는둥 나올 사람 있을 것입니다.
 
제 변명은 이렇습니다.
 
저는 장하준 교수가 대중적으로 먹히고 있는 부분을 비판하고 있고 그래서 대중이 할 수 있는 오인을 교정하기 위해 그의 자격증명(crendential)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중상모략일 수가 있나요? 실상은 장교수가 자격증명 수준이 높지 못하다면, 그보다 그게 높은 사람에게 대중을 대상으로한 연단을 제공하게 하는 것이 언론과 학계의 도리입니다.
 
추가 변명으로 장교수는 지금의 논의대로 정통 경제학 학술 영역에 있는 분이 아닙니다. 일단은 제가 그런 학술 논의를 할줄 모르기도 하지만, 애초 학술쪽에 있지 않은 분과 학술(?) 토론을 할 필요 없고 그 누가 사실은 신학자임에 불과하다는 것을 얘기하는데 꼭 성서를 자세히 읽어서 그와 토론을 해야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장하준 교수는 과대포장된 학자입니다. 그는 학자라기보다는 정치선동가, 방송연예인에 더 가까운 사람입니다.
 
캠브리지라는 그의 브랜드에 혹해서 그의 책을 읽는 분이 많겠지만, 적어도 영미 주류 경제학자들이 그의 전공(주류 경제학자들은 장하준의 이름은 커녕 그런 전공이 있는지 알 가능성도 낮을 것입니다.)의 과학성, 학술성을 무척 낮게 평가하고 있다는 것만 여기서 분명 알아두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좌파 언론의 독자 촌놈 대접에 저항합시다.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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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마로   10-11-20 00:20
heterodox를 사이비로 표현하는 것은 심합니다. heterodox 안에는 대단히 다양한 흐름이 있기에 주류와 거의 근접한 분야도 있고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처럼 몇광년은 떨어진 분야도 있죠. 그냥 비주류가 맞습니다. 장하준의 학문적 권위는 별로 문제가 안된다고 봅니다. 한겨레에서 장하준을 띄우더라도 그건 그들 사정이고, 똑같은 방법(권위에 흠집내기)으로 대응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장하준이 대중적 저술가라는 것도 별 문제가 없다고 보고요. 도킨스나 매트 리들리가 대중 저술을 주로 하지만 그들을 무시하는 것은 옳지 못하겠죠.

님의 기분은 이해하지만, 적절하지 못한 포스팅이란 생각이 듭니다. 장하준이 비주류고, 학계에서 그의 입지가 좁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식으로 대응하면 크루그먼이나 스티글리츠같은 좀더 주류 쪽의 학자들이 하는 말은 믿어야 하지 않느냐는 반론을 받기 십상이겠죠. 당연하지만, 크루그먼,스티글리츠 등의 노벨상 수상자가 하는 말이라도 특별한 권위를 인정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mahlerian   10-11-20 00:21
산마로/
리차드 도킨스와 매트 리들리같은 사람과 장하준은 경우가 다릅니다. 학술적 업적을 떠나서 학술적으로 잘 정립된 아이디어를 알기쉬운 용어로 친절하게 대중적으로 전파하는 것과, 학술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큰 소수 아이디어를 학술적 검증없이 자신의 통속적 학자 브랜드로 바로 대중에게 제시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노벨상 수상자가 하는 얘기에도 별 권위를 부여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잘 훈련된 사람들 얘기고 일반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노벨상 수상자는 그래서 처신과 발언에 더 조심해야하고, 크루그먼과 스티글리츠가 비난받아야하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크루그먼이나 스티글리츠의 얘기가 그래도 장하준"보다는" 믿을만하다는 생각입니다. 미국의 맥락에서라면 크루그먼과 스티글리츠가 장하준보다 온건하더라도 권력 측면에서 더 비판하겠지만 한국에서는 또 다르니까요.
산마로   10-11-20 00:34
크루그먼,스티글리츠의 이야기를 장하준보다 특별히 더 믿을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굳이 구별하자면, 학계에서 일반적으로 평가받는 그들의 업적은 믿더라도, 그들의 전공 영역을 벗어나 대중서에서 하는 말들은 장하준과 같은 수준에서 평가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봅니다. 이름있는 학자라도 전공을 벗어나면 헛소리하는 건 보통 사람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mahlerian   10-11-20 00:37
산마로/
스티글리츠는 잘 모르겠고, 크루그먼의 책은 그래도 저로선 유시민류의 책 읽을때 정도의 안심(?)은 되더라구요. 극좌파 비판도 때때로 하고 말입니다. 근데, 장하준의 책은 우석훈류이나 박노자류 책 읽을때만큼 이질적이고 이데올로기적 거리가 느껴지더군요. 이렇게 많이 나가있는 사람의 책을 이전 대통령도 막 추천하고 했다니 갑자기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합니다. 쩝.
패서바이   10-11-20 00:45
* 제목에서는 '진짜' 경제학자인가라는 화두를 던지고서는 본문에서는 '위대한' 경제학자가 아니라는 주장을 하시는군요. 제가 생각해도 장하준은 아직 위대한 경제학자의 반열에 오르지 못한듯 보입니다. 그런데 그가 가짜 경제학자라는 주장의 근거는 무엇인가요? 주류경제학에서 벗어나 있기때문인가요?

* '정통' 경제학은 도대체 무엇인가요? 혹시 Orthodox economics?
단군의땅   10-11-20 01:03
heterodox에는 아무래도 비주류라는 뜻이있는데 제가 알기로는 산마로님이 추구(?)하는 오스트리아 학파도 그 중에 하나로 들어가니 mal님에게 그 용어에 대한 정밀함을 요구하는 듯 합니다.

어쨌든 간에, 국내에서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장하준은 비주류인 막시즘 경제학을 전공한 정치경제학자로 분류되는 건 틀림없는 듯 합니다. 옥스포드에서 사사받았던 지도교수가 영국에서 marx 경제학의 대가인  Robert Rowthorn 정도라는 건 WiKi에 잘 나와있내요.

제 개인적인 생각인데
장하준을 퇴임한 김수행 교수를 대신할 우리나라의 마르크스 경제학자로 서울대로 오는 것도 괜찮을 듯 싶습니다. 아직도 우리나라 많이들 보이는 80년대 운동권의 훈고학적인 그 marx적인 접근이 아닌 World Bank나 the Asian Development Bank 등에서 developement등의 실무를 겪어본 한 marxist economist로서 나름 일익을 담당하는 것도 우리나라 같은 상황에서 그래도 의미있어 보어서에요.

