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유명한 분자생물학자인 조나단 싱어의 저서입니다. 바로 <자연과학자의 인문학적 이성 죽이기(The splendid feast of reason)>.
책 제목만 보면 무척 도발적이고, 그래서 Alan Sokal의 <지적사기(Fashionable nonsense)>의 속편이라도 될 것 같지만 딱히 인문학자들을 공박하는 내용은 들어있지는 않아요. 그냥 현대의 과학적 합리성을 설명하고 찬미하는게 주입니다. 그래도 어쨌든 읽어볼만한 책인 것은 분명하지요.
이 책 초반 싱어 자신의 정치적, 사회적 신념을 밝히는 부분, 그리고 합리주의자의 7가지 원칙을 설명하는 부분을 소개합니다. 그가 밝히는 합리주의자(Skeptic, Bright, Rationalist, Modernist)의 원칙은 SkepticalLeft.com 이 지향하는 바가 모두 담겨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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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을 선택할지 말지 고민 중인 독자들에게 나의 정치적, 사회적 신념을 알려주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나의 견해와 주장을 접한 독자들중 일부는 그러한 신념에 대해 심각하게 의문을 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나는 젊은 시절부터 줄곧 중도좌파이자 뉴딜 진보주의를 표방하는 민주주의자였다. 그래서 현재 미국의 정치적 배경에서 보면 나는 열성적인 진보주의자처럼 보인다. 내가 이해하고 있는 '진보주의자'라는 개념은 모든 인간 존재의 생득권에 대해 입에 발린 소리를 지껄이는 대신 진정으로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으며, 사회의 주된 목적이 '최대 다수의 최대 선'이어야 한다는 견해를 고수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렇다고 단순히 사회의 다수가 선호한다고 해서 비합리적인 신념을 과학적 발견과 동등하게 받아들인다는 의미는 아니다. 대중은 진실을 제대로 알 기회가 없으니 그릇된 판단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반드시 편협한 태도라고만은 할 수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제부터 분명하게 드러나겠지만 내가 확신하고 있는 사실 가운데 상당수가 비정통적이다.
이를테면 어떠한 종교도 우리의 존재를 보장해주지 못한다거나, 지능을 포함한 개인의 행동을 결정짓는 주된 요인이 유전자라는 점이나, 자유 시장 자본주의가 인류 문화의 완결된 성취가 아니라거나, 미국에서 가난은 개인이 스스로 초래한 범죄가 아니라는 주장이 그렇다.
따라서 나는 사회 대다수의 눈에는 개선의 여지가 없고 잠재적으로 위험하다고 할 수 있는 이단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단호한 합리주의자이며, 정치적으로는 진보주의자이고, 확고한 무신론자이자 유전자결정론의 지지자이며 경제적으로 프롤레타리아이다. 독자들은 그 점을 감안하고 이 책을 읽는 것이 좋을 것이다.
2.
모든 사람들이 합리적 요소와 비합리적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지만 두 요소가 균형을 이루는 양상은 각 개인마다 다르다. 나는 자신의 삶을 운영하고 행동하는 데 있어서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보여 주는 것보다 훨씬 높은 비율의 합리성을 가진 사람을 합리주의자라고 부를 것을 제안한다. 우리 시대의 합리주의자들은 행동과 삶에 있어서 다음의 7가지 특징을 보인다.
첫째, 합리주의자는 의식적으로 이성과 합리성을 삶의 등불로 삼는다. 그리고 환상이나 타협, 주관성은 최대한 배제하고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용기와 능력을 가지고 있다.
둘째, 합리주의자는 지식을 높이 평가하고, 특히 과학적 지식에 최고의 가치를 둔다. 합리주의자는 기본적으로 과학적 소양을 갖춰야 하지만 그렇다고 전문적인 과학자만이 합리주의자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과학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합리주의자가 아니다. 그들이 합리성을 좁은 범위의 직업적 관심을 추구하는 데에만 사용하고 삶의 다른 부분, 이를테면 종교에 적용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합리주의자가 아니다.
셋째, 합리주의자는 어떤 결과에 이르더라도 진실을 추구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들의 견해가 대중의 전통적 지혜와 충돌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합리주의자는 자신의 의견이 소수의 의견이 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실제로 많은 경우에 합리주의자들은 기꺼이 소수의 위치에 선다.
넷째, 합리주의자는 합리성을 그들 삶의 특별한 부분에만 가두어 두지 않고 삶의 모든 측면으로 확산시키고자 노력한다.
다섯째, 이 문제에 대해서는 물론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생물학적 진화론과 인류학에서 얻은 지식을 숙지하고 있는 현대의 합리주의자라면 더 이상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은 물론이며 어떤 기존 종교의 교의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합리주의자들의 눈에 전통적인 종교는 비합리성의 정수로 보일뿐이다.
여섯째, 합리주의자는 위선과는 타협의 여지가 없다. 위선은 많은 비합리주의자들에 있어 최초이자 최후의 피난처이기도 하다. 비유컨대 우리 사회의 합리주의자들은 마치 벌거벗은 임금님 우화에 나오는 순진한 소년과 같다. 왕이 벌거벗었으면 말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바로 합리주의자다.
일곱째, 합리주의자는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합리주의자는 무분별한 신념에 몸을 맡기는 사람이 아니다. 합리주의자는 실용주의자이다. 합리주의자는 인간이 만든 모든 제도와 관습(종교, 정치, 경제 등)은 영원하지 않다는 역사의 중요한 교훈을 잊지 않는다. 제도란 때가 되면 생겨나서 번성하다가도 시대와 조건이 바뀌면 결국 소멸하게 된다. 어떤 제도가 겉으로 요란하게 승리의 함성을 질러댈 때 속으로는 이미 쇠퇴기에 접어든지 오래인 경우가 많다. 합리주의자는 항상 어떤 사상이나 제도든 가리지 않고 파고들어가 엄밀하게 따지고 조사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 사상과 제도가 사회 대다수에 의해 신성불가침으로 여겨지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