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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자본의 시뮬라크르 - "촛불"은 면책특권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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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 THESE
Date : 08-09-20 12:37
Hit : 3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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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 URL : http://www.skepticalleft.com/bbs/tb.php/01_main_square/37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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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메르세데스 벤츠와 적절 대기형님.(둘의 이미지를 상상해 보십시오.)
모든 용역과 서비스는 가격이 존재하는 상품입니다. 사상과 철학도 더 높은 가격을 유지하고 싶어합니다. 연예인이나 정치인들은 당연하고 어떤 개인이나 단체도 자기고액의 '가치판단'을 원하는 이기적 존재입니다. 거대한 두 이기심이 있었습니다. 자본주의와 반자본주의입니다.
2. 자본주의 - 돈
냉전시대의 거대담론의 한축인 공산주의의 본향인 구소련은 파산했습니다. 치열하게 생존한 승자인 자본주의체제에 거주하는 대한민국의 反자본은 이제는 사라진 아련한 옛 애인을 그리워하며, 유럽복지주의를 짝사랑 합니다. 대한민국의 反자본은 유럽의 복지가 수백년간에 걸친 식민지 착취/약탈자본 위에 성립됨을 잊거나 외면해서는 안됩니다. 복지사회는 재정문제이고 효율문제입니다. 돈이 어디서 나냐 이겁니다.
3. 미친자본병. 쇠고기와 촛불의 충돌. 충돌한 가치/신뢰 그리고 효율.
최근 좌파와 우파는 각각 자본을 대변하는 쇠고기, 반자본의 상징인 촛불로 충돌했습니다. 反자본과 복지의 둘이 힘을 합쳐 이룬 자본의 가격추락성공을 전복시킨 것은 과학이었습니다. 평소 주류자본과 근친해온 과학이 반격을 가한 겁니다. 反자본은 과학이 밉습니다. 과학에 밀려났던 소외받던 종교와 신비주의도 과학이 밉습니다. 종교적 신비주의와 결탁한 反자본은 反과학주의 혹은 환원주의타도를 외치며, "미친 자본고기"가 퍼질 가능성이 있으니 반대한다, 안 먹는다 합니다.
4. 다른 층위에 존재하는 과학주의와 반과학주의.
反자본, 反과학주의자들은 말하기를 [영국처럼 광우병의 재현확산가능성]이 있기에 미친 미국자본고기를 수입은 반대이며, 미친자본고기는 먹지 않겠다입니다. [광우병/OUT]이란 反자본에 대한 사랑한다는 고백에 PD수첩의 거짓말이 약간 좀 포함되었다 하더라도, 사랑을 전하기 위한 목적상 효율로 보아 별문제없음이, 층위가 다르다는 反자본과 反과학의 주장입니다.
5. 영국인간광우병확산의 개연성은 없다는 과학적 논리와 반론의 충돌.
가능성이란 현실에 존재않는 종교적 환상, 신비주의를 포함합니다. 가능성이 0%를 포함하지만, 반면 개연성은 0보다 큰 존재하는 실제 확률만을 말합니다. 광우병의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거짓은 아니겠지만, 그러나 그것이 현실적용되거나 국제간 계약적용될 때에는 [영국인간광우병의 대한민국 재현의 개연성은 없다]가 "참"입니다. 일반적 보편적 국제 사회내에서 현실에 적용되는 오늘날 보다 가치있는 과학적 판단과 결정은 어쩌면 상상에서나 있을 법한 신비주의의 낭비를 차단함으로써 효율을 극대화하는 주류 거대담론입니다. [영국인간광우병의 재현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함은, X-file을 신봉하는 자들의 [외계인의 지구침략가능성]과 동등합니다. 존재하지 않는 [가능성]에 근거하여 외계인을 대비코자하는데, 논리적 "참"을 실행한 무고한 과학과 자본에게 환원주의란 주홍글씨를 새긴 후 마녀사냥을 해도 면책이라 합니다. 反자본의 촛불논리는 등위가 다른 고차원의 '사랑한다'는 목적성취를 위해서는 거짓동원도 무죄의 가능성이 있으며, 폭력도 면책될 가능성이 있다합니다.
6. 反자본의 비뚤어진 이기심.