서울대의 편협된 마르크스 경제학자 임용 논란 : 한겨레
http://hanireporter.co.kr/arti/opinion/editorial/275140.html

마르크스 경제학 : 조선일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2/20/2008022001736.html

(단, 아직 TO가 남아있다는 선에서)
단군의땅   10-11-20 01:44
mal님이 링크해준 장하준 관련 WiKi를 계속 읽다보니

Easterly vs. Sachs 논쟁으로 잘 알려졌고

The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 등의 associate editor 등으로  활동하는 유명 개발경제학자인 William Easterly 가 The newyork review of books에서 재반박을 포함, 두번에 걸쳐  장하준의 저서 '나쁜 사마리안'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던 것도 눈에 띄내요.
경청하는사람   10-11-20 03:59
mahlerian님/가장 영향력 있는 중국 10대 경제학자' 천즈우 예일대 교수

중국식 발전 모델은 없다

―최근 경제위기 동안 중국 경제는 서구와 달리 안정적인 성장세를 이어갔습니다.

일부에서는 중국의 국가 주도 발전모델을 '베이징 컨센서스(Beijing consensus)'라고 부르며 칭찬합니다.
<장하성교수의 견해와 같아 보입니다.>
"저는 정반대라고 봅니다. 지난 30년간 중국이 보여준 경제적 성공은 베이징 컨센서스가 주장하는 것들을 정확히 반대로 했기 때문에 이뤄진 겁니다. 다시 말해 중국 경제의 역동성은 금융·무역 분야의 개방, 제조·서비스 분야의 민영화에서 나온 겁니다."<천즈우 예일대 교수의 반박으로 보입니다.>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0/10/22/2010102201069.html
Garry   10-11-20 04:38
양신규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장하준은 ‘10명 중에 1명이나 가지고 있을 견해를 가진 경제학자‘겠지요. 남한에는 더 이상 거의 아무런 시사점도 없는 40년 전의 박정희식 국가자본주의적인 경제관을 정당화시키려는 그에게 ’케임브리지대 교수‘라는 학벌 하나로 껌뻑 죽는 남한 사회가 웃깁니다.
alleviate   10-11-20 06:36
박정희는 싫어하지만 장하준이 박정희식 국가자본주의적 경제관을 일부 옹호한 것에는 살짝 동감합니다. 그의 책을 대충 읽어보면, 무턱대고 '그게 가장 효율적이니까'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어서요..

비주류라고 경제학자 아니라고 하는 건 좀 심한 듯..

코즈처럼 노벨경제학상 언제 한번 받을 지 누가 압니까 ^^
솔직한사람   10-11-20 10:19
장하준 내공의 허접스러움과 범속함은 <희망을 위한 경제관>을 보시면 답 나옵니다. 요새 도덕, 윤리가 출판계에서 화두가 되던데 08~09년에 쓰인 이책은 이미 그 점을 중요시하여 다루었고요. 더불어 우석훈도 많은 편폭을 할애하여 비판하였구요.
mahlerian   10-11-20 10:40
패서바이/
장하준을 무슨 대단한 석학인양 대접하는, 이 사회의 거품 지적에 이 글의 목적이 있지요.
산마로   10-11-20 14:16
단군의땅// 오스트리아 학파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추구하지도 않습니다. 애초에 제가 무슨 학파를 추종할만큼의 경제학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지식이 있더라도 별로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백범   10-11-20 14:30
이건 별개의 얘기이겠지만... 장하준하고 장준하도 구별못하는 진보렬사 분들도 더러 있더군요. ㅋ
일탈을꿈꾸며   10-11-21 14:56
사실 한국 경제학계가 보잘것 없어서 뜨는 겁니다. 케임브릿지같은 세계적 명문대 교수를 배출해본 적이 사실 없거든요(뭐 있기는 하지만 그 정도되는 분들은 서울대를 비롯한 주요대에서 불러서 전부 빨리 한국으로 리턴하셨었기때문에) 장하준교수가 서울대 임용되어서 서울대 교수 타이틀 걸고 책썼으면 지금과 같은 거품은 없었을 겁니다. 아, 그리고 말님 말씀처럼 경제학자 중에 대중독자들을 위해 단행본내는 사람도 별로 없고요. 이게 결정적인 것 같네요. 마지막으로 장하준 교수 대단한 학자는 맞습니다.
mahlerian   10-11-21 15:43
일탈을꿈꾸며/
주류 경제학 하시는 분들은 논문 등 아카데미즘 소통에 능하지만, 비주류 경제학하는 분들은 그 반대의 소통에 능한 것과도 관계있어보입니다.
패서바이   10-11-21 16:55
장하준에 대한 폄하의 근거가 무엇인지 불확실하네요.

현실에의 참여 혹은 학문의 대중화에 발을 담그는 자는 진정한 학자가 아니라는 주장이라면 그건 그것대로 하나의 색다른 시각으로 받아들일만하네요. 그렇지만 말님이 같은 잣대를 물리학의 파인만이나 경제학의 크루그먼에도 동일하게 들이댈런지 의문입니다. 파인만이 과학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챌린저호 등의 진장조사위에서 정치적인 발언을 했으므로 가짜 물리학자라고 주장하신다면... 글쎄요...

'정통' 경제학 (전통경제학이 아니고 정통경제학이라... 그런게 있는지 궁금합니다만... 어찌되었건)을 하지 않았으므로 사이비라는 주장은 다소 궁색해보입니다. 그리고 경제학설사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주장으로 보입니다. 말님이 (암묵적으로) 진짜 경제학자들이라고 주장하시는 사람들은 보수주의 경제학자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과연 제도경제학을 사이비라고 생각할까요? 말님은 영미의 경제학자들중 분배나 지속적인 성장이라는 이슈에 관심을 가지고 천작하는 이들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나요?
mahlerian   10-11-21 18:10
패서바이/
장하준이 무슨 경제학의 대중화에 앞장섰나요? 그는 어디까지나 경제학 중에서도 한정된 비주류 경제학의 대중화에 앞장섰을뿐입니다.

장하준은 파인만과 전혀 비교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예요. 파인만은 과학적 회의주의자에다가 주류 물리학계의 대변자로서, 무슨 비주류 물리학, 이를테면 초끈이론같은 것도 철저하게 배격했던 장하준과 전혀 반대 위치에 있었던 학자라는 말입니다.

또 장하준식 정치선동과 파인만의 챌린저호 진상규명의 경우도 구분되어야할 현실참여입니다. 학자가 학술적으로 정립되지 못한 인문학적 방법론으로 도출된 결론을 들고 동료 학자 설득은 나중이고 출판을 통해 바로 대중과 정권을 상대로 선전선동하는 것(장하준)과, 과학적 방법론으로 특정 사건의 원인을 규명하고 전문가들로부터 검증을 받은 후 그 결론을 들고서 대중과 정권을 상대로 설득을 하는 것(파인만)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패서바이님.

과학지상주의자인 저로서는 과학적 의학인 현대의학은 대충 익히고, 말빨 중심의 인문학적 의학인 한의학에 능한 한의사를 정상적인 의사, 제대로된 의사로 대접해줄 수가 없어요.

