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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워치> 130호 (PDF 전문)
  [번역/로버트노직] 왜 지식인은 자본주의에 반대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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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riter : mahlerian     Date : 12-04-21 11:11     Hit : 16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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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케이토 연구소에 올라온 로버트 노직의 글, “왜 지식인은 자본주의에 반대하는가?(Why Do Intellectuals Oppose Capitalism?)”라는 글을 김주년 기자와 제가 완역한 것입니다. 원 저자의 의도를 염두에 두고 의역을 많이 취했음을 유념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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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버트 노직(Robert Nozick)[2], 케이토 연구소 보고서 1/2월 1998년(Cato Policy Report, January/February 1998)[3]
 
 

지식인들이 자본주의에 반대한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사회경제적으로 비교될 수 있는 다른 사회집단들은 이들 지식인들만큼이나 자본주의를 적대시하지는 않는다. 통계적으로 봤을때도 지식인들의 자본주의에 대한 혐오는 이례적일 정도이다.
 
물론, 모든 지식인들이 “좌익”쪽에 서있는 건 아니다. 다른 사회집단들처럼, 지식인들 개개의 이념도 (세상의 대부분의 현상과 마찬가지로) 정규 분포 곡선 전체에 걸쳐져있다. 그러나 지식인들의 경우에는 이 정규 분포 곡선 자체가 정치적 좌파 쪽으로 이동해있고 또 편향되어 있다는 특징이 있다.
 
여기서 내가 정의하는 “지식인”이란 반드시 모든 지식인들, 또는 일정 수준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 모두는 아니다. 내가 정의하는 지식인은, 직업적으로 이런저런 언어로서 표현된 생각들을 다루고, 또 다른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언어의 흐름을 조성하는(shaping) 사람들이다. 이런 인문계열 지식인들(wordsmiths)에는 시인, 소설가, 신문 및 잡지 기자, 문학평론가 및 교수들이 있다. 여기에는 정량적으로 혹은 계량적으로 산출된 정보를 생산하고 유통시키는 이공계열 지식인들(numbersmiths)과 영상 미디어 관련 종사자들, 페인트공, 조각가, 화가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 인문계열 지식인들과 달리 이런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비정상적으로 자본주의를 적대시하지는 않는다. 인문계열 지식인들은 학계, 언론, 정부 관료조직 등 아주 특수한 직업군에 집중돼 있는 것이다.[4]
 
(역주 : 여기서 노직은 인문계열 지식인인 wordsmith 에 반대되는 의미로 이공계열에 속하는 지식인을 numbersmith 라고 표현하고 있다. wordsmith, numbersmith 는 둘다 대장장이인 blacksmith 에서 유래한 말로, 굳이 이 어감과 가까운 우리 말이라면 wordsmith 는 문돌이, numbersmith 는 공돌이일 것이다.)
 
사실 인문계열 지식인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혜택을 누린다; 그들은 새로운 생각을 표현하고 유통하고 접수하며, 또 관련한 텍스트들을 독해하고 논의할 수 있는 광범위한 자유를 갖고 있다. 우리 사회에는 그들의 직업적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으며, 그들의 소득도 평균보다 한참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왜 그렇게 비정상적일 정도로 자본주의에 적개심을 품는가?
 
일부 연구에 따르면 지식인은 더 출세하고 더 성공할수록 자본주의를 증오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고 한다. 자본주의에 대한 지식인의 반감은 대개의 경우 좌익쪽과 연계되어 있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예이츠(Yeats), 엘리엇(Eliot), 파운드(Pound) 등과 같은 작가들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우익쪽에서 반대했다.
 
인문계열 지식인들의 자본주의에 대한 적개심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문제다. 이들은 이 사회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감수성을 조성하는 위치에 있다; 이들은 관료들이 고려할만한 정책적 대안을 제시한다. 연구논문(treatises)에서부터 선동구호(slogan)까지, 이들은 우리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는 언어들을 제공한다. 명징한 서술능력, 그리고 관련되는 각종 정보의 보급에 점점 더 의존하는 이 사회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이들의 반감은 결코 간과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인문계열 지식인들 중 상대적 다수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적대시하는 현상을 두가지 측면에서 구분해 설명할 수 있다고 본다. 그 첫째는 반자본주의 성향 지식인들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요인과 관계된 것이다. 둘째는 반자본주의 성향 지식인들뿐만이 아니라 모든 지식인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 요인인데, 바로 지식인들을 반자본주의 성향으로 몰고 가는 외재적 힘에 대한 것이다. 물론 이 외재적 힘이 특정한 지식인을 실제로 반자본주의 성향으로 굳어지게 만드는지 여부는 개별 지식인의 특성이나 상황 등에 달려있을 것이다. 허나 대체적으로는 이 외재적 힘이 지식인을 반자본주의 성향으로 끌고 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결국 이것이 높은 비율의 반자본주의 성향의 지식인들을 양성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 우리의 설명은 여기서 설명한 두 번째 타입에 중점을 둘 것이다. 또 우리는 지식인들을 반자본주의적 태도로 기울게 하는 요인을 정의할 것이다. 그러나 이 요인은 특정 사례에서 확실하게 적용된다고 보장될 수는 없다.
 