역사로 사라진 거대담론인 구 소련국 사상의 빈자리에 결국 비과학과 신비주의를 동원해서라도 빼앗긴 영역을 회복하겠다 하지만, 죽을까봐 뛰쳐나온 미친 소(=자본)반대를 외치는 서울시내를 점령한 촛불에서 드러난 결과는 성장반대/교육의료의 대못빼기 반대/공기업과 공무노조축소반대 등은 결국 자신들의 철밥통을 지키고자 하는 이기심입니다. 구호는 결국 反자본, 反자유주의입니다. 그러나 보편적 세계시민은 사기보도한 PD수첩에게 면책특권을 부여하지 않았습니다. 거짓으로라도 사랑한다 고백하고 속여 하룻밤 잠자거나 혼인신고만 하면 땡이라 믿던 삐뚤어진 "나쁜" 애인과 거짓으로 사랑한다 해도 결혼해서 애낳고 잘만 살면 되니까 그 정도쯤은 상관없다는 "나쁜" 공모자들에게도 유죄(소액의 벌금형)선고하게 되겠지요. 자본을 비난했던 것에 정비례하여 "反자본도 크게 다를 바없는 이기심의 존재임을 스스로 표징"했음이며 멋진 구호 밑의 폭력과 거짓이 면책일 수는 없습니다. 이 경우 가능성은 실재하는 사실이 아닙니다. 이기심의 反자본 反과학 지식인의 인터넷거짓과 PD수첩을 믿은 가여운 일반인의 피해만 늘어남을 결과합니다.
7. " 손 " .. 이기심게임 룰의 Designer.
고유가 시대에 경유비 지원을 늘려 달라던 화물차주와 고용인들이 국가세금인 경유지원비 수백억을 허위착복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오늘날 아담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란 내쉬균형, Mechanism Design과 같습니다. 롤스가 말한 공동체 자유주의가 대한민국의 서민을 타락시켜서는 안됩니다. '보이지 않는 복지균형을 이룰 게임의 룰' 도입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공무원도 투명하게 선진기업경쟁을 도입후 가치평가하고, 기존 노조, 공공성, 복지권력도 특혜를 배제하고 시장경제란 자본주의적 공익성을 살려 경쟁해야 합니다. 작은 손일 수록 더 더욱 善하며, 작은 손의 자율을 살려야 善은 실현됩니다. 그 작은 손을 살리려는 제도정책을 국회/행정/법원이란 큰 손이 해야 합니다.
8. 불변의 시대난제 - 빵나누어 먹기.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고 신의 세상이었던 우주의 절대고아문명 인류가 神대신 과학을 섬기는 세상이 되기까지는 코페르니쿠스, 다윈, 프로이드, 유전자와 뇌과학 등의 시대를 바꾼 과학혁신이 있었습니다. CERN에서는 '힉스'물질을 존재유무를 찾아 빅뱅과 우주를 재현하는 도전을 감행합니다. 진보주장자들은 인간을 진보하지 못했습니다. 인간에게 화장실, 전구, 페니실린이 없다 상상해 보십시오. 인간은 이를 발명발견해 낸 노력들과 우주와 인간의 근본을 더 깊이 탐구하는 과정에서, 인간존엄과 품위완성이라는 진보적 가치를 더 잘 이루어 냈습니다. 우리세계는 자본 vs. 反자본이 경쟁합니다. 우리 세계는 뇌과학/유전진화론의 과학이 본래의 실체보다 실체를 더 잘 반영하는 시뮬라크르의 세계 즉, 일원론적 체계입니다.
과학의 경쟁상대는 과학입니다. 과학은 때로 학문의 본래 형태보다 그것의 실체를 더 잘 시뮬라크르합니다. 우리가 사는 일원론의 세계에서 빵나누어 먹기에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노무현과 386좌파 vs. 현 이명박정부, 反자본 vs. 자본이 상호 가격경쟁하며 "시장경제라는 공공善"을 확대하기 위해 작은 손의 정직한 무한경쟁 과학혁신으로 효율을 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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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British invisibles'와 아담 스미스의 'invisible hand'에서 공통된 "보이지 않는"이란 말은 정말 지구인들을 헷갈리게(말 그대로, 분간이 되질 않게) 만듭니다. 보이지 않는 것의 '신비한' 이미지가 어느새 '음흉하고 두려운' 이미지로 전락해버리고 마네요.
http://en.wikipedia.org/wiki/International_Financial_Services%2C_London_%28IFSL%29
2. 아담 스미스 평전이 최초로 출간되었다고 하네요. 스미스를 왜곡하는 '보이지 않은 세력'들에 대한 고발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군요.