마찬가지로 (물론 경제학의 특성상 의학만큼 극명하게 구분하기는 어렵겠으나) 과학적 경제학인 주류경제학에는 거의 업적이 없고, 말빨 중심의 인문학적 경제학인 비주류 경제학인 제도경제학이니 경제학사니 하는 것에 더 능한 사람을 더 제대로된 학자로 대접해줄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제가 암묵적으로 진짜 '경제학자'로 인정하는 사람들은 '보수주의 경제학자'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다는 것은, 제가 암묵적으로 진짜 '의사'라고 인정하는 사람들은 '서양의사'로 불리우는 사람들이란 소리와 같은 것입니다.

저는 어떤 학문이 올바른 학적 방법론인 과학적 방법론에 입각했냐 안했냐는 것은 단순히 무엇을 주류냐 비주류냐 구분하는 것 이상의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패서바이   10-11-21 20:36
말러리언/
- "장하준이 무슨 경제학의 대중화에 앞장섰나요? 그는 어디까지나 경제학 중에서도 한정된 비주류 경제학의 대중화에 앞장섰을뿐입니다. "
--> 그러니까 님은 보수주의 경제학이 아니면 아예 경제학으로 취급하지 않겠다는 뜻이군요. 가능하시다면 다음 번에 '왜 보수주의 경제학자들만이 진짜 경제학자인가'에 대한 고견을 들을 기회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 "학자가 학술적으로 정립되지 못한 인문학적 방법론으로 도출된 결론을 들고 동료 학자 설득은 나중이고 출판을 통해 바로 대중과 정권을 상대로 선전선동하는 것(장하준)과..."
--> 님이 진짜 경제학자라고 분류한 고전학파 경제학자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같은 영미권의 케인지언들이 극렬하게 비판해마지않던 이론들을 들고 나와 (즉, 동료 학자 설득에는 관심도 없었지요) 대중과 정권을 상대로 선전선동하는 것을 넘어서서 아예 정책결정 프로세스에 참여한 사람들도 많았죠.
산마로   10-11-21 20:47
패서바이//
  님이 말하는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은 누군가요? 일부 공급측 경제학자들을 제외하면, 그런 사람 별로 찾기 힘들텐데요. 공급측 경제학자들 중에서도 정통인 펠스타인 같은 경우는 레이건 정부가 자기 충고를 안 듣자 정부직을 박차고 나와버렸습니다. 6~70년대의 고전학파 경제학자(대표적으로 프리드먼)들은 선전선동이 아니라 논문과 저서로 학계에서 인정을 먼저 받고 대중에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말님이 얘기한 주류경제학자들에는 보수주의자뿐만 아니라 당연히 케인지언들도 들어가지요. 장하준은 케인지언이 아닙니다.
패서바이   10-11-21 23:01
산마로/
- "6~70년대의 고전학파 경제학자(대표적으로 프리드먼)들은 선전선동이 아니라 논문과 저서로 학계에서 인정을 먼저 받고 대중에 알려졌습니다."
-->
  그건 다른 대중적 지식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논문과 저서로 학계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면 유수대학의 교수자리를 꿰찰 수 없습니다. 유수대학의 교수라는 간판이 없으면 장하준류의 선전선동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지금 말님은 장하준에게 왜 논문을 더 쓰면서 반대자를 설득하지 않고 대중들에게 어필하려드느냐는 관점에서 장하준을 사이비로 몰고 있는데... 같은 논리가 산마로님이 언급하신 보수파 경제학의 수장 프리드먼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케인지언이 득세하던 시절에 더 이상 케인지언을 설득하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티비에 나와 대중을 상대로 자신의 이론과 논리를 설파하는데 여념이 없었습니다. 또한 금통위원 등 각종 감투도 사양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저를 포함하여) 아무도 프리드먼을 사이비 혹은 시류에 영합하는 학자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비록 장하준은 프리드먼만큼 위대한 경제학자는 아니지만 그가 행한 각종 대중화 행위가 경제학계에 있어서 상궤에 벗어나는 그리하여 사이비형 경제학자라고 불릴 정도는 어느 모로 보나 결코 아니라는 말입니다.

- " 말님이 얘기한 주류경제학자들에는 보수주의자뿐만 아니라 당연히 케인지언들도 들어가지요. 장하준은 케인지언이 아닙니다. "
-->
* 말님의 본글 및 댓글 어딜 봐서 케이지언을 포함시킨 것으로 보이나요? 말님의 다음 멘트를 보시죠. "크루그먼의 책은 그래도 저로선 유시민류의 책 읽을때 정도의 안심(?)은 되더라구요. 극좌파 비판도 때때로 하고 말입니다. " 문맥상 주류경제학자에서 케인지언은 빠집니다.
* 저는 장하준이 케인지언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장하준은 (그리고 그 부류의 학자들은) 아무래도 보수주의 경제학자들보다는 케인지언에 더 가깝겠지요.
산마로   10-11-21 23:32
패서바이// 프리드먼이 티비에 나온 것은 80년대입니다. 그리고 그때는 이미 케인지언이 득세하던 시절이 아닙니다. 프리드먼은 76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습니다. 70년대에는 이미 스태그플레이션을 계기로 프리드먼을 위시한 통화주의자들이 학계에서 우위를 점한 때입니다. 사실 관계를 제대로 아시길 바랍니다. http://en.wikipedia.org/wiki/Milton_friedman 참조.
또한 프리드먼이 80년대에 대중적 활동을 할 때는 이미 거시경제학계에서 고전학파의 입지가 확고해졌을 때입니다.  장하준이 프리드먼만큼 학계에서 인정받은 내용을 대중적으로 알리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리고 당연히 말님은 케인지언을 주류로 인정합니다. 그러면 말님이 보수적 경제학자들만을 제대로 된 경제학자로 인정한다는 님의 발언은 당연히 틀린 것이 되겠죠? 알면서도, 말님이 하지도 않은 말을 덮어씌우는 것은 곤란하죠.

추가: 프리드먼의 업적은 미시경제학의 논리(케인지언들도 인정하는)를 거시경제학에서도 일관되게 관철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류경제학의 합의를 기초로 한 연구였다는 점에서, 경제학계 주류의 합의와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전제 하에 연구하는 장하준과는 비교될 수 있는 경우가 아닙니다. 말님이 예로 든 창조론까지는 아닐지 몰라도일반적인 경제학계의 합의를 기초로 하지 않는 이론이라는 점은 확실히 비슷합니다.
흑진주   10-11-22 00:13
장하준이 경제학의 지도에서 어디에 있는지 잘 모릅니다만..

사다리 걷어차기란 책을 보면 우리나라 같은 후발국 입장에서는
내세우고 싶은 논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일본의 경우도 보면 사다리 걷어차기에는 전쟁부분이 빠졌는데..
후발국으로 죽도록 노력해 열강에 들려고 했으나 다른 나라들이 자원(과 식민지) 배분을 인정하지 않아
전쟁으로 나아간 것인데요.(강대국 일본의 부활이란 책에서)
패배의 원인 중 큰 부분도 결국 자원부족이 아닌가 싶고요.