 
지식인들의 가치
 
지식인들은 자신들이 한 사회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사회집단이길 기대하며, 또한 명망과 권력을 원함과 동시에 엄청난 보상도 바란다. 이들 지식인들은 스스로 그럴 자격이 있다고도 생각한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자본주의 시장경제 사회는 지식인들에게 그렇게 큰 명예를 주지는 않는다. 루드비히 폰 미제스(Ludwig von Mises)는 노동자들과는 비교되는 지식인들의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특수한 분노를 설명한 바 있다. 미제스에 따르면 지식인들은 성공한 자본가들과 사회에서 어울리게 되면서 이들보다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가 낮다는데 대해 분노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자본가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지식인들조차도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해 비슷한 분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단순히 성공한 자본가들과 어울린다고 해서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적대시하게 되는건 아니다. 분명 부자들에게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포츠 및 댄스 강사들은 그다지 반자본주의적 성향을 갖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왜 우리 시대의 지식인들은 사회가 자신들에게 가장 높은 보상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며, 또 그렇지 못할 현실에 그리 분노하는 것일까? 지식인들은 자신들이 한 사회에서 가장 가치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며, 또 가장 뛰어난 업적을 내고 있기에 사회가 자신들이 갖고 있는 가치와 능력에 따라 보상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시장경제 사회는 (통속적인 인식과는 달리) “각각의 업적(merit)와 가치(value)에 따라 보상을 해주는” 분배 원칙에 따라 작동하지 않는다. 일단 자유사회의 선물(gifts)이나 상속(inheritances), 도박상금(gambling winnings) 등은 논외로 하더라도, 시장은 그저 시장 내에서 타인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사람들에게 일정한 보상을 해줄 뿐이다. 그리고 그 보상의 양은 해당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얼마나 강하며, 또 대안이 될 훌륭한 공급자가 있는지 없는지 여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사실 실패한 사업가들과 근로자들이 인문계열 지식인들만큼 자본주의에 대해 적개심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인정받지 못하는 우월감과 배신당하는 자존심이 인문계열 지식인들의 이러한 적개심을 양성하는 것이다.
 
왜 인문계열 지식인들은 자신들이 가장 가치있다고 생각하며, 또 분배가 가치에 의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여기서 특히 후자와 관계된 원칙은 불필요하다는 사실에 주목하라. 가치에 따른 분배 방식 외에 다른 분배 방식들도 이미 제안된 바 있는데, 동일한 분배(equal distribution), 도덕적 업적에 따른 분배(distribution according to moral merit), 필요에 따른 분배(distribution according to need)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한 사회가 추구하는 분배의 양식이 따로 존재할 필요는 없으며 이는 정의(justice)를 추구하는 사회라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분배의 정의란 바로 각자가 필요한 자본과 용역의 자발적인 교환 과정에 의해 성립될 수 있다. 이런 과정에 의해서라면 어떤 결과가 나오던지 간에 그것은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며, 반드시 어떤 결과를 도출해야하는 특정한 분배 양식이 한 사회에 존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인문계열 지식인들은 스스로를 가장 가치있다고 생각하며 분배의 문제를 가치와 연관지어서 생각하는 것일까?
 
사람의 생각이 문헌상 기록으로 남겨진 역사 이래로,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활동이 가장 가치있다고 주장해 왔다. 플라톤(Plato)은 이성적 자질(rational faculty)이 용기와 식욕보다 더 가치있다고 생각했으며, 철학자들이 국가를 통치해야 한다고 여겼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는 지적인 사색(intellectual contemplation)이야말로 가장 높은 경지의 행위라고 주장했다. 이런 문헌들이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와서 지적인 활동에 가장 높은 평가치를 매기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지적 활동에 대한 평가를 내리고 이를 문헌에 기록한 사람들도 결국에는 지식인들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스스로를 칭송하고 있었던 것이다. 언어를 통한 생각보다는 다른 것을 더 중요하게 여겼던 이들은, 그것이 사냥이든 권력추구든 연속된 감각적 즐거움이건 간에, 좌우간 문서같은 것을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오직 지식인들만이 누가 최고였는지에 대한 기록을 남겼던 것이다.

 
지식인들의 학교 교육 
 
지식인들이 스스로를 우월하다고 여기게 한 요인은 무엇일까? 나는 특히 한 기관(institution)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학교’다.
 
책을 통한 지식의 습득이 점점 더 중요해짐에 따라서, 어린 학생들이 함께 교실에 모여 책을 읽고 지식을 습득하는 학교 교육이 확산되었다. 학교들은 가정 바깥에서 어린 학생들의 태도를 형성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기관이 됐으며,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바로 이 학교 교육을 거쳤다. 그곳에서 그들은 성공적이었다. 그들은 어린 시절, 다른 학생들에 비해 뛰어나다고 평가받았다. 칭송은 물론이고 상도 받았고, 선생님의 편애도 있었다. 이런 그들이 어찌 스스로를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매일같이 그들은 두뇌회전이 남들보다 빠르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학교는 그들에게  더 뛰어난 사람이라고 계속 말해줬던 것이다.
 
또한 학교들은 지적인 능력에 따라 상을 주는 원칙을 그들에게 가르쳤다. 지적으로 가장 우월한 학생들에겐 상장과, 선생님의 미소와, 높은 학점이 주어졌다. 학교가 줄 수 있는 보상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가장 똑똑한 학생들이 최상위 클래스에 위치했다. 비록 공식 커리큘럼에 있는 내용은 아니었지만, 지식인들은 학교에서 자신들이 남들보다 더 가치있다고 배웠고 그래서 자신들이 높은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게 됐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시장은 지식인들에게 학교에서 배운 내용과는 전혀 다른 내용을 가르쳤다. 이곳에서는 최고의 보상이 반드시 가장 말잘하는 똑똑이들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시장에서는 그런 형태의 지적 능력이 가장 중요한 가치가 아니었다. 지식인들은 학교에서는 자신들이 최고라고 여겼을 것이며, 남들보다 더 큰 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지식인들이 자신들에게 기대만큼의 보상을 해주지 않고 또 자신들의 우월성을 “빼앗아 간” 자본주의 사회를 어떻게 미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런 다양하고 적절한 이유들에도 불구하고 지식인들이 자본주의 사회에 대해 깊고 차가운 적개심을 갖는다는 사실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가?
 