"스미스의 평전으로는 국내에서 처음 출간된 '애덤 스미스, 경제학의 탄생'(청림출판 펴냄)은 '보이지 않는 손'에 갇혀 있는 화석화된 스미스의 진짜 모습을 복원하기 위해 스미스의 출생부터 죽음까지 그의 일생을 따라나선다.
영국의 소설가이자 비평가인 제임스 버컨은 경제학자로서의 스미스 외에 '도덕감정론'을 쓴 도덕철학자로서, 대학교수로서, 대학총장으로서 애덤 스미스의 행보를 고스란히 소개하면서 국부론을 쓰기까지 스미스의 사상이 어떻게 형성되고 발전해 왔는지를 분석한다.
책을 쓰기 위해 25년간 스미스에 대한 조사연구를 수행한 저자는 스미스가 평생 동안 인간의 이타성에 관한 연구를 계속했고 이를 통해 사회와의 유대관계, 도덕성에 관한 철학을 정립했으며 국부론도 이러한 연구의 산물이었다고 설명한다.
'국부론'은 개인의 이기심을 강조하고 경제적 효율성을 옹호한 책으로만 비치고 있지만 사실은 평범한 대다수의 복지에 대한 식견과 도덕성 없는 부자, 시장에 대한 그의 경계가 함께 담겨있다고 이야기한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2211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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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녁 |
08-09-20 14: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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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장에 가서 물건을 팔고, 또 그 물건을 사는 행위는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인가?
그런가요? 되도록 많은 사람에게(때로는 머릿수로는 많지 않은 소수의 사람들에게) 유용한 좋은 물건을 만들어 파는 '장인 정신'은 자본주의와 어울리지 않는 것인가요?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최대의 이윤을 남기는 '합리적인 인간형'이야말로 자본주의가 상정하는(그 보이지 않는 神같은 존재가 계획한) 인간형인가요?
이 사이트조차도 우리가 이야기하는 시장원리가 아닌 非시장적인 법칙에 의해서 운용되는 것 같은데요. 시장은 물론 시장의 할애비도 모르는 시장 外적인 [사회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존재하고, 그 힘은 대단하다고 평가합니다. 자발적인 참여, 봉사활동, 기부, 선행, 동정심, 감시가 필요없는 규칙 준수..... 이런 원동력에 정치적인 권력과 더불어 경제적인 권력(≠돈)까지 선사하는 시스템이 개발되기를 바라네요. Mechanism Design으로 가능하다면 얼마든지 기대하고 기꺼이 지켜보고 싶네요.
2. 이녁 / 촛불집회는 反자본주의 운동이 되었어야 합니다. 일부 시위 참가자의 다함께에 대한 공격은 오해와 나름의 독선을 갖고 있었던 분들의 잘못된 행동이었습니다.
아래 링크된 글의 다함께 비판은 마치 이런 비판과 다름 없습니다.
"목사들이 사람들을 일요일마다 불러내어 예배를 보게 하는 것은 노동계층에게 휴식의 시간을 주지 않고 고사시키는 짓이다."
운동권 상호간 정치선전도 필요한 것입니다. 오히려 그게 부족했기 때문에 맨날 웃기지도 않는 뒷담화 정파싸움을 했던 것이죠. 한참을 NL쪽에 있다가 PD로 '전향'한 사람에게는 다함께와 같은 정파들의 선전이 오히려 아쉬웠던 것입니다.
反자본주의라는 용어는 다함께 뿐만 아니라 노동조합이나 세계NGO들이 많이들 외치는 "또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Another World is Possible!)는 구호를 의미한다고 봅니다. 트로츠키주의자들인 그들이 애써 '사회주의'라는 용어를 접고 '반자본주의'라는 한꺼풀 벗겨진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들의 합리적인 '대중노선'이겠지요.
아무튼, 저는 촛불시위가 "Another World is Possible!"라는 구호의 차원에서 반자본주의 운동이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어느 정도는 그런 경향을 갖췄고, 그런 운동에 대한 공감대 확산도 있었습니다. 정말 '쁘락치' 소리 듣기도 했던 전의경 예비역들 사이에서도 가벼운 주제로나마 비정규직을 이야기하고 민영화를 이야기했습니다.