우는 애 젖준다고..
후발국인 우리 입장에선 저런 장하준 교수의 논리도 만들어 둘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패서바이   10-11-22 00:31
산마로/
* '그리고 당연히 말님은 케인지언을 주류로 인정합니다. 그러면 말님이 보수적 경제학자들만을 제대로 된 경제학자로 인정한다는 님의 발언은 당연히 틀린 것이 되겠죠? '

라고 말씀하실 때는 근거를 대셔야죠 (저는 미약하나마 제가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를 제시했습니다). 산마로님이 무슨 독심술가도 아니고... 오히려 제게 "알면서도, 말님이 하지도 않은 말을 덮어씌우는 것은 곤란하죠."라고 하시면 산마로님이 괜히 오해를 받습니다.

* '우위를 점했다'와 '입지가 확고해졌다'는 어떻게 다른가요? 더 나아가서 학계의 인정을 받았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즉, 학문을 하는 사람이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대중에게 설파하려고 하는 경우 그 소신이 어느 정도까지 해당 학계에서 받아들여져야합니까? 또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 기존의 주된 학설에 대항하는 '하나의 훌륭한 대안'으로 받아들여진다는 뜻입니까 아니면 옳고 그름을 논하는 방식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입니까?

* 위의 논점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두 논점 중 대중적 프로파겐더에 적합한 것은 무엇인가 생각해보세요.

(1) 명백한 반대자가 있는 통화주의
(2) 기존의 주류경제학이 제대로 다루지 않고 (혹은 다룰 수 없는) '지속가능한 성장'이라는 주제

님은 학문적 성취도의 측면에서 (1)이 (2)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으므로 대중화를 시도한다고해도 학자적 태도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지만 (2)는 그다지 대단한 학문적 성취라고 볼 수 없으므로 그걸 떠벌이고 다니는 짓은 학자로서 할 짓이 아니다라는 입장인듯 보입니다.

* " 주류경제학의 합의를 기초로 한 연구였다는 점에서, 경제학계 주류의 합의와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전제 하에 연구하는 장하준과는 비교될 수 있는 경우가 아닙니다. "
--> 케인지언도 인정하는 합의라... 아마 희소성을 지칭하는 것이 아닐까합니다. 그것이 아니라고해도... 제도경제학자들이 주류경제학의 공통된 합의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전제>하에 연구하던가요? 만일 그렇다면 그러한 전제의 예를 하나 들어주시죠.

* 그나저나 산마로님은 장하준이 쓴 글 (학술논문이건 대중서적이건)을 읽어보신 것입니까? 저는 그의 글을 몇 개 읽어보았는데 그의 주장이 다소 변두리스럽기는하지만 주류경제학의 대전제들을 부정하고 있다는 느낌은 전혀 받지못했습니다.
산마로   10-11-22 01:07
패서바이//
  첫째, '그러니까 님은 보수주의 경제학이 아니면 아예 경제학으로 취급하지 않겠다는 뜻이군요. ' 님이 말러리안님께 한 말입니다.남이 쓴 글을 읽는 데는 독심술이 필요 없습니다.

  둘째, 경제성장론이란 제목으로 한번 검색해 보시지요. 제일 유명한 교과서로는 Weil 이란 사람의 책이 있는데 분량이 만만치 않을 겁니다. 대학원용 교과서로는 배로가 쓴 책도 있다고 합니다. 주류경제학계에서 경제성장이나 제도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사실과 전혀 다른 왜곡입니다. 장하준의 업적은 님이나 제가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학계의 대부분이 판단하는 것일진대, 장하준이 경제학계의 주류에서 인정을 받았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장하준이 주류 경제학계에서 인정을 못받는 이유는 그의 관심 주제 때문이 아니라 그가 주류와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전제 하에서 연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통화주의에 반대자가 많다는 것은 그 연구 성과에 대해서가 아니라 정치적 입장에 대해서이죠. 케인지언들도 현재는 통화주의의 업적들을 대부분 받아들인 상태입니다. 현대거시경제학(Snowdon 외)에 실려 있는 맨큐의 인터뷰를 보시는 편이 좋을 겁니다.

  셋째, 장하준의 책 중에서 '국가의 역할'이라고 나름 이론적으로 쓴 저서(완전 학술서는 아니지만)가 있는데, 그 앞부분에 자기의 연구 방향을 밝히면서, 주류 경제학의 방법론적 개체주의를 전면 부정하는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그 외에도 장하준은 곳곳에서 주류 경제학의 방법론적 개체주의(경제학의 기초 전제)를 전면 부정하는 발언들을 했습니다. '국가의 역할'은 지금 제가 갖고 있지 않지만, 신동아 2004년 부록인 '현대사상의 키워드 60'에서도 신제도학파를 장하준이 소개하면서 그들의 방법론적 개인주의를 비판하고 구제도학파(말할 필요도 없이 비주류)를 옹호했습니다. 장하준의 저서나 글을 제대로 읽지 않은 것은 님인 것 같군요.
패서바이   10-11-22 11:31
산마로//
1.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산마로님이 말러리안님의 대변인도 아닌데 왜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말러리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하시는지 의아해하고 있을뿐입니다.

2-1. 성장과 지속가능한 성장은 다른 것이지요.
2-2. '케인지언들도 현재는 통화주의의 업적들을 대부분 받아들인 상태입니다.' --> 업적을 받아들인 것과 학설 자체를 받아들인 것이 같은가요? 케인지언의 대변자 중 하나인 크루그먼이 통화주의자들에 대하여 뭐라고 하셨는지 들어보셨나요? 그는 통화주의(이론) 자체에 대해 파산이라고 묘사했습니다. 그런데 그도 그들의 <업적>은 인정했죠. '어떻게 그렇게 미국경제정책을 말아먹을수 있었을까? 과연 대단하군 대단해~' 이런 식으로요. 이게 케인지언들이 통화주의의 업적들을 <받아들인> 것인가요?

3. 개체주의에 대하여 전지전능하다고 숭상하고 신봉해야만 개체주의를 받아들인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한 태도는 주류경제학 일반이 아닌 신고전파'만'의 전제 아닌가요? 유동성 함정, 전략적 무역론 등 주류경제학의 울타리에 들어가는 수많은 이론들이 개체주의의 전지전능함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산마로   10-11-22 13:15
패서바이//
1. 님이 말러리안님에게 모순되는 발언을 한 걸 지적하고 있을 뿐입니다.

2-1. 주류경제학의 성장론이 지속불가능한 성장을 추구한다고 생각합니까?
2-2. 크루그먼이 케인스학파를 대변할 수 있다고 본다면 큰 착각입니다. 크루그먼이 그 논쟁과 관련하여 어떤 헛소리들을 했는지 검색해 보시기 바랍니다.