지식인들이 사회가 제공할 수 있는 가장 높은 보상(부, 지위 등)을 얻는 일에 자신들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지식인들이 가장 비싼 물건을 보상으로서 바란다고 지적하려는 건 아니다. 아마도 그들은 자신들의 지적 활동에 대한 매우 깊이 있는 본질적인 보상 또는 존경을 바라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지식인들 역시 사회로부터 가능한 한 가장 큰 감탄을 갈망한다. 여기서 나는 그들이 어떤 종류의 보상을 원하며 그것을 어떻게 추구하고 있는지를 강조하려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스스로를 지식인이라고 정의하는 그들은, 자신들의 지적 활동이 가장 높이 추앙받고 보상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분개할 수 있는 것이다.
 
지식인들은 사회 전체가 학교처럼 되기를 바라며, 자신들이 잘한다고 칭찬받는 환경이 되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학교는 사회와는 다른 보상 방식을 채택하고 있기에, 일부 학생들은 학교를 떠난 뒤에 사회적 지위의 하강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학교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올랐던 학생들은 그러한 작은 사회 뿐 아니라 나중의 큰 사회에서도 최고의 지위를 희망하겠지만 현실은 다르다. 우리의 큰 사회는 이 학생들이 스스로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욕구와 기대감을 충족시켜 주지 못할 것이고, 이는 학생들이 이 사회에 적개심을 품는 결과로 이어진다. 결국 학교 교육 시스템이 지식인들 사이에서 반자본주의 성향을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언어로 먹고사는 지식인들 사이에서 반자본주의 성향이 조장된다. 그렇다면 이공계열 지식인들(numbersmith)은 왜 인문계열 지식인들과 같은 태도를 보이지 않는가? 나는 이렇게 추측한다. 숫자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아이들은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더라도 언어 능력이 뛰어난 아이들에 비해 관심을 비교적 덜 받으며, 선생님들로부터 칭찬도 상대적으로 적게 받는다. 대개는 언어적 능력이 뛰어난 학생이 선생님으로부터 개인적인 보상을 받게 되고, 이런 보상으로 인해 그 학생은 스스로 최고의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자부심이 생기는 것이다.

 
교실에서의 중앙적 계획
 
더 심층적으로 논의해야 할 부분도 있다. (미래의) 인문계열 지식인들로서는 학교 내의 정규적이고 공식적인 시스템이 익숙하다. 그곳에서는 선생님의 중앙적 권한에 의해 보상이 이뤄진다. 그런데 학교에서도 복도, 운동장 등에는 또 다른 비정규적인 사회시스템이 존재한다. 그곳에서는 보상행위가 중앙으로부터의 명령에 의해 이뤄지지 않으며, 학교 친구들의 자연스러운 재미나 일시적인 기분같은 것에 따라 결정된다. 이 영역은 지식인들이 다루기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영역이다.
 
따라서, 지식인들은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에서의 “무정부주의와 혼돈(anarchy and chaos)”보다는 중앙적 권한에 의한 보상행위가 이뤄지는 시스템에 더 익숙하다고 할 수 있다.  사회주의 체제의 계획경제에 의한 분배 시스템이 시장경제 체제에서의 그것과 차이가 있는 것처럼, 학교 내에서 선생님의 의한 보상 시스템은 운동장 및 복도에서의 그것과 대조적이다.
 
우리는 (미래의) 인문계열 지식인들이 학교 내에서 대부분 상위급 성적을 받을 것이라고 상정하지는 않는다. 여하튼 이 집단의 학생들은 독서로부터 얻은 탄탄한 지식(하지만 결코 압도적이라고는 할 수 없는 수준의)과 그리고 사교성, 친절, 원칙주의적 성향 등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학생들 역시 선생들로부터 인정받고 상을 받는다. 그들은 사회에서도 잘 해낼 것이다. (학교 내 비공식적 사회 시스템에서도 역시 잘해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학교의 공식적 시스템의 규범을 특별하게 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는 (미래의) 인문계열 지식인들이 학교에서는 상위 등급에 있지만 사회적 지위의 하강을 경험할 것이라고 가정해 보자. 또는 이 집단의 학생들이 사회적 지위 하강과 같은 더 악화된 미래를 사전에 예측한다고 가정해 보자. 이 경우 그들이 사회에 대해 가지는 적개심은 그들이 사회에 진출해서 사회적 지위의 하강을 실제로 체험하기 이전부터 이미 커질 것이다. 이때쯤 되면 똑똑한 학생은 나중의 사회에선 현재의 학교 시스템에서보다 얻을게 상대적으로 적다는 걸 깨닫게 된다. 
 
이처럼 학교 시스템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만들어내고, 바로 여기서부터 학생들은 자본주의에 대해 반감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또한 극도의 반자본주의 성향을 가진 지식인들로부터 뭔가를 배우거나 그들의 서적을 읽을 경우 그들의 자본주의에 대한 반감은 더욱 강해진다.
 
