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글을 보면서 한가지 흥미로운 글이 있었습니다. 다름 아닌 종부세 관련 법해석이었습니다. 댓글을 보니 법관련 공부를 하신 분도 계신것 같기도 한데, 사실상 종래의 해석론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당혹감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런 느낌 속에서 제 나름대로 기존의 해석론에 대한 설명을 덧붙여 볼까 합니다.
1. 제 36조 1항 해석
[①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
헌법 제 36조 1항은 이렇게 규정되어 있습니다. 자세한 법리론을 설명하기 보다는 쉽게 풀어서 설명하려고 합니다.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한다는 말의 뜻 중 "개인의 존엄" 즉 헌법이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최우선적으로 보장하듯이 결혼제도에서도 그것을 보장한다는 뜻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여기서 개인의 존엄이라는 것은 개인의 불가침성을 의미함과 동시에 개인이 스스로의 자유의지에 따라서 자신의 책임에 의하여 결혼생활을 하고 결혼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구절은 결혼의 자유의 보장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와 관련 동성애자의 결혼보장 문제가 제기되기도 합니다.
양성의 평등은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입니다. 예컨데 호주제등 남성만이 자격을 갖춘다던가 하는 불평등한 가족제도는 인정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국가가 이를 보장한다는 것의 의미는 두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한가지는 결혼관계의 성립,유지에 있어서 개인의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과 유지, 해체의 보장과 가족제도의 불평등성의 해소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자유의지에 의한 양성평등적인 결혼제도가 헌법적 가치임을 천명하는 것이며 다른 제도나 가치에 비해 좀 더 "특별한" 보호를 받는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두번째는 이와 같은 해석론상의 연장선상에서 국가는 결혼제도의 유지에 관하여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고 이를 보장하는데 특별한 노력을 해야 하므로 자연스럽게 그 보호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른 가치와 비교하여 불평등한 조치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소극적 의미를 가집니다.
적극적인 조치를 통해 보호해야하는 가치임을 헌법이 천명하고 있으므로 다른제도에 비해서 불평등한 조치를 허용한다면 이는 우선적 가치임을 천명하는 헌법 규정에도 반할 뿐 아니라 적극적 조치의무가 인정되는데 불평등할 처우를 하지 말것을 의미하는 소극적 의무가 해석론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은 서로 합치되는 않는 것이며, 우대조치는 하지만 불평등하게는 할 수도 있다는 이상한 논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위와 같은 해석은 일반적인 헌법해석론으로 받아들여져 있는 것이고 우리와 당해 헌법규정이 가장 유사한 독일연방헌법재판소의 입장이고(BVerfGE 6, 55) (BVerfGE 18, 97[104 ff.]) 일반적 독일의 해석론과 우리 판례의 입장이기도 합니다. 헌법재판소가 제36조 1항의 목적과 취지를 종부세를 위헌판정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왜곡했다는 말은 헌재의 해석론이 일반적으로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태였다면 몰라도, 한국 학계와 한국 법실무계 그리고 규정이 유사한 독일의 판례와 학계도 거의 동일한 해석론을 하는 것을 판단해 보면 근거없는 이야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본인이 관련 전문분야의 해석론을 몰랐기 때문에 목적과 취지를 왜곡했다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미국판례와 일본판례의 합헌을 예를 드시는 분도 있는데, 그 나라들은 우리하고 헌법이 다르지요. 미국은 혼인의 자유를 보장합니다. 결혼이나 가족제도에 대한 국가적인 보장 조문이 없습니다.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혼인의 양성의 합의와 상호협력에 의하여 유지되어야 한다."입니다. 국가에 의한 보장규정이 있는 독일,한국과 그것이 없는 미국,일본과의 사례는 현격히 다릅니다.
2. 독신자와 가족간의 차별, 가족과 가족간의 차별 문제. 누진세율 비례세
이창희 교수가 부부합산이든 누진세율,비례세는 국회가 알아서 할 일이라 했다고 들었습니다. 저도 관련학회에서도 보고 수업도 들어봤는데 그 부분에 관해서는 기존 논의와 맞물리지 않고 우리 헌법규정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창희 교수의 주장은 과세단위를 부부로 하든 개인으로 하든 어느 정도의 불평등은 있을 수 밖에 없으며 그런 가치충돌은 국회에서 할 일이고 헌재가 할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일단 일반론 자체로도 납득하기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헌법재판은 기본적으로 가치충돌을 다루고 법익교량을 주임무로 하고 있습니다. 국방의 의무와 양심의 자유라는 두 헌법적 가치가 충동할 때 구체적인 사안에서 법익교량을 합니다. 가치충돌이니까 국회에서 하라는 말은 헌법재판을 부인하는 말이지요.
