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기획강좌에서 김진만 선생님의 '과학적 회의주의란 무엇인가' 강연 원고본입니다.
본 원고에서, 김선생님은 첫번째 장에서 과학적 회의주의를 개괄해주셨고, 두번째 장에서 한의학을 포함한 대체의학 문제를 다뤄주셨습니다.
강연 파워포인트 자료와 아래한글 자료, PDF 자료는 앞으로 차차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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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회의주의란 무엇인가?
김진만(rathinker)
1. ‘과학적 회의주의(Scientific Skepticism)’의 개요와 최근의 동향
아주 오래전 그리스에는 철학적 회의주의(Philosophical Skepticism)가 있었습니다. 그 회의주의는 독단주의(Dogmatism)와 반대 개념이며, 모든 것 혹은 최소한 특정 분야에 대해서 절대적으로 확실한 지식을 얻을 수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과학적 회의주의는 이와는 달리 개연성이 충분하면 믿을 수 있다거나, 신뢰할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과학적 회의주의자들은 대개 증거를 우선적으로 살펴보며, 쉽게 속아넘어가지 않습니다. 반대로 철학적 회의주의자들이야말로 오히려 과학적 증거가 아니라 철학적 사고에 기초를 두기 때문에 많은 실수를 하며, 특히 고대의 회의주의자 섹투스 엠피리쿠스(Sextus Empiricus)는 일부 동물들이 수정되지 않아도 자식을 낳을 수 있으며, 어떤 동물들은 불이나, 발효된 와인, 진흙 등에서 생길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과학적 회의주의는 이런 고대의 회의주의 철학과 전혀 무관한 것은 아니지만, 가장 큰 차이는 개연성(probablity)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절대적인 지식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해서 불안해하지 않으며, 그러한 지식을 추구하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현실의 과학적 회의주의자들은 기존의 과학에서 널리 받아들여지는 상식에서 크게 벗어난, 양립할 수 없는 이론에 대해서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이를 신중히 비판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철학적 회의주의와는 달리, 과학적 회의주의는 무슨 철학사조라기 보다는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skepticism is not a position; skepticism is an approach to claims.) 그것도 아주 특이한 방법론도 아니고 단순히 신중한 사람들이라는 정도의 입장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회의주의자이기때문에 초능력 같은 것은 안 믿는다”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흔히 들을 수는 있지만 사실은 옳은 말이 아닙니다. 회의주의자들은 어떤 주장을 의심스럽다고 생각하고 검토하고 나서 안믿는 것이지 회의주의자라고 해서 안믿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고대의 회의론 학파는 피론주의자(Pyrrhonist)[1]와 아카데미아파로 나뉘는데, 아카데미아파는 창립자 플라톤의 형이상학적 독단론을 부정하고, 개연성을 옹호했습니다. 절대적인 논리에 기초한 진리추구만이 아니라 개연성에 기초한 진리추구도 가능한 것이며, 또 후자가 인생의 중요한 일에 있어서 유익하다는 관점을 가졌으며, 이 사고방식이야말로 17세기의 근대과학의 진보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데카르트와 대륙합리주의자(Continental Rationalists)를 필두로 하는 학파는 수학(해석기하학과 산술)에 기여했으나, 물리학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으며, 한편 왕립협회와 영국 경험론자들(British Empiricists)이 취한 입장인 개연론자(Probabilist)라는 입장이 근대적인 경험과학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을 시사합니다. 특히 이점은 근대과학이 기계론적 세계관이라는 주장에 대해서 적절한 반론도 될 수 있습니다.
철학자 중에서 과학적 회의주의자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데이비드 흄(David Hume)으로, 그것은 <기적에 관하여(Of Miracles)>라는 그의 저서에서 잘 드러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담긴 소논문에서 흄은 기적이라는 것은 우리의 모든 경험과 반하는 것이므로 과연 믿을만한 현실적인 가치가 있는지 의문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기적은 자연 법칙의 위반이다. 단단하고 바뀔 수 없는 경험들이 이러한 자연법칙을 성립시켰다. 사실(fact)의 본질을 생각한다면, 기적에 반대되는 증거들이란 경험으로부터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주장이다.”