물론 예외는 있다. 일부 인문계열 지식인들은 불평을 달고 살며 질문을 많이 하는 학생들이었으며, 이런 이유로 선생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했을 것이다. 이들 역시 최고의 학생이 가장 높은 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이들도 가장 가치있는 사람이 가장 높은 상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했을까? 자신들을 인정해주지 않는 선생님들의 반응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최고라고 여기고 있었을까? 자신들을 인정해주지 않는 학교의 보상 시스템에 대해 일찌감치 적개심을 품고 있었을까? 분명 이 문제는 물론 논의된 다른 문제와 관련 우리의 가설을 개선하고 검증하기 위해서는 현 인문계열 지식인들의 학창시절에 대한 자료가 필요하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학생들이 학교에서 익힌 규범이 학교를 떠난 후의 규범적 신념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 결국, 학교들이란 가족 외에는 학생들이 학창시절 경험하는 가장 크고 중요한 사회이며 따라서 학교에서의 경험은 더 큰 사회에서의 그들의 행동양식을 규정하게 된다. 학교 규범 시스템에서 성공적이었던 이들이, 그곳과는 다른 규범을 제시하며 자신들에게 같은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 이 자본주의 사회를 적대시하는 것은 크게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하겠다. 사회는 이들이 스스로 생각했던 자아상과 자신들에 대한 자체 평가에 비해 턱없이 낮은 보상을 해주기 때문이다. 인문계열 지식인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모든 영향력을 발휘해서 이 사회의 규범(자본주의적인)에 대해 반대할 수밖에 없게되고, 유감스럽게도 그들은 이렇게 되도록 학교에서 교육받은 것이나 다름 없다. 만약 당신이 사회를 디자인한다면 이런 상황은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지식인들의 비정상적인 반자본주의 성향에 대한 우리의 설명은 이렇게 그럴듯한 사회학적 일반화에 기초하고 있다.
가정 바깥의 시스템 또는 기관에 어린 학생들이 처음으로 들어가 성적에 따라 보상을 받는 경우를 가정해 보자. 이곳에서 가장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은 해당 기관의 규범을 받아들이려고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회에서도 이런 규범들이 그대로 적용되기를 기대할 것이다; 그들은 이 규범들에 따라 (사회적 지위가) 배분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거나, 또는 이러한 규범들에 의해 산출되는 사회적 지위를 원할 것이다. 더 나아가서, 이 가정 바깥의 첫번째 시스템에서 상위계층을 구성하는 이들이 사회에 나와서는 더 낮은 계급으로 내려가는 것을 경험할 경우(또는 그런 경험을 할 것이라고 미리 예측하게 되는 경우), 당연히 받아야할 보상을 받지 못하게 됐다는 분노로 인해 그들은 사회의 시스템에 반대하게 되고 사회 규범에도 적대감을 가지게 된다. 
물론 이런 분석이 결정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사회적 지위의 하강을 경험한 모든 사람들이 다 그 시스템을 적대시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경험은 사람을 그리 이끄는 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된다. 전체적으로는 그것이 자본주의에 대해 적개심을 품는 비율을 높이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상위계급에 있었던 사람들이 사회적 하강을 경험하는 데 다른 사례가 있다는 것을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아예 주위의 다른 사람들보다 확실히 더 낮은 계급으로 추락하는 경우다(이 경우 반드시 다른 사람들이 더 높은 계급으로 올라가는 건 아니다). 둘째는 대부분이 사람들이 비슷비슷한 계급에 위치해있는 사회에서, 그런 사람들과 별 차이없는 계급으로 추락하게 되는 경우다. 주로 전자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괴로움을 느끼며 분노하게 된다; 두 번째 경우는 그나마 견딜만 하다. 많은 지식인들은 자신들이 평등을 선호한다고 주장하며, 지식인들이 귀족계급을 이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극소수다. 우리의 가설은 첫 번째 경우에 해당하는 지식인들이 분노와 적개심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학교 시스템은 개인의 성공과 관련해 일부 능력만을 교육시키고 그와 관계된 보상을 해준다(결국 학교란 특성화된 기관인 것이다). 따라서 이 보상시스템은 더 넒은 사회의 그것과는 다르다. 사회에 진출하게 되면서 학생들 중 일부가 사회적 지위의 하강을 경험하게 된다는 현실은 애초부터 필연적이라고 할 수 있다. 앞에서 나는 지식인들은 사회도 학교와 같기를 바란다고 언급한 바 있다. 여기서 우리는 개인에게 있어 가정을 제외하고는 사실상의 첫번째 사회인 학교가 실제 사회와는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스스로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확신하는 지식인들이 사회에 가지게 되는 분노는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이제 우리는 학교 교육을 받은 지식인들은 그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건, 공산주의 사회건 간에 해당 사회에 대해 (비정상적인) 적개심을 가지게 될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지식인들은 비슷한 사회경제적 지위의 사회집단들과 비교했을때 자본주의에 대한 비정상적 적개심이 유별나다. 자본주의가 아닌 다른 형태의 사회에서도 지식인들이 그 사회에 대한 유사한 정도의 비정상적 적개심을 가지고 있는지는 다른 문제다.) 그렇다면 공산국가 내의 지식인들이 그 사회시스템에 대해 가지는 태도에 대한 자료가 중요해진다; 이 지식인들은 공산주의 시스템에 대해서도 역시 적개심을 가질 것인가?
 
