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동맹 구성의 기본 원리는 '호혜평등'이다. "네가 나를 도우면, 나도 너를 돕겠다." 그런데, 이런 약속에는 한가지 위험이 수반되는데 그게 뭐냐하면 동맹의 구성원 중에서 이익만 취하고 그 대가는 치르지 않으려는 이가 항상 발생한다는 것이다. 소위, '무임승차자'문제라는 것이다. 집단생활에서 제기되는 기본적인 적응 문제이다.
'무임승차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동물은 집단을 못 이룬다고 한다. 예컨대 어떤 무리에 무임승차자가 하나 있다고 치자. 이 무임승차자가 어려운 사정에 처했을때 동맹 구성원들이 희생을 감수하면서 도와준다. 그런데 무임승차자는 이런 혜택은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보답을 할 생각은 안한다.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만약 무임승차자가 눈에 안띄게 이런 재주를 계속 부리면 다른 구성원보다 생존이나 생식에 더 유리해진다. 그러면 유전자 풀에는 무임승차자의 유전자가 많아지고 장기적으로는 그 집단의 모든 개체가 무임승차자가 되어버린다. 그렇게 되면 이젠 동맹 구성원의 아무도 서로를 돕지 않게 된다. 당연히 동맹은 해체된다.
나는 오래전부터 그런 생각을 해왔었는데, 만약 인류에게 있어 민주주의 체제라는 사회동맹이 생산성이 있고 생명력이 질기다면 그 기반은 바로 이 무임승차자 문제를 체계적으로 잘 처리하는 시스템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 체제의 어떤 도구가 무임승차자를 처리한다는 말인가? 바로 '좌-우 정권교체'이다.
자, 손쉽게 좌파는 약자를 대변하는 사람, 우파는 강자를 대변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해보자. 근데 여기서 강자-약자는 가치중립적인 개념이다. 흔히 극좌 사람들은 강자, 약자라고 했을때 거기에 선악개념을 집어넣는다. 강자는 나쁜 사람, 약자는 착한 사람 하는 식이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강자는 말그대로 힘쎈 사람이고, 약자는 말그대로 힘 약한 사람일뿐이지 거기에 왜 선악개념이 들어가는 것일까? 세상에는 착한 강자도 있고 나쁜 약자도 있다. 이거 분명히 인식해야한다.
지난 수십년간 한국 사회의 문제는 '나쁜 강자'의 문제였다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재벌이다. 우파가 수십년간 정권을 잡으면서 이쪽에서 엄청난 무임승차자가 형성되었다. 예전에 양신규 교수님이 잘 지적한 것처럼 세계 최고의 노동력을 자랑하는 우리나라 국민들의 생산성을 바로 이 재벌들이 무식한 경영술로 다 좀먹은 것이다. 이들이 그간 국민들의 세금과 저금을 또 어떻게 도적질을 해왔는지 생각해보라. 이들은 97년 외환위기와 정권교체 이후 어느정도 심판을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최근의 삼성사태를 보듯이 여전히 그 행태를 반성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또 이렇게도 한번 생각해보자. 좌파정권이 10년을 집권했는데,'나쁜 약자'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을까?(물론 우파 정권에서도 '나쁜 약자'는 기생해왔다. 이건 상대적인 수준의 문제이다) 좌파들이 대변한다는 소위 그 약자라는 사람들 중에는 과연 무임승차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느냔 말이다. 일부 농민, 일부 노동자, 일부 여성, 일부 386세대, 아니 심지어 일부 호남사람들까지...
라우츠라는 학자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부유하게 되는 것에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생산을 많이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들이 생산해 놓은 것을 어떻게 용이하게 빼앗아 내는가 하는 것이다."
가령, 국가세금으로 약자를 보호하고 돕는다는 것 말이다. 이거 말하자면 강자들의 주머니에서 돈을 빼내서 약자에게 준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게 자발적이면 따뜻한 십시일반이 되겠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사실상 도적질이 되는 것 아닐까?
햇볕정책만 해도 그렇다. 북한은 양면성이 있는 집단이다. 좋게 보면 선량한 '거지'고 나쁘게 보면 사악한 '앵벌이'다. 자, 그렇다면 북한을 도우려할때 왜 북한을 도와야하는지 북한을 도왔을때 우리에게 어떤 이익이 돌아오는지 여기에 대한 설득작업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노무현 정권, 그리고 내가 노무현 정권보다 높이치는 김대중 정권에서도 과연 얼마나 이런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했는지가 의심스럽다. 북한이 내놓고 핵실험까지 하지 않았나? 이 판에 '퍼주기 그만하라!'라고 고래고래 소리치는 사람들을 마냥 수구꼴통이라고 욕만 해댈 수 있는가?