세계 경제체제의 재편에 있어 권력기구나 다름 없는 WTO, IMF, IBRD, UN의 각종 산하기구에 민중(노동자, 소비자, 환경권의 주체, 미래세대)의 실질적인 참여는 배제된 채 오로지 금융자본을 필두로 하는 자본계층의 이해관계만 대변하는 자들(이 중에는 영화 '식코'의 감독인 마이클 무어와 이름이 같은 자도 있습니다.)이 "독재"나 다름 없는 권력운용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시대에 글로벌 민주주의가 실현되려면 일국적 차원에서 근대식 선거제도만 갖춰놓고 교만을 부리면 안될 것입니다.
촛불 집회에 노사모가 참여했다고 해서 집회 참여자들이 모두 노빠가 되는 게 아닌 것처럼, 반자본주의 구호를 내건 사람들이 참여했다고 촛불집회가 반자본주의 집회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실질적인 참여자들의 상당수는 "어나더 월드"를 바라며 시위에 참여했다고 봅니다. 반신자유주의라는 구호에는 시위 참여자 상당수가 포함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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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잡아들이고 기소하고 그러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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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ket/
1. 이녁님의 '다함께'조직 및 IS 비판에 일정부분 동의함과 동시에 인터내셔널 감정을 드러내시는 부분에 약간 놀라고 있습니다.
2. 이기심 맞아요. 인간목적은 생존입니다. 생존이란 존재 연속성에서 이기심은 자연발생입니다. 시장에서 물건을 주고파는 사람은 모두 이기심을 충족하는 과정을 통하는 겁니다. 개인만의 노하우로 다량생산 효율생산품을 [교환]합니다. 상호의 이기심을 충족시키기에 분업이 효율적입니다. 장인이 만든 명품은 '독특한, 희귀한' 이기심의 희소성의 가치를 가진 상품입니다.
모든 재화와 용역은 상품이고, 인간 이기심의 균형점에서 가격형성됩니다. 모든 인터넷 사이트는 시장원리에 의해 운영됩니다. 여기에 글을 남기시고 읽는 분들은 최소한 스스로를 매우 존중하시는 자기愛원칙을 지키시는 분들입니다. 그러한 자기愛라는 용역을 "기꺼이" 이곳에 투자, '글' 판매하시는 분들이고, 화면에 스크롤되는 이 서비스를 읽는 분들은 매우 값어치 있는 명품 '글'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하신 겁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되어 사회적 값어치로 환원되는 제도화와 법률, 판단, 여론형성에 특정 단어 1개만이라도 동의되고 기여하게 되는 과정을 기꺼이 거칩니다. ... 모든 인간교환은 시장원리에 의합니다. 복지자본이 형성되려해도, 시장경제라는 공공善이 성장함이 우선입니다. 他者에게 我者의 상품을 파는 보이지 않는 손의 '시장가격' 형성된 이기심이 공공善을 이룬다는 것을 부인하면 인간존재자체를 부정함입니다.
시장없이 어찌 인간이 생존합니까? 적절가격의 이기심은 인간의 사회본능입니다. 사회주의(반자본)가 그 가격을 [보이는 손]으로 만들어간다는, 시장경제를 왜곡하는 반자본 좌파 권력획득자의 지적 자만심이 오히려 더 크게 인간사회를 망치는 겁니다. 이타심이라는 타인배려는 '언제인가 저 사람의 불이익이 나에게 올지도 모른다'는 미래에 손해를 보지않기 위한 이기적 배려중 하나입니다. 이타심과 이기심 둘 다 인간목적, 즉 생존을 목적합니다. 문제는 '가격'입니다.
이녁/
촛불의 참여민주주의 가치를 폄훼하지 않습니다. 너무도 소중한 생명의 가치는 인간존엄의 기본입니다. 한미FTA의 조속체결을 위해 이명박이 생명가치를 무시하고 한미쇠고기협상을 무리하게 했다는 비난의 시각은, 상기한 바와 같이 현실에서 실체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위협이 지나치게 과장되었다 보아도 무리가 없고, 행정수반의 권력연속성을 부정함이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 중 하나이기는 하나, 다만 그가 국헌준수의무를 불이행한 사실이 없음이라는 이유가 더 참작되기에 [反이명박 '촛불'](PD수첩의 허위보도)은 인용하기 어렵다입니다.
오히려 집회자유로서 정당하다면 [反자본 촛불]입니다. 조심스러운 제한된 영역에서의 촛불의 책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좌파가 '시장경제'의 가치를 살릴 수록 시장경제가 가진 공익성이 살아 날것일 텐데요. 복지자본을 늘리기 위한 시장자본을 성장시킴이 효율적으로 '촛불'이 희망하는 자유와 인권이 더 커진다는 것이 테제의 판단입니다.