우리의 가설은 더 정제되어야 하며, 모든 사회에 적용되지는 않는다.(물론 매우 강력하게 적용되기도 할 것이다). 학교 시스템들은 그 어떤 사회에서도 해당 사회에서 최고의 보상을 받지 못하는 지식인들에게 반사회적 적대감을 필연적으로 양성할 수밖에 없다는 것인가? 아마도 아닐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마치 개인의 재능과 진취성 및 업적을 중요시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고 있으며, 이는 사실 특이한 경우다. 모든 것이 상속되는 카스트사회나 봉건사회에서 자란 사람은 개개인의 가치에 따라 보상이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조차도 할 수 없다. 허나 어쨌든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뭇사람들의 인상과는 무관하게 우리 자본주의 사회는 시장에서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제품 및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에게만 높은 보상을 해준다; 이 사회도 사실은 개개인의 가치가 아니라 경제적 기여도에 걸맞게 보상이 이뤄지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에서의 이같은 보상 방식은 학교에서 보편화된 '가치에 따른 보상' 개념과 완전히 괴리된 것만은 아니다. '가치'와 '기여도'가 같은 경우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와 학교의 공통점도 있는데, 사람들이 같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이같은 자본주의적 적대감이 생성된다는 점에서는 학교의 경우와 본질적으로 비슷하기도 하다.
 
일련의 자본주의 사회들은 개인적인 성과에 대해 보상을 하며 또 그렇게 할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가 그것을 평가하고 느끼는 것과는 별개로) 스스로 가장 높은 성과를 거뒀다고 생각하는 지식인들에겐 이는 씁쓸한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내 생각엔 또 다른 요인도 있다. 각 학교들에서 다양한 계층의 학생들이 모일수록 반자본주의적 태도를 양성하게 된다는 점이다. 만약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대부분이 학창시절 사립학교(separate school)에 다닐 경우엔, 지식인들은 그들보다 자신들이 우월하다는 생각을 가지지 않을 것이다(마주칠 일이 없으므로). 그러나 상류층 자녀들의 다수가 사립학교를 다니고 있다해도, 좌우간 열린사회에서는 사립학교가 아닌 공립학교를 나온 학생들 중에서도 기업가들처럼 벼락출세를 하며 경제적으로 성공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지식인들은 나중에 “나랑 같은 학교를 나온 그 녀석이 비록 지금은 돈도 많고 권력도 있지만, 학창시절엔 분명 나보다 공부를 못했었어”라는 생각을 가질 것이다. 사회의 개방성이 이런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미래의 인문계열 지식인이 될 학생들은 나중에 자신들이 어떤 보상을 받을지를 알지 못한다. 그들은 학창시절 뭐든 희망할 수 있다. 닫힌 사회는 그런 희망들을 일찌감치 소멸시키겠지만, 우리의 열린 자본주의 사회는 학생들이 자신들의 성취나 사회적 지위의 획득을 미리 포기하지는 않게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학교에서 높이 평가했던) 가장 유능하고 가치있는 자들이 정상에 오를수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학교들도 학점과 성적표를 통해 당신들이야말로 가장 가치있는 사람이며, 큰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가르치며 학생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준다. 이로 인해 이 지식인들은 자신들보다 성적이 낮은 동료 학생들보다 자신들이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고, 사회에서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스스로 여긴다. 결국 이들이 나중에 현실을 접하고 나서 (학교 시스템과는 다른 보상과 성공을 약속하는) 자본주의 사회에 적개심을 품게되는 것은 어색한 일이 아니다.

 
심층적인 추가 가설 
 
우리는 이제 이 가설을 어느 정도 개선했다. 여기서 내가 학교라고 지칭하는 것은 단순히 정규 학교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문계열 지식인들에게 반자본주의적 성향을 양성시킨다는 맥락에서의 정규 교육이다. 물론, 나의 가설은 더 추가적인 정제작업을 필요로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면 이제 이 가설을 사회과학자들에게 넘겨도 충분하다고 본다. 그들은 탁상에서의 공리공론이 아니라 더 특정화된 사실들과 자료를 바탕으로 연구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가설이 몇몇 영역에서 설득력, 예측력을 가진다고 얘기할 수 있다.
 
첫째로는 한 국가의 학교 시스템이 성적지상주의에 가까울수록, 그 국가의 지식인들의 이념성향이 좌측에 위치한다는 것이다(프랑스의 경우를 보라).
 
둘째, 학교에서 대기만성형(late bloomers)이었던 지식인들(과거의 학생들)의 경우는 사회에 나와서 자신들이 응당 받아야하는 보상이 무조건 커야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대기만성형 지식인들의 반자본주의적 성향은 학교에서부터 크게 두각을 드러낸 지식인들에의 그것에 비해 약하다.
 
셋째, 우리의 가설의 범위는 학교에서 성공적인 학생들이 사회에 진출해서 어느 정도 성공을 기대할 수 있는 사회들로 제한돼 있다(카스트 제도가 있는 인도와 같은 사회는 우리의 가설에서 제외시켜야 한다). 서방 사회에서는 여성들이 과거에 그런 기대를 가지지 못했다. 따라서 그런 시대에서는 학교에서 높은 성적을 기록한 뒤 사회에 나와 지위 하락을 경험한 여학생들은 같은 경우의 남성 지식인들에 비해서 반자본주의적 성향이 약할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남성과 여성 사이에 직업의 기회가 동등하게 보장된 사회일수록 여성 지식인들도 남성 지식인들과 유사한 반자본주의 성향 비율을 가질 것이라고 예측해볼 수도 있다.
 
일부 독자들은 지식인들의 반자본주의적 성향의 요인 문제에 대한 우리의 설명에 여전히 의구심을 품을 수도 있다. 허나 그렇다고 해도 핵심적이고 중요한 요인은 설명됐다고 본다. 우리가 명시한 사회학적 일반화는 주목할 만하다; 이는 사실일 수밖에 없다. 학창시절 정상에 서있다가 사회에 나와 지위 하락을 경험하는 것이 지식인들이 사회에 대해 적개심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만약 이것이 지식인들의 자본주의에 대한 비정상적 적개심의 요인이 아니라면, 과연 뭐가 그런 작용을 한다는 말인가?
 