회의주의자의 가장 좁은 의미는 흔히 초자연 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 UFO, 초능력, 오컬트현상에 대한 신중한 태도와 함께 적극적으로 사기꾼들을 폭로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오늘날의 회의주의자들이 주로 자신이 회의주의자라고 드러내는 분야가 사이비과학에 대한 비평 분야인 것도 사실이긴 합니다.
과학적 회의주의 운동 초기에는 사이비과학에 대해서 매우 적대적인 분위기였으나, 물론 최근에도 그런 분위기가 기본적으로 지속되기는 하지만, 이상한 사고와 주장이 인지적인 오류와 같은 인간의 본질적인 면, 생리적인 면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과학적 회의주의자들은 사이비과학을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좀 더 따뜻한 시선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근래 과학적 회의주의자들 사이에서는 인간의 인지적인 오류를 이해하기 위한 인지과학 분야의 저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 사이비 과학의 유행
사이비 과학의 역사는 사실 오래된 것이고 오히려 현대과학의 역사가 매우 짧습니다. 또한 이러한 사이비 과학은 하나의 분야가 아니라 많은 분야가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단순히 역사를 서술하는 것보다는 당시의 분위기를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현대과학은 엄밀한 의미에서는 과학혁명이 일어난 직후부터가 제대로 된 과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학자이면서도 영성주의자(spiritualist)인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전통은 특히 영국에서 볼 수 있는데 그 결과로 1882년, SPR(Society for Psychical Research)이라는 단체가 만들어졌습니다. 이 단체는 런던에서 결성되었으며 주로 과학적으로 영성주의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당시 유행했던 많은 영성주의에 대해서 연구하고 자료를 발표하기는 했지만, 후에 자료의 상당부분이 틀린 것으로 드러나고 또 믿었던 영매가 사기꾼인 것으로 드러나는 등 여러 스캔들로 인하여 결국 지지부진한 단체가 되었습니다. 미국내에서도 비슷한 단체가 있었지만 이 단체는 별로 활동이 없이 해체되었습니다.
듀크 대학에서는 라인(Joseph Banks Rhine)이 이미 1920년대부터 ESP와 기타 초능력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사용한 제너 카드는 아직도 초능력 프로그램에서 널리 보이고 있습니다.
그 이후에 사람들이 신화와 고대사에 대해서 지식이 늘어나면서 벨리코프스키(Immanuel Velikovsky)의 <충돌하는 우주(Worlds in Collision)>(1950) 등의 서적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이 책은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저명한 칼 세이건(Carl Sagan)[2]조차도 후에 자신의 저서인 <코스모스(Cosmos)>에서 많은 비평을 가했던, 당시로서는 꽤 유명한 책이었습니다. 이 책이 나온 후 얼마 되지 않은 1955년 고클랭(Michel Gauquelin)이라는 유명한 프랑스 학자는 화성효과(Mars Effect)에 대한 서적을 출판했습니다. 그 내용은 점성술이 대부분 틀리지만, 몇몇 조건에서는 점성술이 맞다는 것이었습니다. 코클랭의 주장에 사실상 가장 격렬하게 반대한 사람들은 코클랭에 의해 기존의 점성술이 대부분 틀리다는 것이 폭로되어버린 점성술사들이었다고 합니다.