민주당에서 감세정책이 1%부자만을 위한 정책이라 반대한다면서 양극화를 고착시키려는 것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복지자본은 성장된 경제의 필연적 결과일 뿐, 성장정책을 배제한 복지권력의 비대화나 깡통복지, 공짜복지는 '돈'이 없어서 연속될 수 없지요. 식민지약탈이라는 사회자본을 바탕으로한 유럽복지를 대한민국이 흉내내면 경제공멸이며, 안봐도 비디오 입니다.
작은 정부, 감세와 더불어 정밀한 규제로 '시장경제'라는 공공善을 확대하면서 가족복원에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Design 정책으로 복지자본을 확충하고, 개인의 실질 복지를 늘리는 것이 살 길입니다.
voulez/
'다함께'라는 점조직은 무책임하며 시장파괴, 사회파괴를 결과합니다. 유모차시위대 주동자를 잡아들인다는 안타까운 기사를 보았습니다. 권력은 자기 스스로 연속성을 가지려면 민심이 원하는 선량한 시위는 보호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고, 무자비한 악덕한 법집행은 아닌 최소한의 제한을 구하는 방향으로 갈겁니다.
PD수첩이 언론자유를 주장한다면, 무한자유가 아닌, 최소한의 도덕성은 가져야함에 동의해야, PD수첩을 시민들이 동정하고 선량한 언론이 정부에 의한 또 다른 더 큰 악덕, 즉 권력비리척결을 주장해도 환영할 겁니다. 마찬가지로 소위 전문가라는 분들 중 인터넷에서 최초로 영국인간광우병의 위험을 말하면서, 현실에서의 개연성이 존재하지 않는 非과학적 '가능성'이란 이름으로 스촨성 대지진과 같은 공포를 대량생산공급한 분들은 지식인으로서의 최소한의 사죄라도 해야 옳습니다.
이번 광우병 사태에서 지식인들이 시민들에게 사과하지 않으면, 향후 학생들은 물론 시민들이 전문지식인의 말에 귀기울이면서도, 무책임한 전문가들에게 또 속을 지 모른다는 "불신사회"를 양산해 낼 것은 불 보듯 환합니다. 지식인의 글은 자신의 양심에 의지하면서도 타인에 대한 피해가 발생했다면 책임지는 도덕성을 가지지 못한다면 자멸합니다. 특히 인터넷에서의 非과학 非지식의 폐혜는 이번 유모차시위대에서 보았 듯 그 결과가 너무도 무자비합니다. 선량한 참여민주주의의 근간을 훼손하지 않으려면 미래의 민주주의에 신뢰할 수 있도록 우선 전문가들의 사죄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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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위가 반자본주의 시위였던가요. 제가 보기엔 노빠들의 마지막 승부수에 일부 좌파 애들이 이 때다 하고서 숟가락 얹으려다 욕만 실컷 처먹은 격 같습니다. 다함께에서 나온 애들 시위장에서 거의 또라이 취급 받았다고 하던데요. 이번 시위를 두고 노빠들은 대의민주주의의 축복이라고 하고 한겨레나 경향은 10대의 재발견이라고 생쇼질을 하고 좌파애들은 어설프게 드디더 대한민국에 심겨진 반자본주의 맹아라고 들이미는 걸 보면서 이 사기극이 어떤 결론으로 끝날지 고대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이번 사태는 황우석과 심형래와 거의 유사한 매커니즘으로 돌아간 사건일 뿐입니다. 민주당이 촛불에 적극적으로 안 끼어든게 다행인겁니다. 그랬다면 두고두고 부메랑이 되었을 겁니다.
그리고 까놓고 말해서 좌파 애들이나 혹은 전직운동권 아저씨들의 7080쇼가 있을 때마다 촛불의 지지도는 오히려 내려갔죠. 전대협 아저씨들이 철없이 깃발들고 나와서 반응이 좋았던가 싶네요. 하다못해 당장 인터넷 게시판만 검색해봐도 시위장에 좌파들이나 운동권 단체가 온다고 하면 반응이 어땠는지 살펴보는게 타당하지 않을까 싶네요.