두번째로 과세단위를 부부로 하든지 개인으로 하든지 그게 헌법적 가치의 충돌인가? 헌법 제 36조는 분명한 헌법조항으로 명시적으로 보호되는 헌법적 가치이지요, 이걸 부인하는 사람은 적어도 학계와 실무계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가족이 불평등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소극적 의무도 인정됩니다. 헌법 11조의 평등조항이 있지만 그것은 일반적 평등조항이고 특정한 것을 보호할 때는 일반적 평등보다 훨씬 강한 보호를 받습니다. 이는 11조 단서에 신분,성별등등에 관한 차별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강한 보호를 받는 것과 마찬가지이죠. 11조가 일반조항이라면 제 36조는 평등권에 관한 특별조항이라고 해석됩니다. 헌법이 특별한 보호를 천명하고 그 해석론에서 차별금지의무가 도출된다면 이 영역에 관해서는 좀 더 높은 의무를 부과했다고 해석되기 때문이지요. 입법자가 혼인한 부부에게 적극적 조치를 취할지 말지는 재정상황등 당해 상황에 따라서 결정할 일이지만 최소한으로 해야 하는 것은 적어도 그들에게 불리한 조치를 취하지 말라는 겁니다. 이게 헌법적 가치예요.
그런데 과세단위를 개인으로 하는지 가족으로 하는지는 과연 헌법적 원칙이자 가치인가? 조세의 공평을 이야기할 때는 11조가 원용됩니다, 일반원칙이지요. 이 원칙에서 도출되는 헌법적 가치는 무엇인가? 수직적 공평과 수평적 공평입니다. 이 자체로는 무슨 과세단위를 어찌해야 될지 헌법이 말하고 있는 바가 없습니다. 담세능력의 원칙에 따라서 동일한 소득이 있는 인간은 동일하게 과세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데 여기서 과세단위를 뭘로 할지는 아무것도 말해주는 것이 없습니다.
부부를 차별하지 말 것은 엄연한 헌법원칙입니다. 근데 과세단위를 어찌 결정할지는 헌법원칙이 아니예요, 그냥 재량사항에 불과합니다. 무슨 과세단위를 결정하는게 동일한 가치내에서 입법재량에 그치는 것이는 양 말하는 이교수의 태도는 그가 세법학 교수인지 그래서인지 몰라도 헌법과 합치되지 않습니다. 하나는 헌법원칙이고 다른 하나는 아닙니다. 설령 헌법원칙이라고 해도 특별규정과 일반규정에 해당되서 부부차별이 더 강하게 보호받지요.
독신자와 가족간의 차별은 헌법상 강도높은 심사기준을 요구받는 차별입니다. 특별하게 보호받는 가치이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엄격심사를 합니다. 그런데 과세단위를 결정할 때 가족과 가족간의 불평등이 있고 그런것은 상당한 재량권의 범위내에 들어가지요. 갑자기 그것이 특별히 보호되어야 할 헌법원칙이 되지 않습니다. 서로 보호가치가 전혀 다르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또 하나에 관련하여 누진이든 비례든 국회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하는데 어느 나라도 과세권을 헌법심사에 두지 않는 나라가 없습니다. 부진정소급입법이 왜 문제가 되나요? 법치주의의 한 내용으로서 신뢰보호의 원칙이 있고 그걸 구체적으로 표현한 건데 그게 무슨 문제가 될 일이 없습니다.그리고 부진정소급입법이라고 하더라도 헌재는 세법의 경우 정책목적에 따라서 수시로 변경될 수 있으므로 신뢰이익의 보호가치성을 크게 높게 판단하고 있지 않습니다.
3.조세관련 심사와 관련해서.
조세와 형벌이 같지 않다는 언급도 있었습니다. 물론 조세와 형벌은 같지 않지요. 그런데 문제는 조세를 거두면 재산권에 반드시 피해가 가게 되어 있습니다. 형벌과 같이 개인의 권리에 직접적인 피해를 입힌다는 것이지요. 당연히 보다 높은 정당화가 필요합니다. 조세가 뭐예요? 반대급부없이 일방적으로 징수해가는 공과금이잖아요? 내가 내 능력으로 벌어들인 재산을 타인이 가져감에 있어서는 높은 수준의 정당화가 필요합니다. 그 구체적인 심사기준이 조세법률주의입니다. 이게 무슨 역사적 연원이 없다, 사실 그런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조세법률주의의 내용은 법치주의의 내용과 거의 중복됩니다. 특별할 것도 없는 내용들입니다.