잠시 1950년대를 생각해보면, 1945년에 히로시마에서 원자폭탄이 터지고 나서 많은 사람들이 과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시기입니다. 자료에 의하면 1900년대초만 하더라도 미국에서 물리학 박사가 일년에 10명도 나오지 않았으나, 1950년대가 되면 수백명으로 증가합니다. 이렇게 과학자 자체가 엄청나게 증가하게 되고 사회적 분위기도 당시 추리소설보다 SF 소설이 더 유행하게 되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이 시기에 많은 사람들은 좀 더 센세이셔널하고 참신하고 자극적인 것들을 찾아다녔습니다. 1947년에 처음으로 UFO 목격담이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했고, 1950년에 벨리코프스키의 저서 <충돌하는 우주>가 나왔고, 그 외에도 신지학, 인지학 등의 오컬트 서적들이 널리 팔리기 시작합니다. 물론 이러한 서적은 과학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사이비과학을 옹호하는 것입니다. 특히 벨리코프스키의 책은 구약의 주장이 천문학적으로 맞다는 엉터리 주장이었는데, 당시 미국이 진화론을 가르치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엄청나게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유럽에도 전파되어, 1960년에 프랑스에서 당시로서는 엄청난 인기를 얻었던 책 <마술사의 새벽(Le Matin des Magiciens)>(1960)이 발간되고 곧 이어서 독일계 스위스인이었던 에리히 폰 데니켄(Erich von Daniken)의 <신들의 전차?(Chariots of the Gods?)>가 발간되어 6천만부나 팔리는 진기록을 세웁니다.
그 이후에도 사이비 과학은 과학계의 반론에도 불구하고 그 흐름이 계속 이어져, 스탠퍼드 연구소의 해롤드 푸토프(Harold Puthoff)와 러셀 타그(Russell Targ)가 유리겔러에 대한 연구 결과(1974)[3]를 발표하였고, 호노톤(Charles Honorton)의 간즈펠트 실험(ganzfeld experiment)[4] 등 사이비 과학에 대한 리스트는 계속 끊이지를 않고 있습니다.
회의주의의 역사
저는 과학적 회의주의를 다룰 때 마틴 가드너(Martin Gardner)[5]의 <과학이라는 이름하의 유행과 오류들(Fad and Fallacies in the name of Science)>이라는 책 이전과 이후로 나눕니다. 그 이전에도 여러 사람들이 활동했지만 그들은 모두 개인적인 활동을 하면서 당시의 잘못된 지식을 계몽하려고 했습니다. 마틴 가드너 이전의 가장 유명한 사람은 앞서 말씀드렸던 철학자인 데이비드 흄(David Hume)으로 그는 '기적에 관하여'라는 철학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 논문은 현재까지도 회의주의 논문으로는 가장 훌륭한 것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 외에 과학자로는 마이클 패러데이(Michael Faraday), 마술사로는 후디니(Harry Hudini)가 이 시기의 가장 대표적인 회의주의자입니다.
마틴 가드너는 우리에게는 <이야기 패러독스>와 같은 수학 관련 책의 저자로 사실 더 유명합니다만, 사이비 과학과 같은 비이성적인 주장에 대한 철저하고 다양하고 체계적인 반론을 펼친 사람입니다. 그의 저서 <Fad and Fallacies in the name of Science>라는 책은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실수와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를 많은 사례를 통하여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사실 이 책은 지금 읽어도 매우 재미있는 책입니다.
그 이후로 회의주의의 총본산처럼 여겨지는 ‘초정상주장조사위원회(Committee for the Scientific Investigation of Claims of the Paranormal, 이하 CSICOP)’가 설립되기까지는 크게 두 사람이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우선 폴 커츠(Paul Kurtz)[6]는 고클랭의 화성효과가 발표되는 것을 계기로 회의주의 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진지한 과학자들과 더불어 고클랭의 화성효과에 대해서 반대를 하게 되는데, 특히 고클랭의 화성효과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이 연구가 실제 과학적인 방법론을 사용하고 유명한 통계학자에 의해서 주장된 것으로, 호소력에 있어서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성격의 주장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975년에 폴 커츠는 당시 자신이 편집인으로 있던 <The Humanist>라는 잡지에 고클랭의 주장을 반대하는 18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포함하여 186명의 선언을 받아서 '점성술에 반대하는 선언(Objections to Astrology: A Statement by 186 Leading Scientists)'이라는 성명서와(<The Humanist> 35(5):4-6), 점성술에 반대하는 논문을 2편 실었는데, 그 중 한 편이 고클랭의 주장을 반대하는 제롬(Lawrence E. Jerome)의 'Astrology - Magic or Science' 이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다음해에 회의주의자들은 하나의 단체로 모이기 위하여 CSICOP 을 결성했고, 또한 고클랭과의 기나긴 화성효과 논쟁이 시작되었습니다.