뭐 우파인 저로서는 촛불 시위장에서마저 사회주의자들이 대놓고 듣보잡 취급 받은게 기쁘긴 합니다만. 전 촛불시위를 지켜보면서 이 사회에서 좌파가 (한나라당이 말하는 좌파 말고) 일부 강단의 PMS상태의 지식인들이나 인터넷의 키보드 워리어를 제외하면 5%도 안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나저나 THESE님이 정말 적확한 말씀을 하셨네요. 유럽복지가 그야 말로 수탈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좌파들이 죽어도 부정하는 것을 보면 정말이지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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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봉 |
08-09-22 13: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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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제님 글에 대부분 동의하는데, 한 가지 동의하기에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유럽복지국가가 수탈이 기여한 바를 부정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주된 이유라고 보긴 어려운것이,
1.수탈을 가장 많이 한 스페인, 포르투갈이 수탈에 참여하지 않은 그리스와 소득이 비슷하다
2.수탈에 참여하지 않은 스위스 오스트리아 벨리에 룩셈부르크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등도 선진 복지국가이다(스위스는 현대에 금융 수탈을 했다고도 볼 수는 있겠군요)
3.수탈을 많이 한 영국도 한 때에 2류국가로 떨어졌다가 대처가 살렸다.
오히려 과학기술 지식 사회에 먼저 진입한 덕분이라고 봐야죠. 그리고 지나친 복지 지향은 지속적 선진복지에 위협이 되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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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들이 "유럽복지가 그야말로 수탈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죽어도 부정한다는 사실은 어떤 걸 보고 알 수 있나요? 그런 주제에 대한 논쟁이 있었나요?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40080821222353
유럽복지에 식민지 수탈로부터 얻어진 경제성장의 토대라는 것이 기여한 바가 있기는 하겠지만, 그것은 식민지 배상과 (과거 식민지였던) 제3세계에 대한 지원과 부채탕감, 공정무역 등의 문제를 어찌 해결할 것인지의 논의로 이어지면 족한 것이지, 유럽 복지체제를 무너뜨리는 것으로 결말을 내자는 것도 아니고, 대체 뭔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인지?
식민지를 거느린 경력이 없으면 복지국가는 꿈도 꾸지 마라? 동아시아 국가들이 놀라운 성장을 한 것도 다 어디 가서 식민지 수탈을 한 까닭인가요? 하긴 '내부 식민지'인 노동자 계층을 착취하고 수탈하였다고 볼 수는 있겠죠.
더군다나 식민지 수탈로 이룬 것 중에 많은 부분은 '전쟁'으로 태워먹고 폐허 위에서 다시 시작한 국가들에서도 복지 시스템이 작동하게 된 것은 대체 왜 입니까?
서구의 경제발전(복지를 떠받드는 경제토대도 포함하여)에 기여한 것이라면 적어도 '戰前의 식민수탈'만큼은, 아니 그 이상을 '戰後의 半식민 수탈'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보는데,
/ 또한 복지는 단순히 경제성장만 이뤘다고 합의되고 실행되는 게 아니라, 좌파정권이 장기 집권을 하거나 전쟁이 벌어져 (참전용사였던)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에서 가능한 것이죠.
"소외계층의 능동적 참여를 요구하는 전쟁 상황"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6008091623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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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함께가 욕먹었던 것은 처음에 '확성기'를 들었던 그 단체 회원이 "위험해지면" 사라진다는 것 때문이었죠. 그래서 프락치 소리까지 들었던 것이죠. 나중에 일반 대중에게는 생소한 트로츠키주의 단체로 알려지면서 이질감을 느낀 사람들도 있었겠죠.
그러나 그런 비난의 목소리도 인터넷에서 잠깐 존재했을 뿐, 시위 내내 다함께는 자기 깃발 당당하게 들고 다녔고, 그 단체가 나눠준 유인물과 손피켓은 수많은 사람들이 들고 다녔습니다.
"이명박 OUT!"이란 구호도 원래 다함께의 '작품'입니다.
시위에서 사회주의자들이 정말 듣보잡 취급 받았는지, 그렇지 않고 박수갈채를 받았는지, 서울 안가본 사람이 더 잘 아나 봅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11541.html
테제 / "이타심이라는 타인배려는 '언제인가 저 사람의 불이익이 나에게 올지도 모른다'는 미래에 손해를 보지않기 위한 이기적 배려중 하나입니다."
이 말에 어쩌면 전적으로 동의할 수도 있는데, 그 뒤에 이어진 결론은 전혀 동의하지 않습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웬 가격이 나옵니까?