3.신고전파 경제학=주류경제학입니다. 대부분의 케인지언들도 현재는 신고전파의 미시적 기초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방법론적 개체주의는 미시경제학(주류경제학에서는 학파별 차이도 없습니다)을 인정하는 주류 일반(뉴케인지언도 포함)의 합의된 전제입니다. 그리고 전략적 무역론을 사이비라고 신나게 깐 게 크루그먼입니다. 크루그먼이 그런 반응을 보였다면 대강 전락쟉 무역론의 학계 위상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패서바이   10-11-22 13:57
산마로//
다른 것은 차치하고...

산마로님은 앞의 댓글에서 "그리고 말님이 얘기한 주류경제학자들에는 보수주의자뿐만 아니라 당연히 케인지언들도 들어가지요."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번 댓글에서는 "신고전파 경제학=주류경제학입니다."라고 하시네요.

그렇다면 케인지언이 주류냐 아니냐에 대하여 두 분의 의견이 갈리네요. 산마로님은 케인지언은 주류가 아니라고 하시고 말러리언님은 (산마로님에 의하면) 케인지언도 주류에 포함된다고 하시고...

맞나요?
패서바이   10-11-22 14:02
산마로// "방법론적 개체주의는 미시경제학(주류경제학에서는 학파별 차이도 없습니다)을 인정하는 주류 일반(뉴케인지언도 포함)의 합의된 전제입니다."
--> 합리적 경제인이라는 개체주의적 테제가 유동성 함정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끝까지 유지>될 수 있나요? 고견을 경청하고 싶습니다.
헤게몬   10-11-22 17:19
패서바이/

두 분의 논쟁 내용을 떠나서 유동성 함정과 합리적 경제인이라는 미시경제학의 가정은 상충되지 않습니다.

케인즈가 설명했던 화폐수요는 일반적인 상황-예컨대, 이자율이 증감하긴 하지만 경제주체들이 그 폭을 예상할 수 있고 거시경제에 위험이 없을 때-에 해당합니다. 거시경제가 전체적으로 불안하여 당장이라도 뱅크런이 속출할 우려가 있는 경제위기 시에는 위험(risk)이 커지므로 채권 보유로 인한 수익의 기대값이 현저하게 떨어지게 됩니다. 그러니  당연히 화폐수요량이 폭증할 수밖에 없죠. 이 때 화폐공급을 늘려봤자 금리는 변화가 없을 수밖에 없고.

따라서, 경제위기 시에 커진 위험에 반응하는 경제주체들의 행동은 결코 비합리적인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도 당연하고 합리적인 행동입니다.
mahlerian   10-11-22 19:52
산마로/ 패서바이/
제 주장의 맥락을 산마로님이 잘 이해하신 것입니다. 저는 과학적 방법론에 입각한 영미 주류 경제학을 진짜 경제학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고, 당연히 거기에는 케인즈, 스티글리츠, 크루그먼같은 좌파 경제학자들도 학술영역 내에서는 관련 업적을 낸 이상 다 포함됩니다. 주류 경제학 내에서도 좌파와 우파가 있는데, 그것은 빛의 성질과 관련 입자설과 파동설이 공존하고 둘 다 사실은 일장일단이 있는 것처럼 주류경제학내 좌우파의 차이는 그리 신경쓸 문제는 아닙니다. 다만, 장하준 교수는 학술쪽으로도 뭔 좌파가 아니라 아예 내놓은 일관된 극좌파이고, 당연 제 기준에선 무슨 입자설과 파동설의 갈등에도 끼어들 학문적 수준을 갖춘 분이 아닌 것이지요.
mahlerian   10-11-22 20:42
저 위의 한의학 운운하는 코멘트는 제가 갖고 있는 한 비판적 기준인 '과학적 회의주의 차원'에서 장하준 교수를 기준 미달이라고 비판한 것이고, 사실은 저의 또다른 비판적 기준인 '저항적 이데올로기 차원'에서도 장하준 교수는 충분히 저에게 격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자리에서 말씀드립니다.

장하준이 비주류, 약자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아카데미에서 그렇다는 것이고, 그는 사실 주요 사회소통권력의 대우에 있어서는 완전 주류, 강자에 속하는 사람입니다.

장하준은 실제와는 다르게 현 주류 좌파 언론에 의해서 엄청난 석학으로 또 약자에 대해서 대단히 온정적인 사람, 나이스가이로 조명받고 있어요.

이런 사람을 저같은 사회소통권력 기준으로 저항을 하는 좌파가 비판안하면 누가 비판합니까?

사실 우리 아카데미내에선 너무나도 당연한 학적 방법론인 과학적 방법론으로 학문을 추구하는 사람은 그냥 과학자요 학자일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하지만, 묘하게도 이런 정상적인 과학자와 학자가 사회소통권력인 오늘의 주류 좌파들에게는 반드시 몽땅 다 과학지상주의자나 보수주의자라는 딱지로서 포장됩니다.

이거 사회소통권력이 아카데미를 전혀 인정하지 않겠다는게 아니라면 대단히 불공정한 처사입니다.

교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의 장하준같은 이에 대한 비판(추가로 한의학에 대한 비판)은 단순히 사실관계 교정 외에도 이런 구조적 불공정 시정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패서바이   10-11-22 21:40
헤게몬/ 보수주의경제학이 기대는 전제인 '합리적 경제인'이 '합리적으로 (그러니까 논리적이고 남이 보기에 그럴듯하게) 생각하는 개별 경제주체'를 의미하지는 않을텐데요? 프리드먼의 표현 방식을 따르면 잠시 혼란에 빠져 소비를 줄이고 장롱에 현금을 처박아놓지만 곧 평정심을 회복하고 자신이 가진 완전한 효용함수 하에서 최대의 만족을 추구하는 사람이죠.
헤게몬님이 설명하신 바가 '합리적 경제인'의 전제에서 말하는 <합리>를 뜻한다면, 노벨상을 받은 비주류 경제학자들이 주장한 합리적 선택제도주의도 '<합리>적 경제인'을 상정합니다. 따라서 산마로님이 주장하는 주류경제학과 비주류경제학의 차이점이 없어져버리는 결과가 발생합니다.
산마로   10-11-22 21:49
패서바이// 경제학의 용어를 모르시는군요.  신고전파란 19세기 한계혁명으로 확립된 미시경제학을 받아들이는 모든 경제학파를 가리킵니다. 흔히 말하는 신고전파 종합이란 신고전파의 미시경제학과 케인즈의 거시경제학을 종합한 학파의 명칭이며 이 학파의 다른 이름이 네오케인지언입니다. 이 학파는 말할 필요도 없이 몇십년전의 주류였고 지금은 뉴케인지언으로 이어집니다. 따라서 학계에서 흔히 케인지언으로 지칭되는 학파는 대부분 신고전파 경제학에 속합니다. 님이 생각하시는 신고전파는 거시경제학의 새고전파인 것 같은데, 새고전파는 학계 주류인 신고전파 경제학의 일부입니다. 더정확히 말하면,  신고전파인지 아닌지는 현대 미시경제학을 받아들이는지 안 받아들이는지로 결정됩니다. 통화주의-새고전파로 이어지는 거시경제학의 흐름은 말할 필요도 없이 신고전파 경제학의 적자(미시-거시의 본질적 차이를 인정하지 않음)이지만, 미시경제학을 인정하고 그 위에 케인즈의 거시경제학을 받아들이는 네오케인지언-뉴케인지언들도 신고전파 경제학에 속합니다. Neo(신)와 New(새)라는 용어가 헷갈려서 오해하기 쉽습니다만, 미시경제학과 거시경제학의 학파 개념이 서로 다르다는 것만 알면 용어 정리가 잘 됩니다.
패서바이   10-11-22 21:57
말러리안/
* 케인지언을 포함한 주류경제학만이 '과학적' 방법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주장은 그냥 이견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모두 행동경제학을 포함하는 비주류경제학이 여러 명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를 배출했음에도 불구하고 비과학적이다하는 주장을 도저히 수긍할 수 없지만요.