국가가 개인에게 부담을 줄 때 특히 개인의 권리와 관련한 부담을 줄 때는 당연히 정당화되어야 한다는게 헌법원칙입니다. 직접적으로 과세권과 관련하여 입법형성의 재량을 최대한 보장해야 된다는 인식은 사실상 현대국가에서는 시민적, 자유주의적 국가와는 달리 조세의 부담이 많은 것을 감안하면 현실과 상당히 괴리되어 있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세법 제,개정이 매우 빈번하고 일반인이 알기 어려운 내용도 많습니다, 법률이 많고 그것도 직접적으로 권리를 침해하는 내용인 것들이 많아서 당연히 조세관련해서 문제가 많이 발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분야를 헌법심사에서 제외하겠다고 하는 주장은 헌법재판에서 사실상 재산권 보호에 대한 많은 부분을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과 다름이 없습니다. 근데 과세권이 침해적인 공권력 행사임을 볼 때 특별히 과세권에 그러한 특권을 줘야하는지 그래야만 하는 이유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독일에 조세법률주의라는 말은 없지만 심사기준은 우리하고 유사합니다. 기본적으로 재정조달목적의 조세에 관해서는 응능부담의 원칙을 기준으로 심사합니다, 그리고 종부세와 같은 유도적 조정적 기능의 조세에 관해서는 응능부담의 원칙과 유도적 조정적 기능으로 인한 관계 기본권 심사의 비례원칙심사를 합니다. 토초세의 경우 우리 헌재도 응능부담의 원칙에 의한 심사를 하고 있고 96헌바64 이런걸 보면 유도조정적인 성격을 가지면 그걸 확인하고 그 성격에 의해서 억압받는 자유를 제한하는지 비례성 심사를 합니다. 크게 다른 심사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조세에 우리와는 다른 엄청나게 완화된 심사를 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과세권의 일반적인 한계, 절반배분의 법칙등 과세권을 제한하려는 시도는 엄청나게 많이 다뤄지고 있고 판결도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사회권같은 경우 재원이 필요하고 언제 어느 시기에 어떤 형태로 누구에게 공급할지는 헌법재판소가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서 누구에게 얼마를 어떤 형태로 줄까하는 것을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헌법재판소가 사회적 합의를 모으는 기관이 아닌바에야 적극적으로 결정할 수는 없지요. 당연합니다. 헌재가 그런것까지 판단할 수 없지요. 다만 최소한의 조치라는 것 아예 방기하는 수준에까지 이른다면 그건 안된다, 그런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과세권은 재산권에 직접적인 침해를 가져오죠. 아무리 재량이 있어도 엄격심사할 수 밖에 없지요. 사회적 합의에 의해서 구체적인 급부의 내용을 결정하는 사회권과 직접적으로 재산권에 침해를 가져오는 과세권의 심사기준을 당연히 동일하게 놓고 볼 수 없습니다. 당연히 과세권 부분에 까탈스러울 수 밖에요.
ex)과세권의 일반적 한계를 일반적 행동 자유권의 대한 제한의 기준으로서 엄격기준에 의한다는 판례(BVerfG, 2 BvR 2194/99 vomㅡ 18. 1. 2006),절반배분의 원칙을 도출한 판례(BVerfGE 93, 121)
4.헌법 제 35조의 해석론과 관련한 문제점.
[제35조 <환경권, 주택개발정책>
③ 국가는 주택개발정책 등을 통하여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헌법 제 35조는 이런 규정으로 되어 있습니다. 동조에서 주택에 대해서 특별한 국가의 의무를 부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연 이것이 서민들을 위한 주택개발정책의 방향성을 제시한 것에 불과한 것인가?
주택에 관한 특별한 헌법적 이유는 간단히 말하면 이렇습니다. 주택과 같은 거주지는 가족과 개인이 그의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곳이며, 개인의 삶의 터전이므로 그것이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중추적인 장소이며 개인이 자유를 보장하므로 내밀한 사생활과 개인의 인격을 실현하는 경제적 기초가 되는 장소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한 의미에서의 주택의 중요성은 그 사람이 서민이건 부자이건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종부세에서 1세대 1주택이 문제가 된 것이 바로 이러한 맥락입니다. 주택의 거기에 기거하는 가족과 개인의 인격권실현과 불가결한 관계를 맺고 있으므로 1세대 1주택의 경우는 그 사람이 부자이건 뭐건 관계없이 이 권리에 의하여 보호를 받는다는 것이지요. 동 규정이 유독 서민을 위한 개발의무를 근거지우는 규정이라는 주장은 35조의 해석론의 근거인 주택과 인격권발현의 불가분성의 관점에서 볼 때 높은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 아닙니다.