이타심도 이기심 만큼이나 사람의 '본능'입니다. 개인주의만큼이나 공동체를 생각하는 마음도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시장주의자들은 이런 걸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은폐하죠.
그러다 평생 일해 받은 퇴직금으로 낸 가맹사업자들의 가맹금 털어 먹는 프랜차이즈 사기꾼들의 '이기심'까지도 옹호하고 맙니다. 비극이죠. 도박과 투기나 다름없는 파생상품 시장에서 각 개인의 이기심은 대체 무슨 역할을 했나요?
이기심 중에 선하다고 평가되는 것은 용인될 수 있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이기심은 단호히 배격해야 합니다. 양자의 구별을 하지 않는 시장주의자들은 세상을 논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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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ket님의 "이타심도 이기심 만큼이나 사람의 '본능'입니다." 이 말 공감합니다.
아담 스미스가 말한 이기심과 보이지 않는 손은 모두 "인간 내부에 있는 공정한 관찰자(양심, 도덕심)"가 우리를 경우에 맞게 행동하도록 만들거라는 전제에서 한 말입니다. 적절한 제도가 마련됐을때 이기심이 사회에 긍정적일수 있다는 주장이었죠.
적절한 제도가 마련되지 못했을 때, 인간내부의 공정한 관찰자(양심, 도덕성)가 존재하지 않을 때,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제 기능을 담당하지 못합니다.
아담 스미스를 제 입맛에 맞게 왜곡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먼저 Skeptical한 사고를 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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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봉 |
08-09-23 10: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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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ket/
유럽 복지는 식민주의의 결과는 아니지만 유럽이 개인의 이기심을 폭넓게 허용한, 즉 개인의 정치적, 경제적 자유를 최대한 허용한 것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복지가 먼저가 아니고 생산과 자본축적이 먼저 이뤄져야 만이 복지가 가능한 것입니다.
이기심의 충족 없이는 이타심은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이기심보다 이타심을 강요한 결과가 어떤 지를 신정국가, 공산주의, 도덕정치에서 잘 볼 수 있었습니다.
이타주의는 이기적 시장주의에서 나오는 것이지 이타주의적 사상이나 제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프랜차이즈 기업체의 일부 부작용으로 전체를 도덕적 파탄자로 몰아가는 행태는 도덕정치적 사고로서 결코 이타적인 결과를 가져오지 못합니다.
과도한 이기심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이 정당하지도 않을 뿐더러 과도한 이기심이 시장주의에서 성공 보다는 실패를 가져오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시장주의는 자신과 상대를 모두 만족 시켜야 성공하는 것이지 자신만 만족하는 것은 시장주의가 아니며, 다시 말하면 시장주의는 이타주의, 이기주의 모두를 말하는 것입니다.
파생상품 파탄은 자신의 이익과 타인의 이익의 균형점을 잘못 판단하여 착각한 결과이며, 시장의 보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앞으로는 적절한 균형점을 찾을 것입니다.
이기주의적인 시장에서도 도덕적 경영이 중시되는 이유는 자신만의 이익추구가 파탄을 가져온다는 경험 때문이며, 이기심과 이타심의 균형이 지속적인 성공을 보장하기 때문입니다.
지속적인 복지는 이기적인 시장주의자들의 노력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지, 반시장주의나 이타주의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테제님 하신 말씀과 같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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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봉, picket [복지]/
유럽복지국가는 1. 교육투자의 인프라 2. 지식산업화를 견인한 교육인프라 구축 3. 교육자본과 복지자본 축적에 기여한 유럽주변국들간의 교역 및 식민지 착취 등의 선행조건을 가집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 http://www.welfarestate.net/ 라는 단체가 주장하는 복지는 유럽찬양 일색이며 세금을 더 올려 사회인프라를 가지자고 합니다. 노무현은 유시민 복지부 장관을 통해 박아 둔 복지대못은 빼기 힘들다고 합니다. 위의 단체와 유시민 등은 커넥션의 유추가 쉽게 가능하지요. 유럽복지 짝퉁짓 맞습니다.
약탈과 착취는 근대화 이전의 당연한 물자조달 방식이었습니다. 유럽복지국가들의 사회적 기반은 약탈과 착취가 맞습니다. 과거의 폭력과 수탈을 근간으로 오늘날 유럽복지국가들의 교육인프라, 노후안정인프라가 창출된 것입니다. 오늘날엔 최소한 OECD국가들은 자국산업의 특화된 생산성과 국제교역을 통해 창출된 부를 통해 그 기존구축된 복지를 유지합니다.