우리는 설명이 필요한 영문 모를 현상에서부터 연구를 시작했다. 결국 우리는 실제 현상을 설명하는 믿을 수밖에 없는 결정적 요인을 찾아냈다고 본다. 
 
 
 
* 이 글은 1998년 케이토 연구소 보고서(Cato Policy Report) 1/2월호에 처음으로 실렸다.
 
* 로버트 노직(Robert Nozick)은 하버드대 철학과의 아서 킹슬리 포터(Arthur Kingsley Porter) 기금 교수이며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Anarchy, State, and Utopia)>(역주 : 한국에도 동명의 제목으로 번역됨)를 비롯, 여러 책을 집필한 작가다. 이 글은 크레이그 아로노프(Craig Aronoff) 등이 편집한 <사기업의 미래(The Future of Private Enterprise)>(Georgia State University Business Press, 1986)라는 책에 실린 그의 에세이 “왜 지식인들은 자본주의에 반대하는가(Why Do Intellectuals Oppose Capitalism?)?”에서 발췌한 것이다. 이후 이 글은 그의 다른 저서인 <소크라틱 퍼즐즈(Socratic Puzzles)>(Harvard University Press, 1997)에도 다시 실렸다. 
 
 
 

번역 : 김주년, 황의원
 
 
각주 :
 
[1]
 
로버트 노직과 여기서 서술한 것과 다소 비슷한 관점의 내용을 담은 것으로, 레이몽 부동(Raymond Boudon)이라는 프랑스의 권위있는 사회학자가 <왜 지식인은 자유주의를 싫어하나>(기파랑)라는 저서를 낸게 있습니다. 역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
 
 
로버트 노직(Robert Nozik)은 흔히 존 롤스(John Rawls)의 라이벌로 평가되곤 하는 미국의 대표적인 자유의지론 사상가입니다. 노직의 자세한 프로필은 네이버 지식사전(로버트 노직), 또 네이버 백과사전(로버트 노직)을 참고하시고요. 제가 읽은 책 중에서 <불평등의 패러독스>(개마고원)가  존 롤스와 비교하며 로버트 노직의 사상을 쉽게 잘 설명한 책으로서 아주 인상이 깊었으니 역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3]

케이토 연구소(Cato Institute)는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 자유 싱크탱크로 특히 엄격한 자유의지론(Libertarianism, 또는 자유지상론으로도 번역됩니다.)에 기반한 이론을 생산하고 유통하는데 힘쓰고 있는 민간 연구소입니다. 신문 검색을 해보시면 알겠지만, 한국의 언론도 외신 소스로 자주 인용하는 엄청난 권위의 연구소입니다. 혹시 자유의지론에 대해서 더 궁금하시면 과거 intrad2님이 번역소개한 스켑렙의 “[번역]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 FAQ”를  참고하시고, 케이토 연구소에 대해서는 <매일경제>의 “[CATO 연구소는] 77년설립 美자유주의 연구소 효시“   기사도 참고하십시오. 홍일표의 <세계를 이끄는 생각>(중앙북스)에도 케이토 연구소에 대해서 한 챕터 분량의 설명이 있습니다. 참고로, 과거 우리 스켑렙에서 보수와 자유의 관점에서 좋은 글을 많이 써주셨던 Cato님의 필명이 바로 저 케이토 연구소에서 유래했습니다. ^^
 
 
[4]

 
이 논문은 두서너번 소개했던 적이 있지만 다시 한번 더 소개하겠습니다.
 
실제로 미국 아카데미에서 인문계열 지식인들의 좌편향은 실증된 사실입니다. Rothman & Lichter & Nevitte 의 연구인 Politics and Professional Advancement Among College Faculty (http://www.cwu.edu/~manwellerm/academic%20bias.pdf) 에 따르면, 확실히 미국 학계에서도 인문계열 집단의 좌파 편향은 두드러집니다.
 
위의 표를 보면 아시겠지만, 학문 수준이 많이 떨어지는 정치학, 사회학, 종교학, 철학, 역사학, 영문학이 가장 좌익 편향이 심합니다. 77% 에서 무려 88% 까지 분포합니다.
 
반대로 수학(69%), 물리학(66%), 화학(64%) 등 역시 이공계열로 넘어올수록 좌편향성이 약화된다는 것을 분명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초과학은 대략 그렇고, 과학 중에서도 학문과 사회와의 조화가 중요시되는 공학, 경제학, 경영학으로 오면 55% 이하 수준으로 그 이념성이 하락하지요. (생물학의 좌익성향(75%)은 좀 독특하지만, 이는 진화론 문제와 관련해 미국의 생물학도들이 우익 기독교와의 오랜 투쟁을 벌여온 역사와 관계있어보입니다.)
 
이것은 일찌기 C.P.Snow 가 <두 문화(Two Cultures)>에서 직관적으로 관찰하고 지적했던 현상과 전적으로 일치하는 것입니다.
 