헌법재판관의 상상력이 궁금하다는 언급도 있었는데 이는 우리 헌법재판관만이 아닙니다. 독일에서도 동일한 규정은 아니지만 동일한 근거에서 1가구 1주택의 높은 보호가치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BVertfGE 93, 121{140f.})"가족이 거주하는 주택(FamilienHauser)이라는 재산은 납세의무자와 그 가족의 인격실현에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경제적 기초를 의미하므로 특별한 보호를 받는다"고 판시합니다. 무슨 헌법재판관의 망상과 상상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삶의 터전이자 그가 삶을 계획하고 자율적 판단에 의하여 삶을 영위해 나갈 경제적 기초인 기거주택에 대해서 보호를 해 주겠다는 것이지요. 36조 이것을 적극적 의미로 본다면 소극적 의미도 인정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서민에게는 공공주택의 보급등 적극적인 조치를 하는 것을 명하면서 소득은 그리 높지 않지만 오래 살다가 집값 오른 놈은 그게 경제적 기초가 되든 어쨌든 상관없이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그런 해석은 36조를 뒷받침하는 해석적 근거하여 판단하여 볼 때 상당히 무모한 해석입니다. 집을 하나 사서 가만히 잘 살고 있으면서 집값이 올랐는데 갑자기 있지도 않던 중과세를 만들어서 부과하여 소득능력과는 전혀 상관없이 돈내라, 못내면 이사가라고 하는게 쾌적한 주거생활을 보장할 국가의 의무와 합치될 수 있는지 좀 더 깊은 탐구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헌재의 기준은 일관됩니다. 재정조달 목적의 경우 응능부담원칙의 기준에 의해서 심사하고, 헌법에 어떤 가치가 특별보호가 받고 있는지 판단해서 심사합니다. 유도조정적 조세의 경우 관련 기본권 제한심사까지 합니다. 조세에 의한 개입조치는 당해 사항영역을 규제하는 경제조정적 처분과 실질적으로 전혀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종부세의 경우 장기간 거주한 1세대 1주택자의 경우에는 본인의 담세능력과 상관없이 세금이 부과되어 이사를 가게될 수 밖에 없을 경우에는 해석상 근거에 의하여 뒷받침되는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권리가 침해가 되고 이 경우 관련 기본권 심사에 나아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창희 교수 저서를 여러군데 인용하시던데 제가 보니 종부세 정당화되기 어렵다고 교과서에 써놨더군요. 세법학의 관점에서 말이죠.
"종부세는 몇 가지 생각할 점이 있다. 우선 임차보증금이나 저당권부 채무등 빚을 빼주지 않은 채 부동산의 가액을 합하는 것이 공평한가라는 점이 생긴다. 현행법 하에서는 빚이 있는 사람이라면 실제 형편에 비해 세부담이 매우 높을 수 있다. 한결 근본적 문제로 재산보유에 수직적 공평을 들어오자는 이념에 터잡은 종부세는, 재산보유세와 지방공공재는 부동산 가격의 등락이라는 가격기구를 통해 대가관계에 선다는 시장원리에 어긋날 수 있다. 사는 곳에 따라 주민이 누리는 공공재의 차이를 완전히 상쇄하여 부동산의 가격을 균등히 하기 위해서는 공공재공급이 많은 지역의 주민은 적은 지역의 주민보다 많은 세금을 부담해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한다면 부동산의 가치를 기준으로 본다면 공공재공급이 많은 지역의 주미니 더 높은 세부담을 진다는 겉모습을 띠게 됭 부동산의 가치를 기준으로 한 세부담의 공평이라는 입법취지와 어긋나 법률적 형식논리로는 정당화하기 어려운 세제가 된다. 이 모순을 피하자면 공공ㅈ공급이 많은 지역의 세부담은 공공재의 차이를 완전히 상쇄할 수 있는 수준보다는 적게 할 수 밖에 없고, 그렇담ㄴ 종부세를 들여오더라도 현재 공공재의 공급이 많고 부동산가격이 비싼 일부 지역 주민이 누리는 이득은 상당부분 그대로 남아 부동산 가격에 반영될 것이다. 결국, 부 그 자체를 과세물건으로 삼아 부 자체에 수직적 공평이라는 잣대를 재자면, 다른 재산은 무시하고 부동산에만 세금을 물리는 것은 정당화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