한편 이보다 앞서 마르셀로 트루지(Marcello Truzzi)는 1972년에 <Explorations>이라는 조그만 뉴스레터를 만들었고, 1974년에 <the Zetetic>으로 이름을 변경합니다. 이 잡지가 CSICOP의 기관지가 되면서 트루지는 CSICOP의 공동 창립자이며 편집장을 맡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 잡지에 초과학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글을 실어야 하고, 그에 해당하는 연구 결과도 실어주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CSICOP 위원회에서 받아들이지 않자 CSICOP을 탈퇴하게 되고 편집장이 켄드릭 프래지어(Kendrick Frazier)로 바뀌면서 잡지의 이름도 <스켑티컬 인콰이어러(Skeptical Inquirer)> 로 변경되어 오늘에 이르게 됩니다. 트루지는 사이비과학의 속임수는 매우 잘 알면서도 초능력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회의주의자 사전(Skeptic's Dictionary)>의 저자인 로버트 캐롤(Robert T. Carroll)은 트루지를 회의주의자 중에서 피론주의자라고 생각합니다. 이와는 별도의 사건으로 화성효과 문제가 발생했는데, 초기의 회의주의자는 고클랭이 자료를 잘못 처리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반박했으나, 실제로 자료 처리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 드러나면서, 오히려 이 문제를 다루는 방법론의 차이로 CSICOP 의 편집위원회가 양분되어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이 두 사건을 제외하고는 CSICOP 은 매우 훌륭한 조직으로 현재까지 사이비 과학과 관련된 많은 연구를 발표하고 일반인들이 비평적 사고를 할 수 있는 많은 정보의 원천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메이징 랜디(Amazing Randi)라고 알려진 마술사 제임스 랜디(James Randi)[7] 역시 유명한 회의주의자입니다. 이 사람도 역시 CSICOP의 창립멤버이며, 특히 유리 겔러의 속임수를 지적해 내기도 하고 영성주의자들이 속임수를 사용하는 것을 폭로하기도 했으며, 알파 프로젝트라고 하여, 초능력을 연구하는 연구소에 마술사를 보내서 그들이 쉽게 속는다는 것까지도 증명해 냈습니다. 그는 초능력이 없다고는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진짜 초능력을 보여준다면 100만불을 제공한다는 100만불의 도전을 공식적으로 제안한 상태이며, 이 도전의 연장으로 국내 SBS TV '도전! 100만달러 초능력자를 찾아라' 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로 1992년에, 마이클 셔머(Michael Shermer)[8]가 ‘스켑틱스 소사이어티(Skeptics Society)’라는 조직을 결성하고 <스켑틱(Skeptic)>이라는 잡지를 출간하면서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이 사람은 특히 강연활동과 저술활동으로 유명하며, <사이언티픽 아메리칸(Scientific American)>에 회의주의 컬럼을 싣고 있는 저명한 저술가입니다. 마이클 셔머는 특이하게도 자기 자신이 회의주의자가 된 날을 1983년 8월 6일 토요일이라고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언급하고자 하는 사람은 바로 ‘회의주의자의 사전(
http://www.skepdic.com )'을 운영하는 로버트 캐롤
[9]입니다. 초기 <Skeptical Inquirer>의 글들은 저작권 문제로 번역이 불가능했으나, 이 사이트는 다행히 저(김진만)에게 번역을 허가해서 국내 회의주의 운동을 가능하게 한 사람입니다. 실제로도 ‘회의주의자의 사전’은 회의주의자들 사이에게서는 가장 정리가 잘되어 있는 사이트로 과학적 회의주의자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참고문헌이 되고 있는 대표적인 사이트입니다. 이 사이트는 1994년부터 유지되었기 때문에 회의주의자의 역사로만 본다면 캐롤은 가장 나중에 활동을 시작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 과학적 회의주의 각 분야별 대표 인물
창조론