* 그런데 장하준 교수가 말님에게 비난받는 이유는 정확하게 무엇인가요?

(1) 단지 비주류경제학 진영에 있기때문에? 그렇다면 노벨상을 받은 오스트롬과 같은 학자들도 밖에 나와서 떠들지말아야하겠군요.
(2) 장하준이 아직 그렇게 위대한 경제학자의 반열에 오르지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큰일입니다. 우리나라에 위대한 경제학자가 거의 없으니, 앞으로 누가 경제관련 토론회에 나오고 누가 경제관련 칼럼을 쓸까요? 마찬가지 잣대라면 명의의 반열에 오르지 못한 의사는 의료정책토론에도 나오지 말아야하고 저명 언론학자가 아니라면 인터넷 언론의 문제점에 대해 글을 쓰는 일도 삼가해야하지 않을까 싶네요.
산마로   10-11-22 21:59
패서바이// 신제도주의(합리적 선택 제도주의)는 비주류가 아닙니다. 노벨상을 받았다면 이미 비주류가 아니죠. 신제도주의가 구제도주의와 다른 점은 그들이 바로 신고전파 경제학의 방법론적 개체주의를 제도 분석에 응용했다는 것입니다. 님이 말한 것처럼 말이죠. 방법론적 개체주의와 합리적 선택이론을 공유하는 이상 그들은 신고전파 경제학과 입장이 별로 다르지 않아요. 따라서 그들은 이미 주류이고, 그렇기 때문에 노벨상을 여러번 받을 수 있었던 겁니다. 님은 장하준도 그들과 같은 입장이라 주장할지 모르겠으나 장하준은 그들과 결정적으로 학문적 전제가 달라요. 신제도주의 경제학이 받아들인 방법론적 개체주의를 거부하기 때문에 장하준은 구제도학파에 속하며 완전히 비주류인 것입니다. 프리드먼이 대중적 활동을 한 것과 경우가 다릅니다. 비주류라고 해서 틀렸다는 건 아니지만, 비주류가 해외에서 저명한 경제학자인 척 하는 건 정직한 처신이 아니죠. 그 정도의 포장이야 어느 정도 이해할만한 구석이 있지만, 그 사실을 지적받았을 때, 거짓 증거를 내놓는 건 이해받을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장하준 본인이 한 일은 아니라지만, 말님이 지적하신 것을 어떻게든 남들이 변명하려 하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mahlerian   10-11-22 22:04
패서바이/
제 주장을 단단히 곡해하시는군요. 저는 앞서 과학적 방법론에 바탕을 둔 경제학을 주류경제학이다고 했습니다. 당연 제 기준에서는 과학적 방법론에 바탕을 두고 지속적으로 업적을 낼 수 있으면 행동경제학이고 진화경제학이고 뭐고 간에 다 주류경제학에 속하는 것입니다. 저는 행동경제학과 진화경제학은 다만 주류경제학내의 비주류경제학일뿐이라고 봅니다.

장하준 교수의 경제학은 주류로 올라갈 잠재력이 전혀 없는 인문학적 방법론에 기반한 비주류 경제학입니다. 행동경제학이나 진화경제학처럼 과학적 방법론에 대한 존중이 있는 비주류 경제학과 과학적 방법론에 대한 존중이 전혀 없는 장하준식 비주류 경제학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과학적 방법론에 대한 존중이 없는 비주류 경제학이 과대평가받는 것을 무척 경계하고 있는 것입니다.

장교수가 지 잘났다고 떠드는 것이야 표현의 자유겠지만, 그 떠드는 주장들이 주류경제학적 관점에서는 권위가 떨어지는 bad speech 라고 제가 지속적으로 주장하며 견제하는 것 역시 제 표현의 자유입니다.
mahlerian   10-11-22 22:21
패서바이/
곰곰 생각해보니 패서바이님 말씀도 일리있는 구석도 있습니다.

기실 사람은 엄격하게 과학적인 것과 비과학적인 것을 구분하지를 못합니다. 사람이 그걸 구분못하는게 아니라 사실은 그런 구분 자체가 환상이라는 일부 과학철학자의 지적도 있습니다.

제가 봐도 인간은 어떤 엄격한 과학 방법론같은 것 없이 그냥 단순하게 상징적 구분이 가능한 그룹으로만 세트화해서 세계를 인식하고 있는 같아요. 주류면 주류고 비주류면 주류인 것이지, 뭔 과학적 방법론은 고사하고 인간은 주류면서 과학적이고, 비주류면서 비과학적이고 이렇게 복합적으로도 잘 생각 못한다는 말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오류를 줄이기 위해서는 오류를 어느 정도는 인정해주는 것도 인간이 진리를 찾아가는 한 방법일는지 모릅니다. 과학적이지 못하다고 다 한큐로 치는게 꼭 능사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는 장하준류의 비주류 경제학을 어떤 상황에서는 그 정합성을 떠나 우리가 어느 정도는 관대하게 대접할 필요가 분명 있다고 봅니다.

왜?

바로 그런 태도가 주류 경제학 내에서도 당장은 장하준류와 같은 비주류면서 장하준류와는 달리 과학적이면서도 참신한 아이디어들을 늙다리 보수 학자들이 받아들이게 하는데도 사실은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원래 과학적인 것이거나 비과학적인 것을 구분해서 받아들이는 것보다 차라리 주류적이거나 또는 비주류적인 것의 그룹적 상징을 받아들이는 것을 더 쉬워 합니다.

그렇다면 인류 멸종전까지 불가능해보일 인간이 과학적 방법론을 세팅하는 것을 기다리는 것보다,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라도 진리에 더 접근하는게 낫지 않을까요?