대한민국은 사정이 다르지요. 다만, 복지확대를 주장하는 위의 단체나 시민단체 등의 그룹은 자신들의 영역구축에 더 혈안된 듯합니다. 마치 공기업을 만들어 두면 해체하기 어렵고 필요없는 사업을 확대하자고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자기 철밥통을 복지시혜정책확대로 얻으려는 속셈과 더불어 복지혜택자에 대한 무임승차(도덕적 해이)가 드러나면 복지무용론에 빠질까봐 실상공개를 쉬쉬합니다. 이제는 드러내어야죠. 복지권력층 등을 위한 제도유지할 것인지, 창조성과 경쟁력을 가진 복지를 추구할 것인지 경쟁하고 승자를 가려야죠.
대한민국이 선택할 복지가 유럽을 벤치마킹함은 지속불가하며 절대 모순임을 강조합니다. 자체유지비용과 연구비용이 더 많이 드는 복지단체를 해체할 수록 실질복지로 국민세금이 사용되어 국민복지수준이 증가될 겁니다.
picket [다함께]/
picket님의 양심을 존중하기 때문에, 다함께에 대한 신선한 평가를 하심에 대해 평가절하하고 싶지 않군요. 제가 잘못알고 있다 보신 다함께가 주장하는 실질 내용이나 뛰어난 창작성의 배경이 어떤지 궁금하기도 하구요.
picket, 지오 [이기심 혹은 이타심]/
테제의 글은 "이타심이라는 타인배려는 '언제인가 저 사람의 불이익이 나에게 올지도 모른다'는 미래에 손해를 보지않기 위한 이기적 배려중 하나입니다. 이타심과 이기심 둘 다 인간목적, 즉 생존을 목적합니다. 문제는 '가격'입니다. " 입니다.
위의 3문장중에 첫째는 동의하신다 하셨습니다. 반면 결론 부분인 문제는 '가격'에 대해서 문의하셨고, 그 아래에는 공동체의 중요성과 이타심의 중요성을 강조하셨고, 서민을 등치는 사기꾼이 많음을 개탄하셨습니다. 선량한 시장주의자는 picket님이 말씀하신 이타심이나 도덕성 공동체를 더 잘 복원한다는 것인데요, 그것이 바로 이기심 vs. 이타심에서 picket이 처음에 동의하신 내용에 함축된 내용이지요.
생물학적 생존이란 인간본능에서 이타심이나 도덕이 유래한 이유는 많은 철학자들의 해석이 있습니다. 그중 "우리는 글자 그대로의 세상의 선의(good sense)에 속박되어 있다. 이러한 변이의 정수는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이것을 생물학적 원리, 즉 자기 보존에 대한 요구에 연결시켰다. "입니다. http://www.skepticalleft.com/bbs/board.php?bo_table=01_main_square&wr_id=37059#c_37245
이타심을 강조한 해석은 동정주의나 고전적 덕치주의와 유사한 해석입니다. 선량한 자유주의자는 이기심을 말하지만, 자유주의와 시장경제가 지속성을 가지려면 '진정으로 공동체를 존중하는 마음'의 도덕적 기반위에서만 오래 생존됩니다. 그래서 공동체주의나 동정주의가 원하는 이타심의 결과를 더 잘 성취하는 것이 자유주의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러한 자유주의 혹은 시장경제주의의 도덕성은 전적은 아니래도 인정받아 마땅하다 봅니다.
[ 문제는 '가격'입니다 ]라는 결론에서는 이타심과 이기심의 가격을 말합니다. 이타심을 말한 동정주의나 공동체주의가 추구하는 복지의 가격은 얼마이고, 이기심을 말한 자유주의에서의 복지의 가격은 얼마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제 의견은 공동체를 중시하는 공동체주의보다는 개인을 중시하는 자유주의가 추구하는 복지의 가격대비 더 저렴한 비용으로 더 많은 복지를 결과한다고 봅니다. 이기심과 이타심이 각각 경쟁 중이라는 것입니다. 이타심을 말한다고 이타심이 추구하는 선량한 결과가 드러난다고 보는 것은 언어상의 낭만주의입니다. 효율성을 가진 것이 선량한 것이죠. 그래서 [ '가격'이 문제 ]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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