회의주의 논쟁에서 한 축은 분명 창조론 논쟁입니다. 이것은 창조론자들이 미국의 과학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 노력을 하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논쟁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진화론 논쟁은 과학사에서 중요하겠지만, 서양에서 일어난 것이라서 우리나라와 동양에서 과소평가되기는 합니다. 사실 동양에서는 진화론 논쟁이 거의 없었고, 상대적으로 진화론을 너무 쉽게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서 서양인들이 많이 놀랐다고 합니다.[10] 진화론자중에는 리차드 도킨스(Richard Dawkins)[11]와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12]가 대표적인데, 이 두 사람은 종교에 대한 입장이 약간 다르며 리차드 도킨스는 무신론자(atheist)이고 굴드는 아마도 불가지론자(agnosticist)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진화론 논쟁하면 통상 도킨스와 굴드 두 사람을 떠올리는데, 미국에서 진화론 논쟁의 핵심은 기실 Talk.Origins (
http://www.talkorigins.org)이라는 usenet의 뉴스 그룹입니다. 진화론 부분은 다른 부분과는 달리 과학자들이 적극적으로 비평해온 분야이고 Talk.Origins에서 많은 사람들이 활동했습니다. 또한 다른 분야와는 달리 충분하고 많은 자료가 축적되어 있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의학/심리학
의학분야에 있어서는 쿼크워치(QuackWatch
[13],
http://www.quackwatch.org)의 운영자인 스티븐 배렛(Stephen Barrett, M.D.)
[14] 이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배리 바이어슈타인(Barry L. Beyerstein, Ph.D)도 대체의학의 잘못된 자료 분석에 대해서 지적하고 있으며, ‘탐파 베이 스켑틱스(Tampa Bay Skeptics)’의 창립자인 게리 포스너(Gary P. Posner, M.D.) 역시 유명한 회의주의자입니다. 워낙 스티븐 배렛의 사이트가 독보적이라서 다른 사람들의 활동이 묻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약간 다른 분야인 심리학(Cognitive Science)은 상당히 많은 회의주의자들이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람은 다니엘 쉑터(Daniel L. Schacter), 토마스 길로비치(Thomas Gilovich), 엘리자베스 로프터스(Elizabeth F. Loftus) 등이라 할 수 있고[15], 마이클 셔머(Michael Shermer),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16] 등도 활약하고 있습니다.
UFO/초자연현상
UFO 와 점성술에 대한 연구에 있어서는 많은 사람이 있겠지만, 칼 세이건(Carl Sagan)과 필립 클랙스(Philip Klass)가 가장 유명합니다. 초자연 현상(Paranormal)쪽 연구로는 물론 마틴 가드너도 역시 유명하지만 이 사람을 제외한다면 조 니켈(Joe Nickell)이 가장 유명합니다. 이 사람은 원래 법의학자였습니다.
초능력/영성주의/포스트모더니즘 등등
초능력에 대한 연구는 대부분이 속임수였기 때문에 마술사들이 이러한 속임수를 잘 밝혀냅니다. 그런 의미에서 후디니 역시 마술사로도 당대에 영성주의자들이 얼마나 쉽게 사람을 속이는가에 대해서 <Miracle Mongers and their Methods>(1920)라는 책에서 자세히 밝힌바가 있으며, 그 다음으로 특히 유리겔러의 트릭을 밝혀낸 마술사 제임스 랜디가 가장 유명합니다.
그 외 수학자들이나 통계학자 혹은 사회학자들이 회의주의 운동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래이 하이만(Ray Hyman)이 초기부터 열심히 참여했으며, 통계학뿐만 아니라 콜드리딩(cold reading)[17]에 대한 자세한 분석을 했습니다. 그 외 수학자로는 존 앨런 파울로스(John Allen Paulos)[18]가 있는데 이 사람은 국내에도 책이 많이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 사람은 회의주의 글보다는 교양수학쪽의 글로 유명합니다.