비주류적인 것이데서 항상 기존 진리에 의문을 품는 참신한 사고가 도사리고 있다는 점에서, 그냥 비주류적인 것을 받아들이는데서 역시 오류도 포함되겠지만 혁신도 가능하지 않은가 하는 것입니다.

저는 한의학이나 창조론에 대한 우리의 인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틀린 생각들을 그 어떤 시대와 상황에서도 가혹하게 대접해선 곤란합니다. 그랬다가는 참신한 의학의 아이디어, 참신한 생물학의 아이디어도 같이 뭍힙니다.

쓰고보니 지금까지의 입장과 전혀 반대로 장하준 변호가 되고 말았는데, 말씀드렸듯이 현재 저의 장하준류 경제학에 대한 비판적 태도는제  나름의 명분이 있습니다.

바로 장하준류와 가까운 한때의 비주류라는 사람들이 지금의 소통권력을 쥐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항적 이데올로기의 차원'에서 장하준 격하운동이 충분히 도덕적 정당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저는 장하준류 경제학, 아니 지금껏 비주류라고 일컫어졌던 모든 것들이 지금은 너무 과대평가를 받고 있는 주류다고 합니다.

이러면 주류 경제학, 그중에서도 패서바이님이 정말 보수우파적이라고 칭하는 경제학이 그 학술성에 비해 너무 과소평가를 받는 일이 발생하죠. 이름만 주류지 이들이 현실적으로는 오히려 대중에게 비주류 대접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장하준류 경제학은 존재가치도 없다는게 아니라 모든 경제학은 다 자기 몫이 있습니다.

어디까지가 적당냐 하는데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저는 아무튼 그 정당한 몫을 돌려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패서바이   10-11-22 22:47
산마로/
* 친절한 강의 감사 드립니다. 그런데 님이 '새'고전파라고 부른 사람들을 '신'고전파로 부르는 경우가 더 많은듯합니다.
*  제도경제학에서 '구'와 '신'의 차이점은 발전단계의 차이로 보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제도경제학 자체가 기존의 주류경제학적 전제 혹은 이론으로 잘 설명하지 못하는 틈새를 치고 나왔기때문에 애초에는 주류경제학의 전제 혹은 방법론에 회의를 품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연구의 결과 기존의 주류 패러다임에서 연구의 주제가 잘 설명된다면 그걸 다시 받아들이면 됩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주류경제학의 전제가 '유일한' 과학적 방법론도 아니고 (과학적이라는 전제 하에) 얼마든지 그 방법론 자체를 회의할 수 있는 것이고 검토 결과 그나마 현실을 가장 잘 설명하는 패러다임이라는 점이 밝혀지면 다시 수용하면 되는 것이고.
  그런데 장하준이 경제학의 어떤 분야에서 주류경제학의 전제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고해서 (산마로님이 말하는 그 전제가 무엇인지 아직도 모릅니다. 누차 질문 드렸지만 정확하게는 답변을 하지 않으시는군요.) '유일한' 과학적 방법론을 외면한 것으로 치부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제가 알기로 장하준은 (그리고 대부분의 비주류 경제학자들은) 일부 분야에서 주류경제학의 이론이 현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점을 지적하면서 '전제 자체에 문제가 있는거 아닌가?'라는 의문을 품는 것이죠. 그걸 '유일한' 과학적 방법론에 대한 도전 혹은 거부로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도그마라는 생각이 듭니다.
패서바이   10-11-22 22:57
말러리언/

학술적 성격과 거리가 한참 먼 쾌도난마 한국경제란 책을 물론 읽어보셔서 아시겠지만 장하준은 이데올로기적으로 좌우의 어정쩡한 위치에 있습니다. 지금은 한미FTA 때문에 그리고 몇 년 전에는 고 노무현 대통령의 잘못된 책읽기 및 아전인수식 해석때문에 진보진영에서 스팟라이트를 받고 있지만... 그의 재벌, 박정희 등에 대한 평가를 보면 진보진영의 입장에서는 씹어먹어도 시원치 않을 인간입니다.

따라서 장하준류의 비주류경제학이 (진보진영에 의해) 과대평가를 받고 있다는 진단은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오마이나 프레시언이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해보면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과대평가'도 일시적일 가능성이 무척 농후합니다. 오히려 국내 학계가 너무나 주류경제학 편향적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마당에 인터넷 그리고 몇몇 마이너 언론에서 장하준을 띄워준다고 해서 과대 평가를 받는다고 하기는 어렵지요.
토토로   10-11-22 23:15
장하준이라는 사람이 속한 (경제학자) 집단이 '주류'인가 '비주류'인가를 구분하려는 시도는 별로 생산적이지 않은 듯 합니다. 그와 같은 분류보다 앞서는 사실은 이 양반의 전공이 '발전경제학'[development economics;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경제성장론'과는 또 다른 분야라고 해야겠죠. 제도나 문화 등의 경제외적 변수들까지 포괄하여 연구하는 것이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뭐 그런]이라는 것이겠지요. 이를 염두에 둔다면, (아무런 세부전공으로서의 수식어가 붙지않은) 경제학 일반의 관점에서 장하준이란 학자가 주류에 속하는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은 아무래도 핀트가 좀 어긋난 얘기라고 보입니다.
산마로   10-11-22 23:38
패서바이// 방법론적 개체주의라고 말했을텐데요.  이는 주류경제학의 기본 전제입니다. 그리고 새고전파를 신고전파라고 부르는 경제학 교과서가 있는지가 도리어 의문이군요.

토토로// 별로 생산적인 건 아닙니다만, 사실 자체는 분명히 가릴 수 있지요. 제가 말했듯이 장하준 자신이 주류 경제학의 일반적인 전제를 거부한다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발전(개발)경제학 분야가 다 장하준과 같은 입장을 취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한 듯 합니다.
산마로   10-11-22 23:54
장하준이 주류인지 아닌지가 사실 별로 중요한 건 아닌데, 본인 스스로 현대 경제학 대부분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자신은 다른 방향을 택하겠다는 사람을 비주류라고 부르는 게 틀린 말은 아니지요.