진보개혁진영을 빽으로 둔 여성주의자들이 일으켜놓은 여러 사건들도 봐라. 일련의 할당제야 그렇다치고, 군가산점 문제나 성매매 처벌법 등 사실은 중산층 여성들 배때기만 불려준 입이 백개라도 할 말이 없는 경이적으로 실패한 정치행위가 한둘이 아니다. 여성만 그런가? 노동자, 농민 등등 다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좌파 내부에서 이 문제로 자성이나 반성을 하는 경우는 보기 드물다. 왜 명분의 진보개혁세력이 도적질을 방조하거나 심지어 고무, 조장하기까지 하나?
어제 진화심리학 강의 시간에 배운 개념이다. '강한 상호주의자(strong reciprocator)'
'강한 상호주의자'는 '심지어' 자신의 희생이나 손해까지 감수해가면서까지 사회동맹내의 호혜평등 체계를 부수려는 자들을 처벌하려는 이를 말한다. 인류가 여느 동물들과는 다르게 집단을 잘 유지하는 것은 집단내에 바로 이렇게 호혜평등 체계를 잘 감시하는 이가 있기 때문이다.
자, 지금껏 한국사회는 좌익들이 바로 이 '강한 상호주의자'(특히 군부와 재벌에 대해서) 역할을 해온 사람이라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지금은? 재밌게도 우익들이 바로 그 역할을 하고 있지 않나 하는게 내 생각.
이명박이 당선되었을때 좌익만 손해보나? 천만에 말씀이다. 우익도 자신들이 정말 소중히 생각하는 가치인 법치주의가 심각하게 훼손된다(BBK 문제는 떠나서라도). 대운하 정책 봐라. 그거 우익들이 그토록 중시하는 나라 경제 개판 만들어놓을 정책이라는 것은 그쪽에서도 다 잘 안다. 그런데도 그들은 기어이 이명박으로 정권교체를 시켜보겠다고 나선다. 왜 그러는건가? 미친건가? 그런 측면도 있겠지만, 이거 좌파 정권 10년간 소위 '약자'라는 사람들의 전횡이 얼마나 심각했으면 오죽 그러겠는가도 생각해봐야한다. 이명박 개인의 부패의 무게가 아무리 무거워도 좌파 세력 전체의 부패의 무게만치야 되겠나? 이명박 되면 딴건 몰라도 좌파 세력 부패는 확실하게 처리한다고 봐야한다. 그 유일한 장점이 다른 이명박의 단점 모두를 커버할 정도라는게 바로 이명박을 지지하는 대다수 국민들의 생각 아닐까? 이거 자체로 비난할 수 없다. 이게 공정성에 대한 요구, 곧 '정의'가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나?
물론 일련의 이명박 지지자들이 아무리 '강한 상호주의자'라 하더라도 감수할 수 있는 희생이나 손해에는 결국 한계선이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그런 인간이 대통령이 된다면 법치라고 하는 사회동맹 구성의 근간이 너무 심하게 무너져내려버리니 말이다. 삼성 등 우익 '무임승차자' 문제도 여전히 상존하고 있고. 그런 측면에서 난 이명박 기소만 이루어지고 정-문-이 후보단일화만 이뤄진다면 정동영 당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고 본다.
하지만, 그런 정치공학적인 문제를 떠나서, 만약 진보개혁진영이 단지 좌파가 아니라 정말 진보를 위해 나아가는 세력이라면 우리 내부의 '무임승차자' 문제에 대한 반성이, 그리고 해결을 위한 어떤 비전이 나와야 한다고 본다(한달내로는 반성은 몰라도 비전까지는 좀 어렵겠지만). 어떻게 요행수로 이번에 또다시 행정부를 장악하더라도 입법부가 지방정부가 무너질 가능성이 크고, 계속 이런 식으로 사회에 스트레스가 쌓이고 쌓이다보면 5년후에는 이명박보다 더 부패하고 무식한 자가 정권교체를 하겠다고 나선대도 좌파건 중도건 그걸 막아낼 힘이 없어진다. 아니면 사회동맹 자체가 완전히 무너져버리든지.
노무현 정권의 자성을 요구하는 소리가 여기저기 드높다. 그러나 이거 단순히 노무현 대통령 한 사람, 그리고 친노들의 오만방자함만을 지적하면서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좌파세력 내부 곳곳의 '무임승차자' 문제에 대해서 깊은 성찰이 있어야 한다. 중도좌파가 극좌파의 준동을 제어하지 못하면 애써 정권을 잡더라도 필연적으로 무너진다. 이회창이라는 시대착오적 극우 후보로 두번이나 정권을 놓친 한나라당에게 교훈을 얻어야 한다.약자를 대변하는게 진보가 아니라 착한 약자와 착한 강자을 대변하는게 바로 진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