<두 문화>, 과학자와 인문학자의 차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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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hlerian   12-04-21 11:20
스켑렙에서는 그간 과학적 회의주의와 연계된 의학, 과학 관련 비평들을 많이 번역소개하여 왔는데요. 앞으로 이 분야의 좋은 비평들은 스켑렙과는 별개로 전문 조직(내년까지 저와 우리 스켑렙의 부운영자인 네빌군님의 주도로 최소한 두어개는 설립될 것입니다. 여름부터 실적이 나타나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을 만들어 많이 번역해 소개하겠습니다. 대신 스켑렙에서는 앞으로 정치/경제/법/행정 분야의 고급 비평들도 많이 번역 소개할 예정으로 방향성을 정해놨습니다. 산마로님도 과거 지적한 바 있듯이, 한국의 출판문화계가 워낙 왼쪽으로 썩어문드러져 있는 관계로 실은 영미쪽에서 생산된 훌륭한 보수, 자유 관련 이론이나 사상이 한국에 소개가 잘 되지 못했습니다. 스켑렙이 미흡하나마 이런 불균형을 시정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밝혀두지만 저는 우익이라고 하기는 좀 뭣한 사람입니다. 물론 이제는 더 이상 좌익이라고도 할 수 없긴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 사회의 소통권력(언론권력, 출판권력 등)은 충분히 고려할만한 가치가 있는 심오한 우익 이론과 우익 사상을 너무 무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과학이냐 종교(또는 한의학)냐는 문제는 진짜이냐 가짜냐의 우월주의(supremacism)의 문제라고 보지만, 좌익과 우익은 한쪽이 한쪽을 지적으로 절대적으로 무시할 수는 없는 ‘정반합(正反合)’의 변증법적(dialetcts) 관계에 있다고 봅니다. 따라서, 저는 합리냐 비합리냐의 문제라면저 항상 합리의 노선에 설 수 밖에겠지만, 좌익이냐 우익이냐의 문제라면 저는 그게 좌익이건 우익이건 항상 당대에 억압당하는 쪽의 이념, 도전하는 쪽의 이념에 설 수 밖에 없다는 입장입니다(그래서 하는 얘기지만 한 10년간은 저는 아무래도 우익일 듯). 반복해 밝혀왔지만 앞으로 제가 소개하는 텍스트, 또는 생산하는 텍스트은 항상 이런 스탠스에 서있거나, (물론 항상 그런 스탠스에 서지는 못했을 것이므로) 최소한 그 노력의 일환이라는 점을 독자들이 이해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Yamakasi   12-04-21 15:22
말러리안독트린의 변경 선언을 환영합니다. 이제야 안 헷갈리게 언행일치를 선언하신 거니까. 변경 꼬리표는 달리겠지만 그정도는 충분히 감당방어하실 것이겠지요.. 단 한 가지..  skepticalright.com로 변경이 같이 이뤄지면 명실상부하겠는데.. 혼자만의 희망이겠지만 그래도 제목도 향후 숙고검토 기대합니다. 그리고, 광복후 정부수립시기 제거된 후 영영 대한민국에서 멸종했거나 소수약자가 돼버린 우파민족주의자를 발굴옹립시키는 작업도 해외 자유 보수이론소개와 병행해주시길 기대합니다. 일화공자님이 보수의 개념에 대해 간단히 링크걸었을 때 좀 찾아보니, 개략적이나마 위키백과( http://ko.wikipedia.org/wiki/%EB%B3%B4%EC%88%98%EC%A3%BC%EC%9D%98)가 그런대로 이해를 돕는거 같습니다. 향후 더 심화된 소개 기대하고요. '합리냐 비합리냐의 문제라면저 항상 합리의 노선에 설 수 밖에'라고 하신 점은 대환영이고, '과학이냐 종교(또는 한의학)냐는 문제는 진짜이냐 가짜냐의 우월주의(supremacism)의 문제'라는 입장도 눈에 들오는데.. 제가 좌파민족주의 입장이라서 그런게 아니라, 합리 비합리의 관점으로 봐도 종교와 한의학을 동류항으로 묶은 건 비합리적 규정이라는 점을..향후, 논의 기회가 생긴다면 토론 참여해 논해보겠습니다.
Yamakasi   12-04-21 15:44
8307번 포스팅에 댓글 달았던 내용인데, 한 번 더 참고차원에서 올려봅니다.

<5년 전 기준이지만 참고할만해서 링크 걸어봅니다.

http://solidarity.tistory.com/99  2007년 한국 지식인 이념 분포도
[김호기(연세대 교수)는 “우리의 지식인 이념 분포 양상은 서구 사회와 다르다. 서구적 틀로는 좌파가 탈민족주의, 우파가 민족주의 중심으로 분포하지만 우리는 좌파민족주의 지식인들이 많다”며 “이는 김구 등 우파 민족주의 그룹이 몰락하고 나서 수십년간 반공체제가 공고해진 탓”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2007년 당시 참고 기사도 있군요.(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9/03/2007090300137.html)

저는,,
I-1(진보적 민족주의),I-2(급진적 좌파민족주의)의 중간정도+알파(대외 영토,역사문제) 정도 되겠네요.
정확하게는,,반외세가 아니라,,균형외교와 경협,연방제 통한 안정적 통일달성 추구한 김대중의 노선이 최선이라 보는 입장인데, 지식인 지도에는 김대중대통령의 포지션이 아쉽게도 없군요. 동아시아는 일본이 과거사 사죄 제대로 하지 않는 이상, 한중일 민족주의가 옅어질 수가 없다고 봅니다. 또 북한 땅을 넘보는 중국동북공정 때문에도 더욱 그렇고. 