물리학자인 스티븐 와인버그(Steven Weinberg)[19]나 리차드 파인만(Richard Feynman)[20]도 잘 알려진 과학적 회의주의자입니다. 스티븐 와인버그는 리차드 도킨스와 더불어 무신론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철학자 중에는 대니얼 데넷(Daniel Dennette)[21]이 유명합니다. 데넷은 '브라이트 운동(Bright Movement)'[22]이라는 자연주의 철학 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기도 합니다. 앨런 소칼(Alan Sokal)[23] 역시 ‘소칼의 사기사건(Sokal's Hoax)’ 이후로 과학적 회의주의자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다. 국내의 과학적 회의주의 운동의 역사
우리나라의 회의주의 운동은 그 역사가 매우 짧고 또한 활동도 미미한 편입니다. 우선 가장 오래된 회의주의자라고 생각되는 분은 경희대학교 김상준 교수로 이 분은 미국에서 제임스 랜디와 친분이 있었을 정도로 사이비 초능력자들의 트릭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외에 부산대학교의 조환규 교수[24] 역시 회의주의 운동과 내용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시며 여러 가지 활동을 하셨습니다. 서강대학교 이덕환 교수[25]도, 비록 본격적으로 회의주의자를 표방하신 것은 아니지만 사이비과학 비판과 관련 많은 비평을 남기셨고 지금도 정력적으로 비평 작업을 하고 계십니다. 부산대학교 김진범 교수[26]는 특히 수돗물 불소화 문제와 관련하여 많은 학술적 업적과 비평을 남기셨고 또 관련 여러 사업과 운동을 하고 계십니다.
우리나라에서 시민 자생적으로 본격적으로 회의주의 운동이 시작된 계기는 PC통신이 발달하면서 초기에 천리안과 하이텔을 중심으로 한 논쟁과정을 통해서였는데, 천리안의 창조론/진화론 논쟁의 결과 CSS(Chollian Skeptics Society) 라는 단체가 만들어져서 1998~2000년 사이에 활동이 있었으나, 여러가지 여건상 해체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인터넷에 강건일 박사가 운영하는 ‘의사과학문제연구소(
http://www.kopsa.or.kr)’와 CSS의 운영자였던 제가 운영하는 ‘합리주의자의 道(
http://www.rathinker.co.kr)’가 만들어졌으며 그 이후로 관련된 여러 카페가 만들어졌다가 사라지거나 활동이 거의 없어지는 상태로 남아있고, 최근에는 스켑티컬레프트닷컴(
http://www.skepticalleft.com)이 만들어져서 회의주의자들이 일부 활동하고 있습니다.
라. 과학적 회의주의 관련 잡지
회의주의 관련 잡지는 앞서 언급했듯이 CSICOP(현재는 Committee for Skeptical Inquiry 로 개명. 줄여서 CSI 라고 부름,
http://www.csicop.org)에서 발간하며, 가장 학술적이면서도 내용도 풍부한 <Skeptical Inquirer>와 마이클 셔머가 좀 더 대중적으로 만든 잡지인 <Skeptic>(
http://www.skeptic.com)이 있습니다.
그 외에는 회의주의 관련 잡지는 아니지만, 세속적 인본주의(Secular Humanism)[27] 관련 잡지로 <Free Inquiry>가 있습니다. 이 잡지는 Paul Kurtz 가 창립한 ‘세속적 인본주의 회의(Council for Secular Humanism)’ 에서 발행하는 잡지로 주로 시사, 정치, 철학과 윤리학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건 문제 전반을 다루고 있지만 대체의학, 사이비의학쪽 비평도 간간이 하고 있는 <On Health>라는 잡지가 있습니다. 이 잡지는 Consumer Reports에서 펴내는 월간지로 매우 정확한 내용을 담고 있어 스티븐 배렛도 적극 추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