 '과학'적 방법론에서 '과학'은 무엇보다도 '자연과학'의 방법론을 뜻하는 것일테고, 그런 한에서 주류경제학이 택한 광의의 실증주의적 방법만이 과학적 방법론이라고 부르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닙니다. 인간에 관한 학문은 자연과학과 완전히 동일하지 않다고 보는 입장에도 설득력이 있다고 보기는 하지만, 그런 입장에서 말하는 인간학에 관한 방법론은 '과학적'방법론이라고 보통은 부르지 않습니다.
토토로   10-11-22 23:58
산마로/
저는 솔직히 님의 말씀대로, 장하준이 방법론적 개체주의를 거부했는지(1), 또 그렇기 때문에 구제도주의에 속한다고 봐야하는지(2), 잘 모르겠습니다.
1번의 경우, 제3세계의 발전문제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서문이나 연구방법론을 기술하는 부분에서 경제학 일반의 초역사적, 초사회적(제도적 맥락을 떠난) '시장'이나 '개인'에 대한 가정으로부터 출발하는 연구방법을 의문시하곤 하는데, 이는 너무나 흔한 일입니다. 이런 상투적인 문구는 (주류)경제학을 거부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그와같은 관점이 갖고 있는 필연적인 한계를 지적하는 것이라고 보는 게 맞지요.[사실 한계라고 하기도 좀 그렇지요. 연구대상이 다른 것이지요.]
2번의 경우, 합리적 선택 제도주의(신제도주의 경제학)와 관점을 달리한다고 해서, 곧바로 구제도주의라고 할 수는 없는 듯합니다. 단순화된 분류기는 하나 '신제도주의'를 세가지로 분류하는 것으로 압니다. 합리적 선택 제도주의, 그리고 역사적 제도주의(주로 정치학), 사회학적 제도주의(주로 사회학이나 조직이론), 이런 식으로요. 그럼 장하준이라는 학자는 이 세가지 중에 어디에 속한다고 볼 수 있을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기는 하는데, 저는 장하준씨가 쓴 저술을 읽어본 적이 없기도 하고[짧은 논문은 하나 읽어본 적이 있지만], 그보다 별 의미가 없는 듯 합니다.
장하준 교수는 그냥 좌파적 관점에서 '발전경제학'을 전공하고 연구하는 사람이다.. 이거면 충분히 깔끔하지 않나 싶네요.
패서바이   10-11-23 00:22
산마로/
* 방법론적 개체주의라는 답변은 이미 들었습니다. 제가 추가로 여쭤본 것은 (유동성 함정의 예를 통해서) 그것이 합리적 경제인 개념 수준의 협의의 개념이냐 아니면 합리적 경제인의 자율적 선택이 합리적 시장으로 연결된다는 광의적인 것이냐였습니다. 만일 후자라고 생각하시면 그 전제는 이미 케인지언들에 의해 많이 흔들린다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 주류경제학의 배타적이고 보편적인 특질이 아니라는 뜻이죠. 후자의 경우에는 보수주의경제학자-케인지언-비주류 경제학자를 구분짓는 명쾌한 선을 그을 수 없다고 봅니다.

* '주류경제학이 택한 광의의 실증주의적 방법만이 과학적 방법론이라고 부르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닙니다.'에 대체적으로 동의하면서 비주류경제학의 방법론이 본질적으로 비실증적이라는 근거는 무엇인지 궁금해지는군요. 예를 들어,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굉장히 비주류적으로 보이는 분배라는 주제도 선거에서의 선택을 통한 실증적 접근이 가능하지 않나요? 실증적 접근이 쉽지 않다라는 주장은 가능할런지 몰라도 근본적으로 실증적 접근이 어려운 구조적 결함이 내재되어 있다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산마로   10-11-23 09:54
패서바이//

1. 둘다 상관 없습니다. 장하준은 둘다 거부합니다. 또한 케인지언에 대해서 많이 오해하시는데 케인지언 가운데 주류인 뉴케인지언들도 후자의 전제를 수용합니다. 새고전파와의 차이는 정도의 차이에 불과하죠. 그 전제를 수용하지 않을 정도의 케인지언은 소수입니다. 케인지언들이 썼다는 경제학 교과서에 따르면 그렇게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2.  님은 실증과 실증주의 방법론을 같은 것으로 보시는 듯 한데, 물론 실증이 전혀 없는 학문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실증적 방법을 쓴다고 해서 실증주의적 방법론을 택하고 있다고는 볼 수 없는 것이죠. 또한 실증주의 방법론과 방법론적 개체주의는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검증가능한 실체는 개체밖에 없기 때문이죠.
헤게몬   10-11-23 11:57
패서바이/

일반적으로 '합리적 경제인'이라고 하면 신고전학파가 정립한 합리적 선택 이론을 떠올리지 않나요?

아무튼 님이 말한 합리적 경제인이 '합리적 선택'이 아닌 '합리적 기대'를 가진 경제주체들이라고 할지라도 유동성 함정은 비합리적인 행동은 아닙니다. 화폐퇴장의 개념에 대해 아시는 것 보니까 통화주의자 모형도 공부하신 것 같은데, 케인즈 모형에서야 이자율의 화폐수요 탄력성이 무한대가 되는 경우가 드물다 보니 그걸 설명하기 위해 유동성 함정이란 개념을 쓰지만  통화주의자 모형에서는 애초부터 유동성 함정이 특별한 경우가 아닙니다. 예견된 결론일 뿐이죠. 통화주의자의 통화공급 방정식을 생각해보십시오.
패서바이   10-11-23 18:48
헤게몬// 님이 생각하시는 합리적 경제인의 개념이 저와 다소 차이가 있는듯합니다. 저는 (1) 효용 극대화를 추구하는 목적 합리성과 (2) 그 목적을 추구함에 있어서 최대의 효율을 원하는 수단 합리성과 (3) 자신이 얻을 수 있는 최대의 정보 범위 내에서 미래에 대한 합리적 기대를 지닌 경제 주체를 합리적 경제인의 개념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제가 생각해낸 것이 아니고 누군가가 주장한 것을 받아들인 것에 불과합니다)

님이 위의  댓글에서  '거시경제가 전체적으로 불안하여 당장이라도 뱅크런이 속출할 우려가 있는 경제위기 시에는 위험(risk)이 커지므로 채권 보유로 인한 수익의 기대값이 현저하게 떨어지게 됩니다.... '라고 설명했을때 그 설명이 저뿐만 아니라 다수의 사람에게 충분히 '합리적인' 설명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또한 유동성함정에 빠진 경제 주체도 님이 설명하신대로 나름대로의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는 사실도 인정합니다.

제 주장의 요지는 이러합니다. 제가 위에서 언급한 (1), (2), (3)을 갖춘 합리적 경제인에게는 '위험', '기대' 등의 개념이 화폐수요곡선의 모양을 결정할만큼 영향력이 없다는 점입니다. 통화주의자들이 화폐에 대한 투기적 수요를 대단치 않게 보았다는 점은 경제주체들이 (1), (2), (3)의 준거하에 행동하리라고 기대한 결과입니다. 따라서 케인즈의 유동성 함정은 경제 주체의 (1),(2),(3)에서 벗어난 어떤 속성 (그가 '통물적 충동'이라고 표현했던)이 발현한 결과이고, 이는 주류경제학으로 분류되는 케인지언의 주장들도 비주류경제학의 주장들과 마찬가지로 합리적 경제인이라는 전제에서 어느 정도 이탈한 이론이라는 제 주장으로 이어집니다.

즉, 님 말씀인 '유동성 함정은 비합리적인 행동은 아닙니다'에서의 '합리'란 주류경제학과 비주류경제학을 구분 짓는 전제로서의 '합리'와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 제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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