그리고, 그림에는 빠졌는데, 좌표상,,이문열 조갑제 김동길은, 우파반공주의+mild민족주의로 포지셔닝돼 있네요. 그런데,, 김용옥은 어디쯤에 속하는지 궁금하네요.. 스스로는 이념 상관없이 민족의 대의을 걱정한다하는데..http://www.youtube.com/watch?v=VlzxN-SKvCc&sns=tw 황석영 좌표랑 비슷할려나.>
-------------------------------------------------------------------------------------------
우파민족주의 자리를 우파반공주의가 차지하고 있는게 대한민국 현실이 아닌가 싶은데, 광복후 과거청산이 제대로 안 이뤄져 그런 걸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혹시 틀렸다면 지적바라고요. 제가 볼 때,박정희는 좌우넘나든 반공주의자지만, GH는 우파민족주의자에 더 친연성이 있지 않겠나 평가합니다. 물론 전혀 상관없는 억측이겠지만..비슷한 인식에서 앞으로 수년간은 GH의 시대를 예상하며 말러리안독트린의 변경을 선언하신 건가 하는 느낌도 듭니다.
산마로   12-04-21 21:24
비슷한 주제로 번역된 책은 앨런 S 케이헌의 '지식인과 자본주의'가 있습니다. 오래된 책이라서 읽지는 못했지만 레이몽 아롱의 '지식인의 아편'도 도서관 뒤져보면 있을 겁니다. 읽을 만한 인터넷 글로는 에드워드 피저의 Why Are Universities Dominated by the Left? ( http://www.tysknews.com/Depts/Educate/dominated_by_left.htm ) 가 있습니다.
산마로   12-04-21 21:53
실은 영미 쪽뿐만이 아니라 독불 쪽의 우파 계열 문헌들도 거의 소개 안 되어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독일의 중도좌파 지식인인 하버마스는 한국어로 대단히 충실하게 소개되고 있는데 그가 논적으로 삼는 독일의 우파 지식인들의 저서는 번역이 아예 안되거나 한국 학계에서 묻혀 버렸거든요. 하버마스를 통해서만 독일 우파 지식인들의 이름(아르놀트 겔렌,요아힘 리터와 그 제자들)을 듣게 되는 거죠. 루만의 책들은 좀 번역이 된 것 같은데, 하버마스와 대등하다고 하는 학계의 평판 치고는 소개가 부실하죠. 프랑스 쪽도 사정이 비슷해서 프랑스 쪽에서 부르디외는 프랑스 사회학계의 사천왕 중 한 명이지만 한국에서는 프랑스 사회학자들 중 부르디외가 독보적으로 알려져 있죠. 한국전 때 아롱과 다른 프랑스 지식인들의 수준 차이는 분명했지만 정작 현재 한국에서 아롱의 이름은 잊혀져 있죠. 당시 프랑스의 좌파 지식인들의 천박함을 알고 싶으면 '프랑스 지식인들과 한국전쟁(민음사)'이란 책을 권합니다. 그런데 정작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이름은 처음부터 현명했던 아롱이나 자기 과오를 인정할 줄은 알았던 카뮈,메를로 퐁티가 아니라 사르트르,푸코 같은 천박한 극좌파들이죠. 극좌,극우를 망라한 극단적(반자유주의적) 지식인들의 어리석음을 다룬 책으로는 좀 어렵지만 마크 릴라의 '분별없는 열정','사산된 신'을 권합니다.
mahlerian   12-04-21 22:36
산마로/
추천 감사합니다. 레이몽 아롱의 책은 그래도 몇권 구해놓았는데 원체 오래전에 번역된 책으로 잘 안읽혀서 일단 근처에 두고만 있습니다. 언제 날 잡아서 다 읽어봐야겠네요. 소개해주신 <프랑스지식인들과 한국전쟁>은 꼭 구해 읽어보겠습니다.
일화공자   12-04-23 11:55
후속연구가 이루어졌는지, 그렇다면 그 결과는 어떠하였는지 무척 궁금하네요. 핵심주장은 개인적인 경험이나 직관에 부합하는데 (우리나라에서도 '나보다 공부도 못했던 것들이!!'라는 불평은 쉽게 들을 수 있으니 말이죠) 과연 데이터와도 부합할지 대단히 궁금합니다.
어쨌든 만일 원문의 가설이 맞다면 우리나라 지식인(?)들이 점점 좌측으로 쏠리는 현상도 쉽게 설명할 수 있을 듯 하네요. 어찌보면 가장 보수적일 수 밖에 없는 법조계에도 심정적으로는 좌파인 사람들이 꽤 많다는 느낌입니다.
Yamakasi   12-04-24 11:16
한중일미를 두루 섭렵한 김용옥이 대한민국의 큰 자산이라고 보는데.
중도 연성민족민주주의로 매김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야를 넘어, 미일중러의 틈바구니속에서 한반도 주민의 자존적 생존지혜을 도모하는 큰 보물같은 학자라고 봅니다.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29673.html). 다산의 사상은 전통이라고 보면 보수요, 왕도정치에 바탕한 민본주의라는 맹자사상 시각에서 중용을 강의하는 학자니까 역시 보수라고 봐야할 것 같은데. 좀 헷갈리네요.
THESE   12-04-24 14:33
AoN/

지식인의 아편은 서점에서 현재도 판매중입니다. 주문했습니다.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mallGb=KOR&ejkGb=KOR&linkClass=&barcode=2003044000485

산마로/

좋은 책 소개와 링크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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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8 강신준 교수(자본론 번역자)에게 일베 회원 같은 느낌을 주는 비판글들… (2)  흑진주 06-08 1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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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마녀사냥 , ..
흑진주/2013-06-20
이해가 안 되는 검..
1장자방/2013-06-20
[CSI] 진중권 논문 66..
mahlerian/2013-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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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xosize/2013-06-20
axosize/ 그때와는 ..
athina/2013-06-20
동감입니다. 김..
athina/2013-06-20
ohhesorge/ 베낀 것..
athina/2013-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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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xosize/2013-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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